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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의 Jan 25. 2021

픽사 영화 소울(Soul) 을 감상한 후

부서진 꿈을 모아 놨더니 그게 걸작이 됐지 뭐야

내가 패배자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내가 꿈에 그리던 삶을 주변 사람들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 손에 쥐고 마음대로 흔들 때. 남들은 어렵지 않게 해내는 일을 나 혼자만 벌벌 떨고 끙끙거리며 간신히 해낼 때. 그때 나는 이번 생은 완전히 글렀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인생을 살아가는 건 어렵고 복잡한데 인생에 대한 평가는 이렇게 사소하고 일상적인 순간에서 비롯된다.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내 삶의 만족도는 날이 갈수록 떨어졌다. 누군가는 내가 있는 자리가 누구라도 꿰찰 수 있는 자리라고 말했고, 어떤 사람은 내 능력으로는 그 자리를 평생 벗어날 수 없을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실망스러운 사람도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생각 없는 말을 듣고 정말로 내 가치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걸까 진지하게 고민했던 나.


영화 소울을 보고 놀랐던 점은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영화라고 하기엔 어른들이 처한 상황을 매우 실감 나게 보여주었다는 사실이었다. 주인공 ‘조 가드너’는 학교 재즈부의 파트타임 선생님으로 근무한다. 아이들을 다루는데 능숙하고 음악 연주 실력도 훌륭하지만, 막상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정규직으로 전환될 거라는 소식을 들어도 기뻐하지 않는다. 조가 원했던 삶은 훌륭한 음악 선생님이 되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재즈 연주가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태어나기 전의 세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머물고 있는 영혼 ‘22’. 22는 지구에 가는 걸  거부한다. 영혼이 지구에 가기 위해서는 통행증을 발급받아야 하는데, 이 통행증은 영혼의 고유한 특성과 관심사를 발견함으로써 생성된다.


수많은 훌륭한 멘토들이 22의 삶을 열정적으로 불태울 마지막 불꽃을 찾기 위해 노력했으나 모두 실패한다. ‘너는 절대 불꽃을 못 찾을 거야’,‘넌 안 돼.’ 멘토들이 22에게 전해준 것은 22가 원하는 삶을 찾지 못할 것이라는 울분에 찬 외침이었다.




내가 삶을 되찾고자 할 때

나도 이것이 나의 장점이 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는데, 나는 남의 말을 잘 귀담아듣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네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 101’를 내 귀에다 읊어줘도 개의치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들이 내게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해준 것처럼 나도 내 삶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이유를 찾고 싶었다.


‘왜 내가 실패자가 아닐까?’

‘나는 내가 실패자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내 생각이 진실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나?’


그 이후로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릴 수 있을지 고민했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전해주려고 했다. 그 시작은 좋아하는 유튜버의 영상에 꼬박꼬박 댓글을 남겨주는 것에서 출발했다. 다른 사람을 위한 사소한 친절은 부끄럽다는 이유로 속내를 잘 보여주지 못했던 내 주변 사람들에게 향했다. 조금 더 자주 안부를 묻고, 어떤 말을 해야 상대방과 더욱 잘 교감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것이 내가 실패자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주었을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저 내가 오로지 혼자서 해낸 일은 없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격려 때문에 지금 이런 삶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뿐이었다. 내가 혼자서 모든 것을 성공으로 이끈 인물이 아니라 평범한 주변 사람들의 작은 도움으로 삶을 이어온 사람이라는 사실은, 솔직히 인생의 주인공이 갖기에는 매력적이지 않은 설정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좀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평범한 개개인이 누리고 있는 삶이 얼마나 대단한지 눈치챌 수 있었다.


영화 소울은 내 젊은 날을 바쳐(라고 해봤자 그리 긴 시간은 아니다) 알게 된 사실을 매우 흥미로운 두 가지의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아주 다양한 인종이 거주하는 뉴욕의 현실적인 모습, 그리고 아무도 실체를 모르는 미지의 ‘태어나기 전의 세상’을 자유롭게 오가면서 무엇이 우리의 삶에 불꽃을 던져주는지 풀어나간다. 그것도 이제 막 꿈을 이루기 직전에 정신을 잃은 ‘조’와 지구에서 살아갈 생각이 전혀 없는 ‘22’의 대조적인 면을 부각하면서 말이다.


태어나기 전의 세상에 오게 된 조는 22와 함께 조가 살아있을 때의  순간들을 함께 감상한다. 자신의 삶을 바라보다가 조가 내뱉은 마지막 한 마디는 ‘내 삶은 초라했구나’였다.


어릴 때부터 재즈 연주가를 꿈꿨지만 계속 거절당한 끝에 겨우 얻은 자리는 비정규직 교사이고, 식사는 혼자서, 집에서도 혼자서 생활한다. 22는 이렇게 볼품없는 삶을 살았으면서 조가 왜 굳이 지구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지 의문을 갖는다. 그래서 조가 지구로 돌아갈 방법을 함께 찾는다.


그러나 지구에는 시니컬하고 회의적인 시선을 가진 22의 마음을 뒤흔드는 존재가 아주 많았다. 어쩌면 지구에 있는 모든 요소들이 22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존재해왔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지구에서 처음으로 맛본 뉴욕의 피자, 이발소에서 머리를 자르는 동안 수다를 떨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덤으로 달콤한 사탕까지 맛본 순간, 자신의 말에 기분이 상한 친구를 향해 사과와 함께 몰래 챙겨 온 사탕을 건네주고, 자신처럼 회의적인 생각을 가진 어린 학생과 진심으로 소통하는 순간, 지하철에서 버스킹을 하는 남자의 음악에 매혹되어 먹고 있던 베이글 반 쪽을 팁으로 건네주었던 순간.


수많은 멘토들을 울거나 화나게 했던 못 말리는 22는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을 마주하며 자신도 모르게 지구에서 살아갈 준비를 하게 된다.




부서진 꿈을 모았을 때

내가 나의 삶에 가장 만족하지 못했을 때는 하루하루가 똑같다고 느낄 때였다. 대개 이런 생각은 보통 일에 익숙해지고 환경에 익숙해질 때 들곤 했다. 처음에는 분명 설레고 흥미로웠던 일들이 점차 억지로 해야 하는 반복적인 일이 되었을 때 나의 삶 또한 마찬가지로 제자리에서 멈춰서 영원히 나아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때가 바로 나를 깎아내리는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는 순간이다. 여기서 이렇게 미래가 없고 인생에 전혀 도움되지 않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은 앞으로 영원히 쓸모없을 것이라는 말. 하지만 영화 ‘몬스터 대학교’에서 알 수 있듯, 픽사는 보편적으로 이상적인 삶이라고 여겨지는 자리에서 벗어난 인물들을 매우 따뜻하게 바라본다. 그래서 꿈을 이루어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 꿈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사람 모두를 향해 영화는 이렇게 말한다. ‘괜찮다.’


22는 지구에 있는 모든 것들을 선물처럼 받아들인다. 심지어 하늘하늘 떨어지는 나뭇잎 한 장을 보면서도 감탄한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전단지도 뜯어서 주머니 안에 소중하게 보관한다. 평생 동안 재즈에만 목을 메어 살았던 조가 마침내 피아노 위에 악보가 아닌 22가 모아 온 작고 소중한 것들을 늘어놓는 순간, 조는 자신의 삶을 다시금 되돌아본다. 다시 보니 과거의 자신은 비록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었지만 맛있는 음식을 보고 활짝 웃으며 기뻐하고 있었다.


‘괜찮다. 삶의 열정이 꺼져도, 인생의 패배자가 되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살아서 행복을 즐길 수 있으니까.’


돈도 제대로 모으지 못하고, 경력에 도움이 안 될 일만 잔뜩 하고 온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을 하는 내내 울상으로 지내지는 않았다. 아침 6시에 차를 타고 가면서 막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구경하는 게 즐거웠고, 오후 5시에 해가 저무는 걸 보며 퇴근하는 게 좋았다. 하늘은 단 하루도 똑같은 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늘 내가 하루하루 어제와 다른 삶을 살고 있으며 그래서 앞으로 마주할 하루도 기다릴 가치가 있다는 걸 알려준 존재가 바로 출퇴근하며 지저분한 창문 사이로 본 하늘이었다.


그래서 영화 소울이 전해주는 주제에 더욱 공감되었다. 삶을 움직이는 건 거창한 인생의 목표나 열정이 아니라 그저 오늘도 내일도 살아있고자 하는 의지에 달렸다는 것. 그리고 가끔 가족과 함께 먹는 피자와 때때로 올려다보는 하늘, 월급날이 되면 큰 맘먹고 잔뜩 사는 좋아하는 빵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삶은 실천하기 어렵지도 않다. 우리 모두 소울이 있으니까. 그러니 오늘 하루도 재즈처럼 살고 피자 한 조각에 기뻐하면서 살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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