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악마』, 억압된 본능의 처절한 복수
이 글은 강신주의 베스트셀러 『감정수업』을 길잡이 삼아, 스피노자의 48가지 감정중 10가지 감정을 소설과 함께 다시 읽어 내려가는 인문학 연재입니다.
당신은 자신의 인생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이성적인 계획, 건강한 신체, 남부럽지 않은 평판.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면, 고작 '지나가는 감정' 따위에 삶이 무너질 리 없다고 확신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1889년,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자신의 서재 안락의자 등받이 속에 원고 뭉치 하나를 꽁꽁 숨겨두었습니다. 아내에게조차 보여줄 수 없었던 그 소설의 제목은 『악마(The Devil)』.
이 소설에는 뿔 달린 괴물도, 초자연적인 현상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26살의 젊고 유능한 한 남자가 등장합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완벽한 성(城) 안에서, 스스로 통제 가능하다고 믿었던 작은 '거래' 하나 때문에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당신이 사소하게 여긴 그 욕망은, 정말 당신의 통제 아래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이 비극을 통해 마주할 감정의 이름은 **'욕정'**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것을 이성으로 억누르거나, 숨겨야 할 부끄러운 본능으로 치부하곤 합니다. 하지만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이것을 아주 담백하고 명료하게 정의했습니다.
욕정 (libido)
"성교에 대한 욕망이나 성교에 대한 사랑이다."
스피노자, 『에티카』
스피노자에게 욕정은 죄악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의 힘을 유지하거나 증진시키려는 우리의 본질적인 노력, 즉 '코나투스(conatus)'의 가장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몸을 섞고 싶어 하는 것은 단순히 종족 번식을 위한 동물의 본능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기쁨을 확장하고, 타인과 깊이 연결되고자 하는 '개체적인 의미를 지닌 소중한 감정'입니다.
하지만 이 자연스러운 생명력을 '기능적인 배설'로 취급하거나 억압할 때, 그것은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되어 우리를 찾아옵니다. 톨스토이의 주인공 예브게니처럼 말입니다.
소설의 주인공 예브게니 이르테네프는 누가 봐도 성공할 조건을 갖춘 젊은이입니다. 명문 법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정부 부처에서 장관의 후원을 받으며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막대한 빚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인생 항로는 급변합니다.
그는 도시의 화려한 삶을 정리하고 어머니와 함께 시골 영지로 내려갑니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 낡고 방만한 영지를 혁신하여 할아버지 시대의 영광을 되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새벽부터 밤까지 일했습니다. 그는 이성적이고, 도덕적이며, 금욕적인 생활을 하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한 가지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혈기 왕성한 20대 청년인 그는 독신 생활이 길어지자 육체적인 괴로움을 느꼈습니다. 그는 이것을 사랑이나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해결해야 할 '위생적인 문제'로 간주했습니다.
"그저 건강을 위해 필요한 것뿐이야. 누구도 알게 해서는 안 되며, 건강을 지키는 정도로만 즐기자."
예브게니는 숲지기 다닐라를 찾아갑니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부끄러워하면서도, "나는 수도승이 아니야"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여자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다닐라는 흔쾌히, 마치 물건을 구해주듯 말합니다.
"마침 괜찮은 여자가 있습니다. 남편이 도시에 나가 있어 혼자 지내는 여자죠. 깔끔하고 뒤탈 없을 겁니다."
그녀의 이름은 스테파니다. 마을 농부의 아내였습니다. 약속된 날, 예브게니는 숲 속으로 들어갑니다.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렸지만, 그것은 설렘이라기보다는 죄책감과 동물적인 흥분이 뒤섞인 감정이었습니다.
숲 속 오솔길,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나타났습니다. 붉은 머릿수건, 걷어 올린 소매, 맨발의 건강한 다리. 스테파니다는 수줍은 듯하면서도 대담하게 그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습니다.
그날의 만남은 짧고 강렬했습니다. 예브게니는 돌아오는 길에 다닐라에게 돈을 쥐여주었습니다. 그는 이 관계가 그저 돈으로 해결되는 깔끔한 거래라고 믿었습니다.
이것이 욕정을 '대상화'하는 순간입니다. 나의 욕망을 나의 일부로, 삶의 기쁨으로 인정하지 않고 단순히 처리해야 할 배설물이나 기능적인 필요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스피노자가 말했듯, 인간의 욕정은 동물의 발정과는 다릅니다.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관계'와 '정서'가 깃들기 마련입니다. 예브게니는 자신이 돈을 주고 산 것이 단순한 육체가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파고들 '기억'이라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자, 예브게니는 스테파니다와의 관계를 정리합니다. 남편이 도시에서 돌아오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가 결혼을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상대는 귀족 가문의 딸 '리자 안넨스카야'. 그녀는 예브게니가 꿈꾸던 이상적인 아내였습니다. 순결하고, 정숙하며, 남편을 숭배하듯 사랑하는 여자. 그녀의 맑고 신뢰감 주는 눈동자를 보며 예브게니는 안도했습니다.
"이제 모든 더러운 과거는 끝났다. 나는 새 사람이 될 것이다."
그는 결혼과 동시에 스테파니다와의 기억을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버립니다. 양심의 가책 같은 건 느낄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그저 젊은 날의 실수였고, 돈으로 정산된 과거였으니까요.
결혼 생활은 완벽해 보였습니다. 빚은 줄어들었고, 농장은 번창했으며, 리자는 사랑스러운 딸을 낳았습니다. 예브게니는 존경받는 지주이자 훌륭한 가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과거의 욕망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졌다고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잊고 지냈던 불씨가 다시 타오릅니다. 집안 대청소를 하던 날이었습니다.
물을 긷기 위해 양동이를 들고 있던 여자. 붉은 머릿수건, 걷어 올린 치마 아래로 드러난 하얀 종아리.
스테파니다였습니다.
그녀는 그를 보고 피하거나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눈웃음을 치며 활기차게 지나갔습니다. 그 순간, 예브게니의 심장은 쿵 하고 내려앉았습니다.
"그는 문득 자신이 파멸했음을, 완전히 돌이킬 수 없이 파멸했음을 깨달았다. 또다시 그 고통이, 그 모든 끔찍한 공포가 찾아온 것이었다."
단순히 잊었다고 생각했던 욕망이, '사랑'도 '이성'도 아닌 통제 불가능한 괴물이 되어 그를 덮친 것입니다.
완벽하게 쌓아 올린 그의 도덕적 성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내일 2부에서 계속됩니다)
� 오늘의 질문
Q. 혹시 당신도 '이건 그냥 스트레스 해소용이야', '잠깐 즐기는 것뿐이야'라며 자신의 감정이나 욕망을 물건처럼 취급한 적은 없나요?
Q. 억누르면 사라질 것이라 믿었지만, 예고 없이 불쑥 튀어나와 당신을 당황하게 만든 당신만의 '붉은 머릿수건'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