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존재하기만 해도 괜찮은 이야기를 발굴하기

26년 2월 3주차 기록

by 현의

이번 주에 우연히 보고, 듣고, 만든 것들을 기록합니다. 인터넷이 제공하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대신, 나만의 목소리를 세상에 내놓는 능동적인 창작자로서 살아보기 위한 작은 여정이 담겨있습니다.


26년 2월 3주 차 보고, 듣고, 만든 것 요약


1) 본 것: 정말 유명하지만 읽어본적 없었던 책


이번 달 독서모임 도서로 선정된 사피엔스를 읽었습니다. 여태까지 읽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는 잘 몰랐지만 굉장히 유명하고 엄청나게 두꺼운 책이라는 점은 너무 유명해서 잘 알고 있었어요. 책을 직접 읽기 전까지만 해도 막연히 읽기 어렵고 힘들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상당히 잘 읽히고 너무 어렵지도 않은 책이어서 이번 주에 열심히 읽었습니다.


%EC%82%AC%ED%94%BC%EC%97%94%EC%8A%A4_3.jpg?type=w1 상상의 질서는 언제나 붕괴의 위험을 안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화에 기반하고 있고, 신화는 사람들이 신봉하지 않으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건 불변의 진실 대신 '상상의 믿음'이고, 이 믿음은 진실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는 사람들이 이를 계속 믿게끔 설득한다는 주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맥도날드는 버거가 아니라 행복을 판다, 애플은 핸드폰이 아니라 감성을 판다와 같은 마케팅 전략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기는 한데요. 그래도 세상은 허구의 이야기로 지탱되고 우리는 이를 쉽게 믿어버린다는 점은 언제 들어도 신선한 충격을 주네요.


어쩌면 우리는 이 신화가 진실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신화 밖의 세상은 절대 꿈꿀 수도, 현실로 만들 수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동안 사실이라고 믿어왔던 이야기가 사실 모두 신화였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한 믿음을 정말로 완전히 내던질 수 있을까요?


여행은 기분전환이나 시야의 확장을 위한 수단이 아니고, 돈은 행복의 척도가 아니고, 나이를 먹음으로써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는 건 사실이 아니고, 회사는 개인의 인생을 책임지지도 않고 자아실현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걸 진심으로 깨닫는다면 세상은 여전히 이 이야기를 믿더라도 나 자신의 세계관만이라도 완전히 바꿀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세상은 어떻게든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려고 그와 반대되는 주장이 거짓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만들어낼 텐데, 그런 이야기에도 흔들리지 않으려면 개인은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기도 했고 말이에요.


이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매우 다른 주장을 내세울 수 있을 것 같아서 독서 모임용 책으로 정말 적합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2) 만든 것

- 그냥 존재하기만 해도 괜찮은 초안


이번 주에는 새롭게 시도해 보고 싶은 글감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이 아이디어를 그냥 생각으로만 끝내고 싶지 않아서 지난 며칠 동안 새벽 1시가 넘을 때까지 이 주제에 대해 무언가를 적어보았어요.


이전에도 여러 번 그랬던 것처럼 며칠 정도 지나자마자 열정이 시들어버릴까 봐 염려되어서 일단 어디에도 게시하지 않고 비공개 초안을 작성해 보았습니다. 누구에게 공개해야 할 이유도 없고, 알고리즘이나 클릭률을 신경 쓸 필요도 없이,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현실로 옮기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하니 마음이 엄청나게 가벼워졌어요.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그동안 무언가를 해보겠다고 선포한 것 중에서 실제로 이뤄낸 것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을 하겠다고 말을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 목표를 꼭 달성해야만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려 원동력을 잃어버려서 그랬던 건 아닐까 싶기는 해요.


어설퍼도 괜찮으니 일단 결과물이 현실에 존재하도록 해보자. 지난 며칠간은 어떤 부담도, 걱정도 없이 오직 이 생각만 안고 초안을 작성했습니다. 이 초안을 모아서 무엇을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무언가를 만드는 데 완전히 몰입하는 경험은 언제나 설레고 즐겁다는 걸 지난 이틀 동안 많이 느꼈습니다. 세상에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존재가 있다는 점도 배웠고 말이에요. 지금은 이 초안의 의미를 모르더라도 일단 계속 만들다 보면 의미는 저절로 그 뒤를 따라오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 7일간의 블렌더 3D 여정

아무리 매일 무언가를 만들더라도 실력이 급속도로 늘지는 않는다는 걸 깨달은 한 주였습니다. 아직도 마음먹은 대로 만들어지지 않는 게 많고, 조명이나 구도를 설정하는데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결과는 별로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건 마치 운동 같기도 해요. 실력을 키우는 게 전부가 아니라 정신력도 단련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실력이 빠르게 늘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진도가 빠르지 않다고 해서 아예 성장이 멈춘 건 아닐 테니 여기서 의욕을 꺾어보진 않으려고 해요. 마음속으로 어떤 갈등을 맺었든 일단 이번 주에도 매일 블렌더로 3D 모델링을 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을 일단 축하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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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일요일]

간단하게 시리얼과 우유를 만들어보려고 했어요. 우유갑의 세모난 부분을 만드는 데 생각보다 어려움이 있을 줄은 만들기 전까지만 해도 미처 몰랐어요. 어쨌든 귀여운 결과물이 나와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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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설날을 맞아 전을 만들어보았어요. 사실적인 전보다는 귀여운 전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전쿠키 사진을 참고해 만들어보았습니다. 불판을 만드는 게 가장 쉬웠고, 버섯 쿠키를 만들 때 상당히 헤맸어요. 이렇게 귀여운 모양의 버섯전은 현실에서 먹어본 적이 없는데 보기 좋은 만큼 맛도 있을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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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Physics를 이용해 케첩을 만들어보았어요. 마음먹은 대로 제대로 되는 게 없어서 의외로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아직 몇 번 써본 적 없는 낯선 기능이니 어려웠을 뿐, 시간을 투자해 여러 번 사용하다 보면 결국 능숙해질 수밖에 없다는 희망을 가져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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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Physics 기능을 활용해 이번에는 팬케이크 시럽을 만들어보았어요. 하지만 오직 Physics를 활용해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시럽을 만드는데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팬케이크에 시럽이 착 달라붙지 않길래 결국 스컬프 기능으로 시럽을 안쪽으로 밀어 넣었어요. 시럽을 만드는데 너무 많은 기력을 써서 지쳐버렸기 때문에 팬케이크의 텍스처는 이미지를 넣는 것으로 끝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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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스프링클로 뒤덮인 캔디를 만들어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블렌더 5.0 버전에 새로 추가된 흩뿌리기 모디파이어를 사용했었어야 했나 봐요.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과물이 불만족스러워도 그냥 마무리를 지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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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시리얼 상자 만들기 튜토리얼을 보며 만들어낸 결과물. 상자 모양대로 UV 매핑을 할 정도의 시간 여유는 없어서 그냥 예전에 간단히 만든 로고 이미지를 재사용해 보았어요. 아주 간단하게 클릭 몇 번 하는 것만으로 별사탕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새로 배워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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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어제 배운 별사탕 만드는 법을 손에 익히고 싶어서 별사탕 우산을 만들어보았어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고, 이번 주에 만든 모델링 중 가장 귀여운 결과가 나와서 너무 만족스러웠습니다.


다만 처음에는 렌더링을 하고 나니 별사탕을 담은 투명한 통이 별사탕의 모양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게 아니라 이중으로 겹쳐지게 보일 정도로 물체를 왜곡하더라고요. 제미나이를 통해 원인을 물어보았는데 굴절률(IOR) 값을 낮춰보라고 제안하길래 IOR 값을 1로 낮추었더니 드디어 원하는 모습을 만들 수 있었어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매일 그럭저럭한 걸 만들 뿐, 무언가 변화가 있거나 새로운 걸 배우고 있기는 한지 스스로가 의심스럽긴 했는데요. 어쩌면 그 의심은 괜한 걱정이었던 것 같아요. 며칠 전에는 완전히 이상한 모양의 사탕을 만들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귀여운 사탕을 자연스럽게 만들 수도 있는 것처럼, 오늘의 실패가 꼭 내일의 실패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점을 배운 것만으로도 꽤 괜찮은 여정인 것 같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배움은 단순히 실력을 늘리는 게 아니라 마음까지도 단련하는 것이니 말이에요.




3) 들은 것: 클로드(Claude)의 정체

이번 주에는 EBS의 영어 방송 '모닝스페셜'을 듣다가 알비노 악어 클로드가 30살이라는 나이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악어 클로드의 24시간을 생중계하는 카메라 장비를 설치하는데 클로드 AI를 개발한 스타트업 앤트로픽이 후원도 했었다는 내용이 기사에 살짝 언급이 되었는데 문득 클로드 AI와 악어 클로드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방송이 끝난 후 관련 기사를 찾아보았는데, 클로드 AI는 미국의 수학자 클로드 섀넌의 이름을 따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추후에 샌프란시스코의 알비노 악어 클로드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로 앤트로픽은 악어 클로드를 공식적으로 후원하게 되었다고 해요. 회사 내 엘레베이터 스크린에는 악어 클로드의 라이브 방송이 나오고, 슬랙에서는 악어 클로드 이모티콘을 사용하고, 사무실 곳곳에 악어 관련 용품도 있다고 합니다.


[참고]

https://www.wsj.com/lifestyle/workplace/claude-albino-alligator-anthropic-8804a8b5

https://royalexaminer.com/ai-meets-alligator-claude-the-chatbot-finds-its-spirit-animal/


기사에서는 클로드 앞으로 어린아이들이 카드를 보내기도 한다는 얘기가 등장했어요. 자연에서는 거의 보기도 힘들고 생존하기도 어려운 알비노 악어 클로드가 사람들과 잘 어우러지며 지내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도 남들과 다른 모습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보낸다고 합니다.


악어 클로드와 AI 클로드가 그저 이름만 같을 뿐만 아니라는 점을 새롭게 알게 되어 신기했어요. 남다름을 포용하고 장려하는 사회는 그 사회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를 견고히 하기 위해 어떤 신화를 발굴하는지 엿볼 수 있는 기사라는 점도 재미있었습니다. 인간 사회가 신화로 지탱된다는 사실 자체는 좋고 나쁨을 따질 수 있는 게 아닐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어떤 이야기를 믿기로 선택했는지, 그 이유는 정확히 무엇인지가 훨씬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다면 저는 스스로의 취약함을 드러내더라도 별일이 생기지 않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새롭게 믿어보고 싶어요. 취약함은 약점이 아니고, 비난받을만한 대상도 아니고, 자신과 같은 취약함을 가진 사람들이 더 이상 세상에 혼자가 아님을 증명하는 힘이 되어준다는 신화를 믿어보고 싶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겉으로 강인해 보이는 것,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것이 좋다는 신화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어떤 의심도 품지 않게 된 것 같아요. 겉으로 드러나는 권위가 아니라 내재된 취약함에도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고 믿으면 이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움직일까요? 그리고 이런 신화가 사실처럼 느껴지려면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더 많이 발굴되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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