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않은 시간, 떠날 수 없는 사람
공항은 늘 비슷한 냄새를 풍긴다. 금속과 냉기, 그리고 누군가의 서두름이 섞인 공기.
첫 번째 의뢰인을 만났을 때, 그는 바로 그 공기 속에서 멈춰 선 사람처럼 보였다. 손에는 여권이 있었지만, 이미 길을 잃은 사람의 표정이었다. 출국은 막혔고, 학교는 기다려주지 않았고, 해외에서 이어가던 연구도 사실상 끊긴 상태였다. 그는 한참 동안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다가 마지막에 아주 작게 물었다.
“집행정지라도 하면, 다시 나갈 수 있습니까.”
이 질문에는 대개 사정이 길게 따라붙는다. 박사과정, 취업 기회, 가족의 생활 기반, 영주권 신청 시기. 하나같이 절박하다. 그러나 병역법 사건에서 절박함이 곧바로 법적 실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 사건도 그랬다.
그는 적법하게 국외여행 허가를 받아 출국했지만, 허가 기간이 끝난 뒤에도 귀국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며칠만 더 있으면 될 것 같았고, 그다음에는 학기 하나만 마치면 될 것 같았고, 나중에는 지금 들어가면 오히려 모든 계획이 무너질 것 같았다고 했다. 사람은 대개 그렇게, 한 번의 연기로 인생 전체를 설명하려 한다.
하지만 행정은 사정을 길게 듣지 않는다. 허가 기간이 도과하면 병역법 위반 상태가 되고, 그에 연동해 외교부의 여권 반납 명령과 무효화 조치가 뒤따를 수 있다.
그가 가장 억울해한 부분은 절차였다. 사전에 충분한 설명도 듣지 못했고, 갑자기 여권의 효력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법원의 시선은 매우 단호하다. 여권 반납 명령은 본질적으로 ‘지금 당장 여권을 쓰지 못하게 하는’ 처분이어야 의미가 있다.
미리 통지하고, 의견 제출 기한을 주고, 그 사이에 계속 여권이 사용된다면 처분의 목적은 상당 부분 무력화된다. 그래서 법원은 이런 유형의 조치에 신속성과 밀행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당사자에게는 가혹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제도는 병역의무를 이탈한 상태를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다.
집행정지의 핵심은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와 공공복리의 비교다. 의뢰인은 학업 중단과 진로 상실을 이야기했다. 실제로 손해는 작지 않았다. 다만 법원이 보는 것은 ‘손해가 크냐’만이 아니다. 그 손해를 막아주었을 때 공익이 얼마나 흔들리는지도 본다. 병역법 영역에서 공익은 매우 구체적이다. 원활한 병역자원의 수급, 병역의무 이행의 공정성, 그리고 형평성. 누군가는 허가 기간에 맞춰 돌아오고, 누군가는 그러지 않았는데, 후자에게 다시 여권 효력을 허용하는 것은 같은 의무를 지는 사람들 사이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다.
더구나 재판부는 자주 이렇게 본다. 학업이나 직업상의 불이익이 있더라도, 병역의무를 이행한 후 다시 진로를 이어갈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냉정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많은 집행정지 신청이 기각된다.
나는 그에게 소송의 구조를 설명했다. 승산을 부풀려 말할 수는 없었다. 간혹 여권무효화 사건도 집행정지가 가능하다고 단순하게 답하는 경우가 있지만, 실제 실무에서는 사안의 결이 훨씬 더 엄격하다. 이미 허가 기간 도과라는 선행사실이 분명하고, 병역자원 확보와 형평이라는 공익이 전면에 서는 순간, 개인의 학업·취업상 불이익만으로는 법원을 움직이기 어렵다. 그 설명을 듣던 그는 결국 질문을 바꾸었다. “그럼,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그때부터 사건은 여권이 아니라 국적 문제로 넘어갔다.
두 번째 의뢰인은 전혀 다른 얼굴로 찾아왔다. 그는 여성이었고, 병역의무와 직접 관련이 없었다. 그래서 더 답답해했다. “저는 군대 갈 일도 없는데, 왜 국적이탈이 안 된다는 건가요.” 그의 말 속에는 억울함이 있었다. 병역 문제가 아니라면 좀 더 유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였다. 그러나 국적이탈은 병역과 닿아 있으면서도, 동시에 병역과 별개인 제도다. 여기서 핵심은 의무의 유무가 아니라 ‘주소’, 정확히는 생활 기반이 어디에 형성되어 있느냐에 있다.
국적법은 재외공관을 통해 국적이탈 신고를 하려면 외국에 주소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 주소는 주민등록등본처럼 종이 위에 적힌 주소가 아니다. 행정청은 실무상 훨씬 더 집요하게 본다. 최근 1년 내 통산 6개월 이상 그 나라에 체류했는지, 신고 직전 적어도 90일 이상 계속 체류했는지, 학교 재학이나 직장 재직, 부모의 거주와 소득, 임대차계약, 공과금 납부 내역 같은 자료를 통해 진짜 생활이 그곳에 있는지 따진다. 그리고 필요하면 최근 3년, 때로는 그 이상을 훑어본다. 질문은 단순하다. 이 사람이 잠깐 해외에 나가 신고만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외국에서 생활하는 사람인지.
그 의뢰인은 어릴 때부터 복수국적 상태였지만, 최근 몇 년간의 삶은 거의 전부 한국에 있었다. 대학도 한국에서 다녔고, 방학도 대부분 국내에서 보냈고, 대외활동과 인턴 경력도 한국에 집중되어 있었다. 서류상 외국 국적은 분명했지만, 삶의 무게중심은 한국이었다. 이런 경우 당장 출국해 재외공관에 신고서를 낸다고 해서 곧바로 수리되지 않는다. 실무에서는 오히려 그 짧은 출국이 ‘원정 이탈’로 읽힐 수 있다. 그는 그것이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했다. “외국 국적도 진짜고, 해외 주소도 있는데, 왜 안 되죠.” 나는 답했다. 주소가 문제가 아니라, 생활이 문제라고. 법은 서류보다 시간이 쌓인 방향을 본다고.
물론 예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부모의 직업이나 가족의 장기 해외 거주, 해외 학교 진학이 예정된 객관적 사정, 국내 체류가 불가피했던 특별한 사유가 입증되면 다르게 평가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외다. 대체로는, 한국에서 오래 살다가 필요할 때만 국적을 정리하려는 시도에 대해 행정청은 매우 보수적이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당장 신고를 권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정 기간 실제 해외 체류를 하며 생활 기반을 옮기고, 주거·학업·직업의 흔적을 차곡차곡 만든 뒤에 다시 판단하자고 했다. 법은 때로 서류 싸움처럼 보이지만, 이런 사건에서는 결국 ‘어디서 살았는가’라는 시간의 기록이 결론을 만든다.
두 사건은 겉보기에 다르다. 하나는 여권이 무효가 된 남성의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국적이탈이 막힌 여성의 사건이다. 그러나 상담을 마치고 나면 늘 비슷한 문장이 남는다. 법은 마지막 순간의 의사표시보다, 그 직전까지 축적된 생활의 사실을 더 무겁게 본다는 것. 병역법 사건에서 집행정지의 실익은 생각보다 좁고, 국적이탈 역시 마음먹은 날 바로 실행할 수 있는 절차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미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고, 어떤 경우에는 아직 필요한 시간을 더 만들어야 한다.
의뢰인들은 대개 그 사실을 듣고 한동안 말이 없어진다. 소송의 가능성을 묻다가, 결국 자기 삶의 방향을 다시 계산하게 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병역의무를 먼저 이행하고 돌아가기로 하고, 어떤 이는 해외에서 실제 생활 기반을 다시 만들기로 한다.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다만 비로소 현실에서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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