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법정에 오지 않았던 이유
처음 그녀를 만난 날, 사무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젖은 옷자락을 털지도 못한 채 그녀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한국어는 더듬거렸고, 시선은 바닥을 떠나지 않았다. 남편에게서 도망치듯 나온 뒤, 공장에서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고 했다.
폭력은 설명보다 먼저 몸짓으로 전해졌다. 팔을 움켜쥐는 손, 잠시 멈췄다 다시 이어지는 숨.
그녀가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들은 말은 간단했다.
“이미 이혼이 끝났습니다.”
그때까지 그녀는 자신이 재판의 당사자였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확인해보니 남편은 재판상 이혼을 청구했고, 모든 소송 서류는 ‘수취인 불명’으로 돌아갔다. 결국 공시송달. 법은 송달되었다고 간주했고, 법정은 조용히 끝났다. 그녀가 없는 사이, 판결문에는 위자료와 양육비가 적혀 있었다. 책임은 모두 그녀의 것이었다.
이 사건의 쟁점은 단순한 이혼이 아니었다. 절차의 부재가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는가였다. 그녀는 패소했지만, 싸운 적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민사소송법 제173조를 다시 펼쳤다. 추후보완항소. 불가피한 사유로 항소 기간을 지키지 못한 사람에게, 법이 허락한 마지막 문.
공시송달은 형식적으로는 완전하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아무도 읽지 않은 편지다. 그녀가 판결을 알게 된 시점, 체류자격 연장을 위해 출입국을 찾았던 바로 그날이 기산점이었다. 우리는 2주라는 짧은 시간을 붙잡고 항소장을 제출했다. 주소 변경, 실질적 미수령, 폭력으로 인한 이탈. 입증 자료 하나하나가 그녀의 침묵을 대신했다.
재판은 다시 열렸다. 이번에는 그녀가 있었다. 법정에서 처음으로 남편의 폭력이 언어가 되었고, 관계의 균열이 기록이 되었다. 결과는 명확했다. 상대방이 유책배우자라는 판단. 이미 끝났다고 여겨졌던 사건은, 그렇게 방향을 바꿨다.
이후 우리는 또 다른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아이였다. 양육권까지는 아니더라도, 면접교섭권을 확보해야 했다. 체류자격은 법률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와의 관계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면접교섭심판청구를 통해 최소한의 연결고리를 만들었고, 그 결정은 F-6-2 체류자격 신청의 근거가 되었다.
그런데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녀 곁에는 새로운 한국인 남성이 있었다. 많은 도움을 주던 사람이었다. 나는 그녀의 진심을 믿었다. 아이를 보고 싶다는 말도, 한국에 남고 싶다는 절박함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체류자격을 얻은 뒤, 그녀는 조용히 사라졌다. 전 남편과의 관계는 물론, 그녀를 도왔던 사람과의 인연도, 아이와의 만남도 끊어졌다. 믿음이 배신으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법률가로서의 성공이, 누군가에게는 죄송스러운 결과로 남는 순간.
법은 권리를 회복시켜 주었지만, 관계까지 회복시켜 주지는 않는다. 면접교섭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체류는 다시 위태로워질 것이고, 장래의 귀화 역시 쉽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을 그녀는 알고 있을까.
사건을 마무리하며 나는 기록을 덮었다. 법은 최선을 다해 작동했다. 그럼에도 마음 한켠에는 남는 것이 있다. 구제와 선택은 다른 문제라는 것, 그리고 모든 성공 사례가 박수로 끝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 본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각색되었으며,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수정되었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법률사무소 어스에 문의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