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는 돈의 출처를 몰랐다고 말했다
처음 마주한 날, K씨는 의자 끝에 걸터앉아 있었다. 질문 하나에도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이다가, 한국어가 막히면 잠시 침묵했다. 통장에 찍힌 숫자들보다 더 무거운 것은, 자신이 왜 이 자리에 앉아 있는지 끝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저는 그냥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 말은 변명처럼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 같았다.
사건의 구조는 단순했다. 현금을 전달했고, 그 돈은 보이스피싱 피해금으로 드러났다. 검사는 가담을 묻지 않았다. 문제는 고의였다. 대법원은 오래전부터 말해왔다. 자신의 행위가 범죄일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이를 감수했다면, 미필적 고의로 충분하다고. 그 기준은 넓고, 날카롭다. 그래서 이 사건의 무게는 행위보다 인식에 있었다.
기록을 넘기며 나는 채용 경로부터 다시 훑었다. 면접은 없었고, 지시는 메신저로 왔다.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가 무엇을 어떻게 이해했는지였다. 업무 설명은 단순했고, 금융기관이나 수사기관을 사칭한다는 말은 없었다. 현금 수령도, 타인 명의 계좌로의 분산 입금도 없었다. 그가 한 일은 지시된 범위 안에서 끝나 있었다.
위기는 문서에서 찾아왔다. 전달된 서류 한 장. 검사는 그것을 ‘사칭의 도구’라고 불렀다. 그러나 K씨는 그 종이를 만들지 않았고, 내용의 진위를 확인할 위치에도 있지 않았다. 외국인 유학생이었고, 한국의 금융 관행이나 범죄 수법에 익숙하지 않았다. 의심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은, 그가 가진 경험의 경계에서 다시 던져져야 했다.
전환점은 사후 정황이었다. 경찰의 연락을 받자 그는 도주하지 않았다. 휴대전화를 제출했고, 받은 지시와 수행한 일을 모두 설명했다. 수익은 고액의 성과급이 아니라 정해진 급여에 가까웠다. 범행의 전체 구조를 인식했다면 취할 태도는 아니었다.
재판정에서 쟁점은 하나로 수렴됐다. 그는 범죄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하고도 이를 용인했는가. 기록과 정황은 그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미필적 고의는 추정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누적된 비정상성이 있어야 하고, 그 비정상성을 알아차릴 수 있는 주관적 토대가 있어야 한다.
판결문은 길지 않았다. 무죄. 단정적인 문장 뒤에서, K씨의 어깨가 조금 내려앉는 것이 보였다. 그에게 이 결과는 단순한 승패가 아니었다. 중단될 뻔한 유학 생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던 일상이 다시 이어질 수 있다는 신호였다.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핵심은 늘 고의다. 누군가는 구조를 알면서 가담하고, 누군가는 구조 바깥에서 이용당한다. 법은 그 경계를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은, 언제나 사람의 인식이 어디까지였는지를 향한다.
※ 본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각색되었으며,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수정되었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법률사무소 어스에 문의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