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의 울음 너머에서 돌아온 사람
새 작업장으로 옮긴 첫날, K는 기계 냄새가 스며든 공기를 들이켰다. 철판과 기름의 비릿한 향이 뒤섞여 그의 폐를 찔렀지만,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한국에 오기 위해 거의 전 재산을 쏟아부었고, 가족은 그의 송금에 기대고 있었다.
“괜찮아. 처음은 늘 이런 거니까.”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러나 불길한 예감은 오래 가지 않았다.
컨베이어 위에서 철판 표면을 확인하라는 관리자의 지시가 떨어진 순간부터였다. 바닥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진동이 기계 전체의 숨결처럼 전해졌다. K는 몸을 숙여 철판을 들여다보았다. 센서가 깜빡였다는 사실을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다음 순간, 롤러가 움직였다.
기계가 깨어나는 소리는 짧았지만 잔혹했다.
K는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다리가 롤러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 금속이 뼈를 눌러 으스러뜨리는 감각이 전신을 마비시켰다. 피가 고였고, 그는 바닥에 쓰러졌다. 실린더가 뱉어낸 바람만이 공장 안을 차갑게 맴돌았다.
사고 직후, 회사는 평소보다 더 조용했다. 관리자는 그를 찾아와 말했다.
“치료비 줄 테니까… 산재 신청은 하지 말아줘. 대신 월급은 계속 주고, 필요하면 위로금도 주지.”
K는 얼굴을 들지 못했다.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했기 때문이다.
“아니요. 저는… 돌아가야 해요. 걷고 싶어요.”
그의 한국어는 서툴렀지만, 절박함은 선명했다.
그는 결국 산재 신청을 스스로 진행했다. 회사 도장은 없었다. 대신 ‘날인 거부 사유서’를 첨부했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치료가 길어지며, 회사는 책임을 부인하기 시작했다. 경찰과 고용노동부가 조사에 들어가자, 회사 대표는 K의 부주의를 강조하며 “우린 시킨 적 없다”고 말했다.
이때, K의 곁에 변호사가 나타났다.작은 체구에 조용한 말투였지만, 말끝마다 단단한 판단이 박혀 있었다.
“K씨, 우리는 사실 그대로를 증명하면 됩니다. 기계의 구조, 센서의 위치, 작업 지시의 흐름… 모두 기록으로 남아 있어요. 거짓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는 공장 CCTV를 확보했고, 사고 전후의 작업 지시 로그를 분석했다. 또 노동부 조사 기록 중 회사 측 진술의 모순을 하나하나 고쳐 세웠다.
“이 기계는 센서가 닿으면 자동으로 움직이는 구조인데, 회사는 이걸 교육하지 않았습니다.”
“신규 공정을 시작한 지 1달도 안 된 상태에서 숙련 교육 없이 위험 구역에 투입했습니다.”
서류는 쌓여갔고, 그 위에 변호사의 메모가 촘촘히 적혔다.
<핵심: 안전배려의무 위반 명백. 형사 약식 명령 = 민사 책임 인정의 직접 근거.>
회사 대표는 결국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약식 벌금형을 받았다.
그 순간, 민사 소송의 흐름이 결정적으로 기울었다.
민사 재판은 길었다.
K가 평생의 노동능력 중 30%를 잃었다는 신체 감정 결과가 제출되자, 법정 안은 잠시 정적에 잠겼다.
재판부가 묻자, 변호사는 조용히 답했다.
“외국인 노동자라고 해서 손해가 가볍지 않습니다. 국내 체류기간 동안은 한국의 임금을 기준으로, 이후 본국으로 돌아간 뒤의 기간은 그 나라의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일실수입을 산정해야 합니다. 대법원 판례가 명확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 원고는 생계를 위해 계속 일할 사람이었고, 이 사고는 그의 미래 전체를 흔들었습니다.”
회사가 주장한 ‘노동자의 과실’을 재판부는 일부 인정했지만, 변호사는 즉시 대응했다.
“그러나 산재 급여는 과실 여부와 무관한 사회보장적 급여입니다. 따라서 과실상계는 산재 공제 이후에 적용해야 합니다. 이 사건은 그 법리에 정확히 부합합니다.”
판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이미 승부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판결이 내려진 날, K는 휠체어에 앉아 조용히 종이를 바라봤다.
그에게 지급될 금액이 적힌 판결문이었다.
휴업손해, 장해에 대한 추가 보상, 그리고 위자료.
그는 작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제… 집에 갈 수 있겠네요.”
변호사는 짧게 웃었다.
“돌아가세요. K씨 인생의 다음 장은 여기 말고, 그곳에서 시작되면 좋겠습니다.”
K는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의 다리는 예전처럼 움직이지 않았지만, 마음은 조금 가벼워진 듯했다.
쇠와 기계의 심장 소리로 가득했던 공장에서 벗어나, 그는 조용히 한국을 떠날 준비를 했다.
비행기 창문 너머로 도시의 불빛이 멀어질 때,
그는 문득 그렇게 생각했다.
어쩌면 사람의 삶도 금속처럼 찌그러지고 구겨지지만,
누군가의 손길로 다시 곧게 펴질 수 있는 것 아닐까.
※ 본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각색되었으며,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수정되었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법률사무소 어스에 문의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