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잔혹함:『인생의 베일』

부제: 깨어진 환상과 자기 파괴적 복수의 끝

by 설탕바른위로

이 글은 강신주의 베스트셀러 『감정수업』을 길잡이 삼아, 스피노자의 48가지 감정중 10가지 감정을 소설과 함께 다시 읽어 내려가는 인문학 연재입니다.


[2부] 형벌의 땅, 연옥에서 잔혹함의 비용을 계산하다


어제까지의 이야기


허영심 때문에 사랑 없는 결혼을 택한 키티는 바람둥이 찰스와 외도를 저지릅니다. 이를 알게 된 남편 월터는 깊은 배신감 속에서 키티에게 '죽음의 땅' 메이탄푸로 함께 가거나, 찰스와 재혼한다는 조건으로 이혼해주겠다는 극단적인 선택지를 제시합니다.


깨어진 환상: 사랑은 잔혹한 현실 앞에 무력하다


키티는 찰스가 자신을 구원해 줄 것이라 확신하며 그를 찾아갑니다.

"월터가 이혼해 주겠대요. 당신과 결혼한다는 조건만 있으면요!"


하지만 찰스의 반응은 키티의 기대를 산산조각 냈습니다.

사교계에서의 평판과 출세, 그리고 아내 도러시가 주는 안락함을 잃을 생각이 전혀 없었던 찰스는 냉담하게 변했습니다. 그는 키티와의 관계는 즐거웠지만, 가정을 깰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오, 이런. 사랑에 빠진 남자의 말을 믿다니..."


찰스의 이 한마디는 키티가 쓰고 있던 '인생의 베일', 즉 사랑에 대한 환상을 무참히 찢어발겼습니다. 그녀가 '운명적 사랑'이라 믿었던 것은 찰스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유희에 불과했습니다.


절망과 수치심에 휩싸인 키티는 결국 월터를 따라 콜레라가 창궐하는 메이탄푸로 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녀에게 남은 길은 죽음이 도사리는 유배지뿐이었습니다.


연옥으로의 이주: 질병의 은유와 죽음의 풍경


중국 내륙 깊숙한 곳, 메이탄푸는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소설의 모티프가 된 단테의 『신곡』 중 「연옥편(Purgatorio)」처럼, 이곳은 죄를 지은 자들이 고통을 통해 정화되는 공간입니다.


이곳을 지배하는 콜레라는 강력한 상징입니다. 수전 손택이 지적했듯 질병은 종종 도덕적 타락에 대한 심판으로 은유 됩니다. 메이탄푸의 거리는 시체로 넘쳐났고, 사람들은 "파리처럼 죽어 나갔습니다".


죽음의 공포가 공기처럼 떠다니는 이곳에서, 키티가 홍콩 사교계에서 누렸던 미모와 허영, 가식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습니다.


키티는 처음에 공포와 증오에 사로잡혀 남편을 원망했습니다. 월터는 밤낮없이 환자들을 돌보느라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키티는 텅 빈 집에서 죽음의 그림자와 마주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극한의 고립은 역설적으로 그녀가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이 되었습니다.


자기 파괴적 잔혹함: 월터의 슬픈 속죄


월터의 중국행은 키티에 대한 복수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는 의사이자 세균학자로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환자들을 구하려 애씁니다. 하지만 그의 헌신에는 어딘가 자학적인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스피노자의 통찰처럼, 사랑하는 자에게 가하는 잔혹함은 결국 자기 자신을 해하는 것입니다.


월터는 키티를 죽음의 땅으로 데려옴으로써 그녀를 벌하려 했지만, 동시에 "합법적으로 스스로를 파멸시킬 수 있는 장소"를 찾아온 것이기도 합니다.


그는 자신의 사랑이 키티 같은 '이류'에게 바쳐졌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본모습을 억눌러왔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의 과로와 헌신은 인류애라기보다, 사랑에 실패한 자가 선택한 완만하고 고통스러운 자살에 가까웠습니다.


베일을 걷고 성장하다: 새로운 삶의 가능성


죽음이 일상이 된 곳에서 키티는 서서히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프랑스 수녀원을 방문하여 고아들을 돌보는 수녀들의 숭고한 희생을 목격합니다. 그곳의 원장 수녀는 키티에게 말합니다.

"평화는 일이나 쾌락이 아닌 자신의 영혼 속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키티는 수녀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봉사를 시작하며, 처음으로 자신 아닌 타인을 위한 삶의 기쁨을 맛봅니다. 또한 그녀는 묵묵히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남편 월터에게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이상하고도 거북스러운 위대함"을 발견합니다.


경멸은 존경으로, 원망은 연민으로 변해갔습니다. 그녀는 찰리가 얼마나 천박한 허풍쟁이였는지,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뼈저리게 깨닫습니다.


그러나 운명은 가혹했습니다. 키티는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날짜를 계산해 보아도 아이의 아버지가 월터인지 찰스인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월터가 "내가 아이의 아버지인가?"라고 물었을 때, 키티는 거짓말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거짓으로 삶을 덮고 싶지 않았습니다.


"모르겠어요!"


이 비명 같은 고백은 월터를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그는 마지막 희망조차 잃어버린 듯, 깊은 절망 속으로 침잠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월터는 콜레라에 감염됩니다. 소설은 그가 실험을 하다가, 혹은 삶의 의지를 놓아버림으로써 스스로 죽음을 맞이했음을 강하게 암시합니다.


(내일 3부에서 계속됩니다)


� 오늘의 질문

Q. 월터는 자신의 고통을 잊기 위해, 혹은 속죄하기 위해 일에 몰두하며 스스로를 혹사했습니다.

당신도 감당하기 힘든 배신이나 이별의 아픔을 겪을 때, 자신을 돌보는 대신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방식으로 그 고통을 견뎌본 적이 있습니까?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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