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작가다공모전> 나의 실패, 나의 두려움에 대하여
나는 변호사다. 테러를 전문 분야로 일하고 있다. 변호사와 테러, 어딘가 모르게 매치가 되지는 않는다. 테러는 군사와 안보 영역으로 생각하기 쉽다. 실무에서도 국정원, 경찰 등 정보 수사 기관이 테러 예방과 대응에 있어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국가기관이 주최하는 테러 대책 회의에서 법치주의와 인권을 강조하는 이야기를 했다가는 왕따가 되기 십상이다.
문제는 하나 더 있다. 테러를 연구하는 것은 소위 돈이 되지 않는다. 국내에서 테러의 관심이 높지 않다. 테러방지법 제정을 둘러싼 정지 논쟁만 있었을 뿐 그 안에 담긴 테러라는 콘텐츠의 연구는 부족하다. 테러 가능성이 높지 않은 현실을 고려했을 때 금전 지원을 받는 정책연구 대상이 되기는 힘들다. 변호인도 마찬가지다. 테러사건의 건수는 양적으로 많지 않을뿐 아니라 테러리스트들의 변호했다가는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난 앞으로도 테러와 인권을 계속해서 연구하려 한다. 변호사로서 경력을 망쳤다는 주변 동료들의 시선과 돈 못 버는 남편에 대한 마누라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끝까지 걸어보려 한다. 지난 4년간 국가기관에서 활동하면서 테러를 공부하고 법률가로서 인권과 법치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굉장히 가치 있는 일임을 깨달았다. 지금부터 지난 4년의 실패와 두려움을 이야기하겠다.
4년 전 국가기관에 들어오기 전 난 평범한 변호사였다. 잘 나가지는 않았지만, 또래의 회사원들보다 조금 더 돈을 버는 그런 평범한 변호사 말이다. 늘 그렇지만 익숙함은 무료함의 시작이었다. 특히나 평소 사회생활에서 만나기 어려웠던 피의자 혹은 피고인들의 만나면서 변호사 일에 자괴감이 들었다. 누가 봐도 나쁜 놈인데 나쁜 놈을 위해 싸워야 하는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싫었다. 친구들은 내가 착해서 그렇다고 위로했다. 하지만 난 그 말뜻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난 변호사로서 자질이 없다는 표현이었다. 조금만 공부를 잘했다면 검사와 판사를 하는 것이 괜찮았겠지만 난 그 조금을 할 수 있는 머리를 갖고 있지 않았다. 중이 싫으면 절을 떠나야 하는 세상만사의 이치였다. 난 날 뽑아주는 국가기관으로 도망갔다.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합격한 국가기관은 테러와 인권을 다루는 곳이었다. 파견된 공무원을 포함하여 6명으로 구성된 작은 조직이었다. 테러방지법 시행 이후, 새롭게 만들어진 기관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업무 분담과 체계가 갖춰있지 않았다. 변호사로서 조직에 이바지 할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만 했다. 공무원 특성상 너무 튀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상급 기관과 배치되는 의견 또한 가질 수 없었다. 법률과 시행령 안에서 새로운 일을 발굴해야만 했다. 법률의 틀을 벗어난 권한 밖의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위에서 내려오는 오더를 받아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업무에 집중해야만 했다. 특히나 우리 조직이 견제해야 할 대상은 국정원이었다. 거대한 힘을 가진 정보기관을 특별한 법적 권한 없이 견제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변호사로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은 기관을 상대로 한 법률교육이었다. 나름 자료를 조사해 테러 현안과 테러방지법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국정원, 경찰 등에서 수십 차례 교육을 진행했지만 실무자들의 강의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사실 그럴 만 했다. 국제정세나 관련 정보는 정보기관이 더 많이 갖고 있었다. 법 절차 역시도 실무를 처리하는 수사기관이 더 많이 아는 것이 당연했다. 내 강의 중 딴짓하거나 잠을 자는 것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더군다나 법률 자문이나 구제 절차보다 행정업무가 갈수록 늘어가면서 그나마 있던 법률 전문성도 희미해졌다. 법학이라는 학문은 휘발성이 강하다는 모 검사님의 말이 뇌리에 스치기도 했다.
어두움 속에서 빛을 찾으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 거 같다. 답답했지만 국가기관에 있는 동안 작은 희망이라도 찾고 싶었다. 일단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국내 테러 관련 서적을 모두 읽었다. 학술지 논문 3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본질적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단순하지만 강렬했다. 그 의문은
"너희는 왜 지금까지 실패만 했는데"
2001년 9.11 이후 전 세계를 가장 크게 위협한 존재는 테러였다. 전쟁은 테러를 대신하여 무고한 민간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상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정보기관의 권한 강화가 수십 년간 지속하여 왔다. 그런데도 테러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를 시작으로 백인 극우주의 테러까지 테러의 양상은 다양해지고 있다. 결과만 놓고 보면 국가의 대테러 정책은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실패가 분명하다면 새로운 대안을 찾는 것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나는 그 대안으로 인권과 법치주의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테러에서 법률가가 개입할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실패 앞에서 인간은 본능적인 방어기제를 발휘하기도 한다. 주변의 핑계를 대고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실제로 교육과정에서 내 논리에 직접적인 비판을 가하는 테러 담당자도 있었다. 공격적인 질문 태도에 당황하기도 했다. 그때, 난 무플보다는 악플이 좋다는 어느 연예인의 말을 기억하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비루한 강의였지만 전보다 조금 더 관심이 생긴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니 말이다.
모두가 동의할 수는 없겠지만 테러에서 인권과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내용이 누군가에는 설득을 얻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모 출판사에 개최한 공모전에서 내가 주장한 내용을 정리한 글이 최우수상을 받았고 출판을 앞두고 있다. 물론 책의 출간과 대중적 성공은 별개의 이야기다.
어느 날 편집자가 나에게 물었다. "이 책이 잘 팔릴까요?"
나는 말했다. "아니요."
솔직한 심정이었다. 테러는 아직 국내에서 큰 관심 사항이 아니다. 더군다나 코로나 19로 인해 국가 간 이동이 제한되면서 국제 테러도 상당히 줄어들 전망된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지난 20년간 정보기관이 중심이 된 테러와의 전쟁은 실패했고 대안으로 제시한 법치주의와 인권은 매력적인 해결책이다. 국내 여건 상 내 주장은 설득력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지난 4년의 시행착오와 노력은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난 올해 공무원 계약 기간을 1년 연장했다. 두렵지만 조금 더 이 길을 가려 한다. 실패하더라도 테러에서 법치주의와 인권을 강조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고있기 때문이다.
난 우연한 기회에 테러를 만났다. 내 커리어는 꼬이고 경제적으로 많은 돈도 벌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거듭되는 실패 속에서 테러를 예방하고 인권을 중시하는 변호사라는 새로운 꿈을 갖게되었다.
어떤가. 지금은 조금 실패했지만 그 실패에서 꿈이 잉태했으니 나름 가치있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