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이름을 부르지 못한 시간
아이의 사진은 오래된 휴대전화 속에 남아 있었다. 화면을 넘길 때마다 손끝이 잠시 멈췄다. K씨는 이미 이혼한 사람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혼이 되어 있었다. 공시송달이라는 절차를 통해서였다. 한국에서의 체류 자격은 끝나 있었고, 아이는 전 배우자와 함께 살고 있었다. 아이를 마지막으로 안아본 날이 언제였는지조차 또렷하지 않았다.
그녀가 상담실에 앉아 가장 먼저 꺼낸 말은 비자가 아니었다. “아이를… 한 번만이라도 다시 보고 싶어요.” 그 문장은 짧았지만, 법률적으로는 많은 질문을 품고 있었다. 이미 협의이혼은 성립되었고, 판결도 확정된 상태였다. 면접교섭에 관한 합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공백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면접교섭권은 흔히 ‘비양육 부모의 권리’로 설명되지만, 실제로는 아이의 권리에 더 가깝다. 부모 중 누구와 살든, 다른 한쪽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권리. 다만 이 권리는 언제나 ‘자의 복리’라는 조건 아래 놓인다. 민법 제837조의2 제3항은 가정법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면접교섭을 제한하거나 배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시 말해, 허락받아야만 비로소 작동하는 권리이기도 하다.
이 사건의 어려움은 단순히 면접교섭을 구하는 데 있지 않았다. 공시송달로 이혼이 이루어졌다는 점, 외국인 신분으로 이미 체류 자격이 불안정하다는 점, 그리고 상대방과의 소통이 사실상 단절된 상태라는 점이 겹쳐 있었다. 자칫하면 “이미 끝난 관계”라는 이유로 문전박대를 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전략은 명확해야 했다. 감정이 아니라 구조를 보여주는 것. 아이에게 이 만남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K씨가 아이의 삶에서 어떤 존재였는지를 차분히 증명하는 일이었다. 면접교섭허가심판청구서에는 단순한 만남 요청이 아니라, 과거의 양육 참여, 아이와의 정서적 유대, 그리고 향후 교섭 방식까지 구체적으로 담았다. 전화 통화부터 시작하는 단계적 교섭 방안도 함께 제시했다.
가사조사 과정에서는 특히 신중함이 요구됐다. 조사관의 질문 하나하나가 기록으로 남고, 그 기록이 판단의 근거가 된다. K씨는 아이를 데려오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아이의 생활을 존중하겠다는 태도를 유지했다. 만남의 빈도와 장소, 인도 방식에 이르기까지 ‘아이의 일상’을 중심에 두었다.
결과적으로 법원은 제한적인 면접교섭을 허가했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방식이었지만, 그 허가는 단절의 벽에 난 작은 문과 같았다. 그리고 그 결정은 체류 자격 문제로도 이어졌다. 면접교섭권을 근거로 자녀 양육 목적의 체류 자격을 다시 신청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아이의 삶이 하루아침에 바뀐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름을 부를 수 없던 시간이 끝났다는 사실만으로도, K씨의 얼굴에는 오래간만에 숨을 고르는 표정이 떠올랐다. 법은 관계를 대신 살아주지는 않지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최소한의 틈은 만들어준다. 이 사건은 그 틈이 얼마나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 본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각색되었으며,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수정되었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법률사무소 어스에 문의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