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이라는 선택지, 그리고 다른 길
상담실 문이 닫히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마주 앉은 두 사람은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한국인 남성과 우크라이나 여성. 전쟁을 피해 한국에 머물고 있는 그녀에게 남성이 먼저 꺼낸 말은 예상대로였다.
“난민신청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 질문은 이 사건의 출발점이자, 동시에 가장 위험한 선택지였다.
난민신청은 많은 외국인들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해법이다. 한국에 체류할 수 있고, 당장 강제출국의 걱정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쟁을 이유로 입국한 경우라면 더 그렇다. 하지만 나는 늘 그 질문 앞에서 한 발짝 물러선다. 난민이라는 지위는 ‘돌아갈 수 없다’는 사정만으로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법에서 말하는 난민은 박해의 공포가 핵심이다. 국적국이 보호해줄 수 없거나, 보호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어야 한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배경은 설명이 될 수는 있어도, 자동으로 난민 지위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그리고 문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한국의 난민제도는 이미 허위 난민신청으로 심각하게 경직돼 있다. 형식적인 사유, 추상적인 진술, 준비되지 않은 난민면접은 곧 불인정 결정으로 이어진다. 한 번 ‘난민 불인정’이라는 기록이 남으면, 이후 체류자격 변경은 극도로 어려워진다. 결혼을 하더라도, 정상적인 결혼비자로의 전환이 막히는 경우를 나는 여러 번 보아왔다. 당장의 체류를 위해 선택한 난민신청이, 오히려 장기적인 체류를 가로막는 족쇄가 되는 순간이다.
이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결혼이라는 명확한 생활 기반이 예정돼 있었고, 한국 사회에 정착할 수 있는 경로가 이미 존재했다. 그럼에도 난민신청을 선택한다면, 이는 가장 위험한 우회로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을 바꿨다.
“이 사람이 난민인가”가 아니라,
“지금 이 사람이 왜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가.”
그 답은 난민신청이 아닌, 인도적 체류허가에 있었다. 법무부는 전쟁 상황을 고려해 국내 체류 우크라이나인에 대해 인도적 특별체류 조치를 시행하고 있었다. 지금도 유효한 제도였다. 이 제도는 난민과 달리 ‘허위’라는 낙인을 남기지 않는다. 개인의 구체적인 사정을 중심으로, 한시적이지만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부여한다.
우리는 단순한 신청서 대신 의견서를 준비했다. 전쟁이라는 단어를 반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 개인에게 닥칠 수 있는 현실적인 위험, 가족관계, 귀국 시 예상되는 생활의 붕괴를 차분히 정리했다. 심사 과정에서 국제정세 이야기가 나왔다. 전쟁 종결 가능성, 정상 운영 중인 대사관. 나는 일관되게 말했다. 인도적 체류허가는 정치가 아니라 개인의 삶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결론은 난민비자(G-1-5)가 아니었다. 인도적 특별체류에 따른 비자(G-1-99). 이 선택은 기록으로 남는다. 허위 난민이 아니라는 기록, 그리고 향후 결혼을 통해 체류자격을 변경할 수 있는 여지. 체류의 ‘연명’이 아니라, 체류의 ‘설계’가 가능해지는 순간이었다.
난민신청은 하나의 절차가 아니다. 불인정, 이의신청, 행정소송까지 이어지는 긴 과정이다. 그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이후의 모든 선택이 제한된다. 그래서 나는 늘 경고한다. 난민신청은 가장 쉬워 보이지만, 가장 위험한 선택일 수 있다고.
이 사건은 특별한 기적이 아니다. 다만, 조금 더 돌아보고, 조금 더 멀리 본 선택의 결과였다. 법은 냉정하지만, 선택은 늘 사람의 몫이다. 그리고 그 선택이 누군가의 미래를 지킬 수도, 무너뜨릴 수도 있다.
※ 본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각색되었으며,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수정되었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법률사무소 어스에 문의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