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사기죄, 증인신문 후 체류자격연장까지

숫자가 거짓말을 할 때

by 백수웅변호사

그는 의자에 앉아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있었다. 통역을 거쳐 전해지는 질문 하나하나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시선은 바닥에 고정돼 있었다. 외국인 신분의 K씨에게 이 재판은 단순한 형사 절차가 아니었다. 벌금이냐, 금고냐의 차이는 곧 이 나라에 남을 수 있느냐, 떠나야 하느냐의 문제로 이어졌다.


사건은 ‘사기’라는 단어로 시작됐지만, 실상은 훨씬 복잡했다. 지인 관계로 얽힌 장기간의 금전 거래, 수십 차례 반복된 송금,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불어난 숫자들. 고소인 L씨는 말했다. 계좌로 보낸 돈 외에도 길거리에서 현금으로 거액을 더 건넸고, 전체 피해액은 수천만 원에 달한다고. 그 진술은 수사 기록 곳곳에 단정적인 어조로 남아 있었다.


처음 사건 기록을 펼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현금’이라는 단어였다. 수년간 이어진 백 회가 넘는 거래는 모두 계좌이체였다. 날짜와 금액, 메모까지 남아 있었다. 그런데 유독 문제 된 그 금액만, 흔적이 남지 않는 방식으로 주었다는 주장. 의아함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숫자를 모두 엑셀로 옮기자,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기로 주장된 시점 이후에도 두 사람의 거래는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계속됐다.


더 들여다보니 또 다른 장면이 겹쳐졌다. 돈을 빌려줄 때마다 미리 떼인 이자, 원금보다 더 많은 금액의 회수. 등록되지 않은 대부의 형식과 닮아 있었다. 피해액으로 주장된 숫자에는 과거 채무와 선이자가 겹겹이 포개져 있었다. 이번 사건의 금액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부풀려진 수치였다.


재판의 중심은 증인신문이었다. L씨가 증인석에 앉았다. 준비한 질문은 많지 않았다. 다만 정확해야 했다. “백여 차례 거래 중 현금 거래가 없었는데, 왜 그날만 현금이었습니까.” “출금 내역이나 차용증은 있습니까.” 질문이 쌓일수록 진술은 흔들렸다. 결국 그는 말했다. 현금으로 준 부분을 입증할 자료는 없다고.


이어진 질문은 숫자를 향했다. 문자로 남은 차용 내용, 계산 방식, 이자가 붙은 경위. 선이자가 포함된 금액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게 되자, 피해액의 외형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마지막으로, 사기 이후에도 이어진 거래 내역을 제시했다. 작정하고 속인 범죄라기보다는, 장기간 거래 끝에 엉킨 정산 문제에 더 가까운 모습이었다.


재판의 공기는 바뀌었다. 검찰은 입증하지 못한 현금 부분을 공소사실에서 정리했고, 금액은 현실적인 수준으로 수정됐다. 인정되는 범위에 대해서는 형사 공탁을 진행했다. 책임을 회피하지 않되, 과장된 혐의는 바로잡는 선택이었다.


선고는 짧았다. 벌금형. 그 한 문장은 K씨의 체류 자격을 지켜냈고, 삶의 연속성을 남겼다. 법정을 나서던 그의 어깨는 처음보다 조금 내려가 있었다.


이 사건은 숫자가 언제든 이야기의 주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누군가의 주장으로 만들어진 숫자와, 기록과 질문으로 검증된 숫자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 금전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 그리고 그것을 드러내는 과정이다. 법은 그 과정을 통해서만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


※ 본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각색되었으며,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수정되었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법률사무소 어스에 문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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