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다시 사랑하는 법

by 또 다른세상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를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스스로를 외면하며 살아온 시간이 길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하지만 오랫동안 그 말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돌봄의 시간보다 남을 맞추고 기대에 부응하는 일에 집중했다. 효녀딸, 좋은 엄마, 성실한 직원, 믿음직한 친구… 그 역할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썼지만, 모든 가면 속에서 진짜 모습은 점점 희미해졌다.

어느 날 문득 거울 속 얼굴을 바라보았다. 낯선 눈빛이 응시하고 있었다. 피곤과 지친 표정, 굳어진 얼굴선, 희미하게 남아 있는 눈가의 주름 속 피로감. 그제서야 자신이 얼마나 외로운 존재였는지 깨달았다. 긴 시간 동안 스스로를 잊고 살아온 날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도 알았다. 결심했다. 다시 스스로를 사랑해야겠다고. 하지만 그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시 사랑한다는 것은 거창한 선언이나 특별한 성취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주 작은 순간, 사소한 행동에서 시작된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부드럽게 말을 걸어보는 것부터 시작했다. “오늘 하루 수고했어. 괜찮아.” 혼잣말로 내뱉는 말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조금 따뜻해졌다. 그날부터 작은 시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루 10분 정도 햇볕 아래 산책하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고 호흡을 느끼는 일, 짧게라도 감정을 글로 적는 일. 모든 것이 스스로를 다시 마주하는 연습이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아픔과 마주하고, 두려움과 실패의 흔적들을 다시 들여다봐야 했다. 오랫동안 숨기고 외면해 온 실수들, 상처받은 감정들, 인정받지 못한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처음에는 기억들이 무겁게 느껴졌지만, 조금씩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렇게 느꼈구나.’ ‘그때 최선을 다했구나.’ 내 안의 상처들을 부정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순간,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공감할 수 있었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일 또한 중요한 과정이었다. 오랫동안 남의 기대와 평가에 맞추며 살아왔다. 효녀딸, 좋은 엄마, 능력있는 직원, 신뢰받는 동료, 성실한 친구… 모든 역할 속에서 진짜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남들의 기대를 내려놓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관계가 바뀌었고, 때로는 멀어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빈자리에는 평온함과 자유가 들어왔다. 선택을 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고,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연습이 자연스러워졌다.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 연민과 다르다. 특별한 것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소하고 꾸준한 일상이 중요했다. 좋아하는 차 한 잔을 마시며 잠시 마음을 쉬게 하는 일, 늦게까지 붙들었던 일과 감정을 내려놓고 깊은 숨을 쉬는 일, 때로는 그냥 “오늘은 쉬어도 돼”라고 허락하는 일. 이러한 작은 순간들이 쌓이며, 점차 스스로를 지켜주는 존재가 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다릴 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완벽할 필요도, 늘 강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부족하고 연약한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상처받고 흔들리는 모습을 감싸 안으며, 조금씩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인정했다. 더 이상 외부의 평가와 비교 속에서 존재를 정의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법은 남이 바라보는 방식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달려 있다.

사랑하기 위해 시간을 들이고, 마음을 쓰고, 스스로에게 친절하기로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하루 무엇을 선물할 수 있을지 생각한다. 작은 산책일 수도 있고, 좋아하는 책 한 장을 넘기는 일일 수도 있다. 때로는 마음이 지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날도 있지만, 그런 날에도 꾸짖지 않는다. 그저 “괜찮아, 오늘은 쉬어도 돼”라고 속삭이며 품는다.


과거와 화해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지나간 시간 속의 아픔, 저지른 실수, 힘들게 했던 관계들을 이제는 미워하지 않는다. 모든 순간이 존재를 만들어왔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미워하지 않는 순간, 내 안의 공간은 점점 넓어졌다. 상처가 남긴 자리는 돌봄과 치유의 에너지로 채워졌다.

사랑한다는 것은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마음의 소리를 듣고, 몸의 신호를 읽고, 영혼이 원하는 것을 존중하는 일이다. 피곤하면 쉬고, 슬프면 울고, 기쁘면 충분히 즐긴다. 그동안 남의 행복과 평가에 몰두하며 마음을 억누르고 살아왔다. 이제 먼저 살피고, 먼저 보듬는다.


사랑하기 위해 기다리고, 지켜주기로 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매일매일 돌아보고, 이해하고, 손을 내미는 지속적인 선택이다. 오늘 한 번 더 미소를 건네며 다시 사랑한다. 내일도, 그다음 날도, 기다려 주고, 지켜 주고, 사랑하기 위해 걸어갈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더 이상 남의 인정이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삶의 주인이 되는 일이다. 친절하고, 마음을 존중하고, 하루를 온전히 살아가는 일이다. 이제 안다. 사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다른 사람에게도 진심을 다해 사랑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며, 다시 삶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다.



20250717_164003.png


월요일 연재
이전 22화상처를 안고도 살아간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