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잘 살아가는 것일까.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 다니던 회사로 복귀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다. 방사선과 항암치료는 아직도 일곱 달 이상 남아 있다. 치료가 끝나면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돌아간다 해도 예전의 나로는 살 수 없을 것 같다. 병을 알기 전에는 늘 내일이 당연히 올 것처럼 살았다. 해야 할 일, 만나야 할 사람, 처리해야 할 업무가 내 삶의 전부였다. 그런데 이제는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하다. 하루를 버티는 일조차 쉽지 않다.
만약 회사를 다시 가지 못한다면, 고정 수입이 전혀 없는 상태가 된다. 그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병보다 더 무서운 것은 ‘생계’라는 단어다. 항암으로 지쳐 누워 있는 날에도 머릿속에서는 계산이 멈추지 않는다. 앞으로 남은 치료비, 생활비, 그리고 언젠가 닥칠 미래의 비용들. 몸은 쉬어야 하는데, 마음은 도무지 쉬질 못한다. 불안은 암보다 더 끈질기게 나를 따라붙는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으로 살아가야 할까.
문득 떠오르는 것은 ‘글쓰기’다. 병상에서도, 새벽의 고요 속에서도, 나는 자꾸 글을 쓰고 싶어진다.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아픔이 잠시 뒤로 밀린다. 머릿속의 무거운 생각들이 글로 옮겨질 때, 내 안의 고통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처음엔 단지 기록이었다. 항암 1일차, 10일차, 50일차… 그렇게 적어가던 일기가 어느새 내 마음의 거울이 되었다. 고통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살아 있고, 느끼고, 생각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글쓰기로 돈을 벌 수 있을까.
이 생각을 하면 스스로도 웃음이 난다. 평생 회사 안에서만 살아온 내가, 갑자기 글로 먹고 살겠다고 마음먹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글은 나를 살리고 있다. 내가 병원 침대에 누워 있을 때도, 세상이 멀게 느껴질 때도, 글은 내 손끝에서 작은 불씨처럼 타오른다. 글을 쓰면 마음의 온도가 올라간다.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누군가의 긴 밤을 덜 외롭게 해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요즘 나는 ‘버는 글’보다 ‘살아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나도 그래요”라는 말 한마디를 들을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큰 보상일 것이다. 글로 돈을 벌겠다는 목표가 아니라, 글로 내가 다시 살아가겠다는 다짐으로 매일을 이어간다.
이제 나는 결과보다 과정을 바라본다. 오늘 쓴 글이 내일의 나를 바꾼다고 믿는다. 언젠가 내 이야기를 책으로 묶을 수 있다면, 그것이 내 인생의 두 번째 출근일지도 모른다. 병을 이유로 멈추지 않고, 오히려 그 병을 통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된 것이다.
앞으로의 길이 불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병원 진료 일정표는 내 달력 한가득을 채우고, 몸은 예전처럼 따라주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만큼은 이전보다 단단해졌다. 회사의 책상 대신 글상자를 열고, 보고서 대신 내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지금의 나에게서 ‘진짜 나’를 조금씩 발견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치료의 날들을 기록하고, 엄마의 미소를 담고, 두 아들의 안부를 묻는 편지를 적는다. 글은 내 삶을 이어주는 끈이 되고, 내일로 향한 다리 역할을 한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글이 아니라, 살아남은 나 자신에게 보내는 응원의 편지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무엇을 이루느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버티느냐가 더 중요하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마음의 풍요로움이 없는 삶은 공허하다.
그리고, 글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희망’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오늘도 살아 있는 단어 하나를 붙잡는다.
쓰는 동안만큼은 살아 있음이 느껴진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글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