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속에서도 웃을 수 있기를

by 또 다른세상


오늘은 추석이다. 7일간의 긴 연휴가 시작되자, 공항에는 해외로 떠나는 사람들로 붐볐다. 국내에서도 차례를 지낸 뒤 여행을 가려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나의 명절 풍경은 이미 달라졌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음식 준비에 정신이 없었지만, 이제는 명절이 되어도 조용히 산책을 나갈 채비를 한다.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지금은 친정엄마, 큰언니,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한집에 살고 있다.


항암부작용으로 제대로 걷지 못하면서 비바람 부는 날 밖에 나가겠다는 내 말에 가족들은 만류했다. 그러나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일주일 뒤면 집안일을 도와주던 큰언니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전까지 조금이라도 움직여 보고 싶었다. 또 식구들의 걱정을 끼치기 싫었다. ‘걸을 수 있을 때 걸어야지.’ 그 마음은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우산과 휴대폰을 챙겨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막상 아래로 내려와 보니 바람은 생각보다 세지 않았다. 다행이라 여겨 우산을 폈다. 인근 상가에는 문을 열고 영업을 하는 가게들도 있었다. 공원으로 향하는 길, 비 오는 날임에도 걷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짧은 운동복 차림으로 달리는 사람,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 평소보다 적었지만, 그들 역시 각자의 삶을 오늘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 사이 바람이 거세지고 빗방울이 우산을 흔들었다. 나는 우산 손잡이를 꽉 쥐고, 바람이 부는 방향에 맞춰 몸을 기울이며 걸었다.

날씨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내가 맞춰야 한다. 혼자 비오는 공원을 산책하는 것도 소중한 시간이다.

오후 늦은 시간, 손님이 찾아왔다. 나와 동갑인 지인의 암 소식을 전했다. 후항암까지 마쳤지만 골반뼈로 전이되어 다시 항암을 시작한다는 이야기였다. 처음엔 호르몬성 유방암이었는데, 수술 후에는 삼중음성으로 성질이 변했다고 했다. 뼈 전이라니, 이제는 4기다. 말 한마디가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나조차도 아직 치료 중인데, 그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복잡할까.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나는 수술을 마치고 지금은 방사선치료 중이다. 수술 전에는 2기였지만, 선항암을 마친 후에도 암세포가 남아 있어 3기 초로 병기가 조정됐다. 종양내과 의사는 후항암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방사선과 병행하면 부작용이 심할 수 있다며, 치료 시기를 11월로 미루자고 했다. “더 힘들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얼마나 힘들기에 그런 말을 할까. 두려움이 밀려왔다.


암환자로 살아간다는 사실이 여전히 낯설다. 항암과 방사선, 그리고 또 항암. 이 모든 과정을 겪어도 ‘완치’라는 단어는 보장되지 않는다. 그래도 버텨야 한다. 견뎌야 한다. 그것이 내 몫이기 때문이다. 선항암이 끝난 지도 어느덧 석 달째. 손끝과 발끝의 말초신경염은 여전히 남아 있다. 앞으로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계는 어떻게 유지해야 할까. 걱정은 꼬리를 문다.


공원에서 자주 마주치는 어르신이 있다. 지팡이에 의지하며 비 오는 날에도 꾸준히 걷는다. 그런 모습을 보면 마음 한켠이 따뜻해진다. 삶이란 결국 그런 것 아닐까. 바람 불고 비 내릴 때도, 햇살이 따가울 때도, 걸을 수 있을 만큼만 걷는다. 멈추지 않고 나아간다.


날씨가 좋지 않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지난 뒤 그날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산 속으로 비가 들이쳐도, 걸을 수 있다면 걷는다. 우산이 날아갈 정도로 바람이 불어도, 손에 힘을 주어 잡고 있으면 된다.


내 인생의 하늘도 늘 맑지는 않다. 흐릴 때가 있고, 폭풍이 몰아칠 때도 있다. 내몸이긴 하지만 몸상태는 알수가 없다. 그 몸에 내 생각과 행동은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다. 내 인생의 그 모든 날씨를 다 받아들이려 한다. 일어나지도 못할 만큼 아픈 날이 와도, 치료의 길에서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아픔을 부정하지 않고, 그 안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 한다.


누구나 고통 속에서 울지만, 어떤 이는 그 속에서도 웃는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방사선치료실, 항암실, 어느길에서, 집안의 작은 거울 앞에서. 오늘 하루도 살아 있음을 느끼며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만나는 사람마다 눈을 마주치며 밝게 웃을 수 있다.


비와 바람을 견디듯, 고통도 언젠가는 지나간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내일의 몸이 더 아프더라도, 오늘의 마음이 버텨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고통 속에서도 웃을 수 있다. 그것이 내 삶의 기도이고, 나 자신에게 건네는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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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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