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수 있는 개처럼, 그러나 오만하지 않게
외국인 사건을 맡다 보면, 법률가라는 직업이 얼마나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는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책상 위에서 법전을 넘길 때와, 출입국청 대기실에서 의뢰인의 굳은 표정을 마주할 때는 전혀 다른 감각이 요구된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한 가지 태도를 반복해서 되새긴다. 변호사는 ‘갑의 영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물론 갑질을 하라는 말은 아니다. 목소리를 높이거나 상대를 누르라는 뜻도 아니다. 내가 말하는 ‘갑’이란 사건에 대한 확신이다.
의뢰인의 사정에 맞춰 말을 바꾸고, 분위기에 따라 논리를 흐리는 태도는 결국 자신 없음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케이스를 예측하고, 변수를 가늠하며, 전체 흐름을 통제할 수 있다는 감각. 그 중심이 흔들리면, 사건도 흔들린다.
그렇다고 자신감이 오만으로 번져서는 안 된다. 법은 사람이 운용하는 영역이다. AI가 모든 것을 지배할 것처럼 말해지는 시대지만, 법정과 행정 절차는 여전히 사람의 판단으로 굴러간다.
판사가 누구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이 일을 오래 할수록 더욱 명확해진다. 당연한 결과란 없다. 언제나 변수는 존재한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느낌’이다. 이 변호사가 정말로 이 사건을 붙들고 있는지, 형식적인 대응을 넘어 실질적인 해결을 고민하고 있는지에 대한 감각. 판사도, 공무원도 결국 사람이다. 물 수 있는 개에게는 조금 더 신경을 쓰게 된다. 실제로 물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긴장감과 진정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열심히 하는 변호사의 기척은 서면의 밀도와 질문의 결, 태도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외국인 사건의 또 다른 특징은, 상대가 대부분 ‘관(官)’이라는 점이다. 이 사건들은 사람과 사람의 싸움이기보다, 사람과 시스템의 마찰에 가깝다. 출입국, 체류, 난민, 강제퇴거. 상대방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대신 공문과 통지서, 정제된 문장들만 쌓여간다. 그 문장들은 대개 단정하고, 이미 결론을 품고 있다.
그래서 외국인 사건에서 변호사의 역할은 조금 다르다. 법정에서 상대 변호사와 설전을 벌이는 전형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이 일은 관을 설득하는 일이자, 관의 언어를 해독하는 일이다.
나는 스스로를 ‘전문 민원인’에 가깝다고 느낀다. 다만 아무 민원인은 아니다. 논리와 창의성으로 무장한, 집요하고 예측 가능한 민원인이다.
관을 상대로 감정은 거의 통하지 않는다. 억울함을 아무리 토해내도, 서류 한 장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고 법조문만 나열한다고 길이 열리는 것도 아니다. 관은 이미 수많은 유사 사례를 처리해왔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기준과 관성이 있다. 외국인 사건이 유독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그 관성 때문이다. 이 사건이 왜 ‘전형’이 아닌지를 설명하지 못하면, 결과는 대체로 정해져 있다.
그래서 논리가 필요하다. 기준에 부합하는 이유, 혹은 그 기준이 그대로 적용되었을 때 왜 부당한 결과가 나오는지. 행정청의 판단 구조를 전제로 삼아, 그 구조 안에서 균열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논리만으로는 부족하다. 관은 인간이면서 동시에 시스템이다. 시스템은 익숙한 것에는 무감각하고, 낯선 것에는 잠시 멈춘다. 그 멈춤을 만들어내는 힘이 바로 창의성이다.
여기서 말하는 창의성은 기발함이 아니다. 판례를 벗어난 억지 주장도 아니다. 같은 사실을 다른 위치에 놓는 일, 질문의 방향을 바꾸는 일, 관이 당연하게 여겨온 전제를 살짝 비틀어 보는 일이다. 난민 사건처럼 전형성이 강한 분야일수록, 이 관점의 전환은 더 중요해진다. 허위난민이라는 전제가 공기처럼 깔린 공간에서는, 그 공기를 다르게 흔드는 방법이 필요하다.
그리고 마지막은 현장이다. 드라마 속 변호사처럼 모든 장면에 등장할 수는 없지만, 현장의 증거를 채증하려
는 노력은 결코 과하지 않다. 많이 묻고, 집요하게 따져야 한다. 의뢰인을 귀찮게 하는 변호사가 훌륭한 변호사라는 말은, 이 분야에서 특히 실감난다. 불편한 질문 끝에 남는 조각들이, 사건의 실체에 가장 가까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외국인 사건은 늘 조심스럽고, 동시에 날카롭다. 관을 상대해야 하고, 전형과 싸워야 하며, 사람의 판단을 끝까지 설득해야 한다. 그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물 수 있는 개처럼 경계한다. 그러나 결코 자신만만해지지는 않으려 애쓴다. 그 균형이,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이유다.
※ 본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각색되었으며,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수정되었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법률사무소 어스에 문의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