미등록이주아동 한국에서 체류자격 부여까지

바람에 떠밀려온 소년이 다시 뿌리를 내리기까지

by 백수웅변호사

새벽 첫차가 막 떠난 뒤였다. 낡은 캐리어 하나를 끌고 서울 외곽의 버스터미널에 서 있던 소년은,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조차 확신이 없었다. 여권도, 주민번호도, 보호자도 없이 국경을 넘어온 열여덟 살. 필리핀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에서 자랐고, 그래서 스스로도 한국 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K군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나라 없는 아이’가 되었음을 통보받았다.


그 시작은 예상치 못한 친생부인의 소(訴)였다. 친부라고 믿어왔던 사람과의 관계가 DNA 한 줄로 무너졌고, 법원의 판단에 따라 K군의 한국 국적은 소급해 소멸되었다. 그가 들었던 말은 단호했다. “당신은 더 이상 한국인이 아닙니다.”

그날 이후 세상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변했다. 학교 기록은 정지되었고, 체류 근거가 사라진 그는 필리핀으로 돌아갔지만, 오히려 그곳은 더 낯설었다. 결국 그는 혼자 다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였다.


출입국관리의 문 앞에서 떨고 있던 소년을 붙든 것은, 우연히 연결된 상담 하나였다. 변호사는 가장 먼저 소년의 친모를 찾아 나섰다.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그 과정은 먼 길을 단숨에 되짚어가는 일처럼 지난했다. 그러나 연락이 닿았고, 마침내 소년이 미등록이주아동에 해당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때부터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장기체류 아동 교육권 보장을 위한 체류자격 부여 제도가 막 연장된 시점이었다. 소년은 국내에서 성장했고, 이미 고등학교에 재입학해 있었으며, 성실히 학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모든 사실을 토대로 변호사는 출입국에 체류자격 심사를 요청했다.


실태조사는 엄격했다. 생활기록, 출석, 학업 태도, 법질서 준수 여부 등 하나하나가 그의 미래를 좌우했다. 그러나 소년은 그 어느 조건에서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어떤 국적보다 먼저 ‘생활의 장소’를 한국에 두고 있었다. 마침내 결정이 내려졌다. 학업 지속을 위한 D-4 체류자격 부여.


그날, 소년이 가장 먼저 한 말은 짧았다.

“이제 학교에 그냥 다닐 수 있는 거죠…?”

그 질문 속에는 그동안 붙들고 버텨온 두려움이 얼마나 컸는지가 고스란히 스며 있었다.


이제 그는 다시 교복을 입고 등교한다. 장래 희망을 묻는 질문에도 멈칫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자란 아이, 한국에서 배운 언어와 친구를 가진 아이로서, 스스로의 삶을 설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누군가의 실수와 무관하게 생의 근거가 허물어지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어떤 제도는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제도는, 누군가 흔들리지 않도록 곁을 지키는 어른들이 있을 때 비로소 작동한다.


※ 본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각색되었으며,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수정되었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법률사무소 어스에 문의주세요.


장기 불법체류자의 아동의 체류자격인정(G-1-.. : 네이버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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