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3부 인생은 짧지만 잘살아낸 삶의 기억은 영원하다.
안목
107. 자기만족은 대개 무지에서 시작해 어리석은 행복으로 끝난다.
자기만족을 드러내지 말라. 자기 불만에서 빠지지 말라. 이는 정신력이 약해서 생기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만족에도 빠지지 말아야 하는데, 이는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이다. 호메로스라도 종종 졸고, 알렉산더왕도 자신의 잘못으로 왕좌에서 내려온다. 만사는 여러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한때 성공을 불러온 일이지만 때가 달라지면 실패를 가져오기도 한다.
스스로에 대한 만족은 때로는 성장을 멈추게 하고, 불만은 자기비하로 이어진다. 둘 다 위험한 감정이다. 만족은 교만으로, 불만은 무력감으로 변하기 쉽다. 나 역시 그 경계선에서 여러 번 흔들렸다.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런 마음의 파도 속에서였다. 버티기 위해서, 견디기 위해서, 그리고 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처음 글을 쓴 이유는 단순했다. 가슴으로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너무 많았다. 첫 번째는 가정의 문제였다. 오랜 결혼 생활 끝에 결국 이혼이라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서로의 삶을 존중하기보다 상처를 주고받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그다음은 회사의 문제였다. 수십 년을 몸담은 직장이었지만, 조직의 논리와 변화의 속도는 내가 감당하기엔 벅찼다. 그리고 마지막은 건강의 문제였다. 암 진단을 받으면서 삶 전체가 송두리째 흔들렸다. 몸이 아파지자 마음도 쉽게 무너졌다. 세 가지가 한꺼번에 찾아왔을 때, 나는 누구에게도 속 시원히 말할 수 없었다.
그때 붙잡은 것이 글이었다. 주변 사람에게 털어놓기 어려운 마음을, 종이 위에라도 꺼내고 싶었다. 글을 쓰며 내 안의 혼란을 마주했다. 처음에는 단어 하나를 고르는 일도 버거웠지만, 점점 글이 내 안의 통로가 되어 주었다. 그렇게 쓴 글들이 모여 전자책과 공저로 이어졌다. 어느새 일곱 권째가 되었다. 하지만 그 숫자가 중요한 건 아니다. 글을 배웠다고 해서 문장력이 뛰어나거나 감정 표현이 풍부해진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글 안에는 내가 버텨온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뿐이다.
글쓰기을 배우기 시작한 지 4년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강사님과 다른 작가들에게서 삶의 태도를 배웠다. 어떤 상황에서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지속의 힘’을 배웠고, 남을 응원하는 여유도 배웠다. 비교하지 않는 삶, 남과 다른 길을 걸어도 괜찮다는 용기도 배웠다. 예전에는 책을 출간하는 일이 대단한 성취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책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그 시기의 나를 담고,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를 기록하는 일이다.
최근 출간한 공저는 특히 의미가 깊었다. 같은 교실에서 2년 동안 함께 공부하던 동료들이 내 글을 읽고 응원을 보내주었다. 그들은 내가 글을 쓴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우연히 알게 된 후 보여준 그들의 반응은 따뜻했다. 누군가 대단하다고 말할때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특별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해 주었다. 정말로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도전하면 되고, 지속하면 책이 된다고 말한다.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4년 전, 이혼을 결심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행복했을까?”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능력을 인정받으며 더 안정적인 삶을 살았을까?” “몸의 이상 신호를 더 일찍 알아차렸다면 지금의 고통을 피할 수 있었을까?”
이 질문들에는 명확한 답이 없다. 좋고 나쁨이 반반이다. 어쩌면 더 나쁜 결과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인생의 선택은 언제나 확률 위에 있다. 그 확률은 우리의 기준과 마음의 방향에 따라 달라진다. 후회는 줄일 수 있어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을 더 깊이 살아보려 한다.
누군가는 나의 삶을 답답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지금 이 모습이 최선의 선택이다. 각자의 삶에는 각자의 이유가 있다. 다른 사람의 삶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나 역시 내 선택을 존중하며 살아가고 싶다. 지금의 나는 자랑할 것도, 부끄러워할 것도 없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 평범함 속에 내가 견뎌온 시간과 진심이 담겨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자기만족과 자기불만 사이에서 흔들리던 내가 이제는 조금씩 중심을 잡고 있다. 글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오늘을 성찰하며, 어제보다 조금 더 진솔하게 살아가고 싶다. 내일이면 또 오늘이 과거가 될 테지만, 그 과거가 부끄럽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이 내가 바라는 삶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