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시간

by 또 다른세상

얼마의 시간을 우리는 살아갈 수 있을까. 누구와 함께 어떤 시간을 보낼 것인가. 나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다. 회사에 다닐 때는 업무에 매여 살아갈 수 있는 시간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암을 겪으며 현재를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내 삶이 주변 사람들에게, 특히 가족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지 고민하며 살아간다.

지금 암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암 진단을 받았을 때만큼 충격적인 시간은 내 인생에 없었다. 회사에서는 강등을, 가정에서는 이혼을 경험했고, 병원에서는 췌장낭종 수술까지 하게 되었다. 병원에선 겁을 주었다. 수많은 검사를 했지만 결국 가장 정확한 것은 수술을 해봐야 안다고 했다. 치료를 받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병원에 갈 때 느끼는 긴장과 두려움이 더 크게 작용한다. 이 고통은 아픈 사람만이 아는 고통이다.


진단와 선항암, 그리고 수술을 진행하였다.수술 후 ‘삼중음성유방암 3기’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어쩌면 나만의 순진한 착각이었을지 모른다. 선항암을 받을 때는 암세포가 모두 사라질 거라 믿었다. 수술을 할 때는 재발을 막기 위한 아름다운 수술이라고 생각했다. 반년 동안 항암 부작용을 견딘 환자라면 고생한 만큼 보상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내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병원에서는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뿐인데, 나는 그것을 긍정으로 착각했다.


2025년은 온통 암 이야기뿐이었다. 앞으로 얼마를 더 치료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병원을 다녀오면 가족들은 전화를 걸어 궁금증을 묻고, 얼굴을 보자마자 상태를 확인한다. 각자 나름대로 해석하고 조언도 한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부분도 한계점에 다다랐다. 치료를 받을 뿐 나아지지 않는 몸, 줄어들지 않는 부작용 때문에 마음까지 우울해질 때가 있다. 가끔 같은 암 4기 친구와 통화를 한다. 나보다 씩씩한 그 친구는 오늘도 항암을 받고 왔다며 진료를 받고 세 시간 기다렸다가 다시 네 시간 동안 항암을 받았다고 말한다.


3기의 나는 4기인 친구에게 어떤 말도 조심스럽다. 친구는 작은 집을 갖고 싶다고 했다. 그 말 속에는 살고 싶은 강한 욕구가 스며 있었다. 친구가 꼭 집을 마련하기를 기도한다.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웃고 서로를 위로한다. 나보다 더 힘든 친구에게 이렇게라도 시간을 내어주고 싶다. 불면증이 심한 그 친구가 오늘 밤에는 숙면을 취했으면 한다. 사실 이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믿음이 깊지는 않지만 기도할 때면 누구보다도 먼저 이 친구의 건강을 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치료 기간을 떠올리면 머리가 아파온다. 그래서 요즘은 오직 하루만 생각하려 한다. 건강한 음식을 먹고 건강한 생활을 지향한다. 아직 손발저림이 있어 약을 먹는다. 어제보다 나아졌고, 지난달보다 부작용과 두려움이 줄었다. 몸도 마음도 조금씩 건강해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에 감사한다.


암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실천하려 하지만, 그 정보를 보는 것이 두렵고 걱정스럽다. 차라리 골고루 잘 먹고 적당히 운동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 몸에 무리가 가는 음식과 운동은 자제한다. 내 몸은 내가 만들고, 신체의 변화를 내가 인지해야 한다. 그동안 걷지 못해 굳어진 몸을 한 걸음씩 움직이며 풀어가고 있다.


오늘 하루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아침과 저녁으로 걷기 운동을 하고, 나와의 시간을 보낸다. 자연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기도 한다. 사람들과의 소통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말하려 애쓴다. 사람들은 내 목소리를 듣고 “하나도 아픈 사람 같지 않네”라고 한다. 아픈 것을 그대로 표현해도 서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 고마움에 더 씩씩한 시간을 보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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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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