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서머싯 몸의 비극, 그리고 걷힌 인생의 베일
이 글은 강신주의 베스트셀러 『감정수업』을 길잡이 삼아, 스피노자의 48가지 감정중 10가지 감정을 소설과 함께 다시 읽어 내려가는 인문학 연재입니다.
죽음의 땅 메이탄푸에서 키티는 수녀들과 함께 봉사하며 자신의 허영심을 벗고 내면적으로 성장합니다. 그러나 임신 사실과 아이의 아버지를 모른다는 고백은 남편 월터를 절망에 빠뜨렸고, 결국 월터는 콜레라에 감염되어 죽음을 맞이합니다.
죽음을 앞둔 월터의 침상 곁에서, 키티는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빕니다. "월터, 제발 나를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묻습니다. 아직도 자신을 경멸하느냐고.
죽어가는 월터의 대답은 이 비극의 정점을 찍습니다.
"아니. 나 자신을 경멸해. 당신을 사랑했으니까."
월터의 잔혹함은 끝내 키티가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는 키티의 배신보다, 그녀 같은 여자를 사랑해서 자신의 영혼을 비틀어버린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힘을 짜내어 수수께끼 같은 유언을 남깁니다.
"죽은 건 개였다 (The dog it was that died)."
이 말은 올리버 골드스미스의 시 「미친 개의 죽음에 대한 애가」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시 속에서 선한 사람을 문 미친 개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물린 사람이 죽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독이 올라 죽은 것은 사람이 아니라 개였다는 아이러니를 담고 있습니다.
월터는 자신을 '개'에 비유했습니다. 키티에게 상처를 주고 복수하려 했던 자신의 잔혹함(독)이, 결국 키티가 아닌 자기 자신을 파멸시켰다는 서늘한 자조이자 고백이었습니다.
잔혹함은 타인을 향해 던지는 칼이지만, 그 칼자루에는 날이 서 있어 쥐고 있는 사람의 손을 먼저 베어버린다는 스피노자의 통찰이 비극적으로 증명된 순간입니다.
월터의 죽음 이후, 키티는 홍콩으로 돌아옵니다. 찰스 타운센드와 재회했을 때, 찰스는 뻔뻔하게도 그녀를 유혹하려 듭니다. 키티는 순간적으로 흔들려 그에게 몸을 맡기지만, 곧바로 극심한 자기혐오를 느끼며 그를 떠납니다. 이 마지막 실수는 그녀가 성녀가 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불완전하지만 끊임없이 싸우는 인간임을 보여줍니다.
영국으로 돌아온 키티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평생 소원했던 아버지와 화해합니다. 그녀는 태어날 아이를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인격체"로 키우겠다고 다짐하며, 자신을 얽매던 '인생의 베일'을 걷어내고 미지의 미래를 향해 걸어갑니다.
이 소설은 단순한 허구가 아니었습니다. 월터 페인의 비극적인 사랑과 자기혐오는 작가 윌리엄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 1874~1965)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이 투영된 거울이었습니다.
몸은 8세에 어머니를, 10세에 아버지를 잃고 고아가 되었습니다. 숙부의 집에서 자라며 그는 심한 말더듬이가 되었고, 이는 평생 그를 괴롭힌 콤플렉스였습니다. 소설 속 월터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내면으로 침잠하는 모습은 어린 시절 몸의 초상과 겹칩니다.
무엇보다 몸은 동성애자(혹은 양성애자)였습니다. 당시 영국 사회에서 동성애는 단순한 성적 지향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사회적 생명이 끝나는 파멸을 의미했습니다.
몸이 20대 초반이었을 때, 당대 최고의 문호였던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가 동성애 혐의로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와일드는 유죄 판결을 받고 2년의 중노동형을 선고받았으며, 출소 후에도 사회적으로 완전히 매장당해 쓸쓸히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 사건은 젊은 몸에게 씻을 수 없는 공포를 심어주었습니다. '나도 들키면 저렇게 된다'는 공포는 그를 평생 따라다녔습니다. 그는 자신의 본성을 철저히 숨겨야만 했습니다. 그는 1917년 시리 웰컴(Syrie Wellcome)과 결혼했지만, 이는 사랑보다는 사회적 규범에 맞추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위장막(Veil)'이었습니다. 그는 훗날 이 결혼을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라고 회고했습니다.
3. 작품과의 공명: 연기하는 삶의 고통
몸은 아내 시리가 속물적이고 천박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회적 시선 때문에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 애썼습니다. 소설 속에서 월터가 키티에게 "당신이 어리석고 경박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사랑했다"고 말하며 괴로워하는 장면은, 작가 자신이 평생 겪어야 했던 '사랑할 수 없는 여자를 사랑해야 하는 척했던', 혹은 '자신의 지성과 본성을 숨기고 연기해야 했던' 고통스러운 자기 고백입니다.
월터가 겪은 '사랑의 굴레'와 '자기 경멸'은 작가 서머싯 몸이 평생토록 쓰고 살아야 했던 '그림 그려진 베일(The Painted Veil)'의 무게였던 것입니다. 그는 소설을 통해, 거짓된 삶을 사는 것이 영혼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처절하게 증언했습니다.
『인생의 베일』은 '잔혹함'이 타인이 아닌 자신을 향한 칼날임을 보여주는 비극이자, 그 칼날 위를 걸어서라도 기어이 '성장'해내는 인간 의지에 대한 찬가입니다.
키티는 남편의 죽음과 자신의 과오를 딛고, 비로소 타인의 욕망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 삶을 선택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녀의 여정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실수와 고통 속에서 '베일'을 걷어내고 삶의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중요하다고 말입니다.
당신이 겪은 사랑의 잔혹함도, 어쩌면 당신을 덮고 있는 베일을 찢기 위한 삶의 아픈 신호였을지 모릅니다.
� 자기 삶으로 돌아보는 질문
Q. 월터가 남긴 "죽은 건 개였다(상대를 해하려던 독이 나를 죽였다)"는 말처럼, 타인을 미워하고 상처 주려다 오히려 당신의 마음이 먼저 지옥이 되었던 경험이 있나요?
Q. 작가 서머싯 몸은 사회적 시선 때문에 원치 않는 결혼이라는 베일을 썼습니다. 당신은 지금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혹은 미움받지 않기 위해 어떤 '가짜 베일'을 쓰고 연기하며 살고 있습니까?
Q. 키티가 메이탄푸라는 고통의 땅을 지나며 성장했듯,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당신에게 가르쳐준 '삶의 진실'은 무엇이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