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5부 지혜는 내면의 절제에서 나온다.
내면
181. 모든 진실을 다 말해야 하는 건 아니다.
거짓말하지도, 진실을 다 말하지도 말라. 진실을 말하는 것만큼 신중해야 하는 일도 없다. 그것이 마음에 피를 흘리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감출 줄 하는 것만큼, 진실을 잘 말하는 것도 중요하다.
비만 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엄마의 분명한 의견이 있었지만, 결국 가정의학과 진료를 예약해 두었다. 심장내과 진료와 함께였다. 오빠 역시 여러 의사들의 조언을 직접 듣고 나면 엄마의 생각이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엄마에게 미리 말하지는 못했다. 새벽, 나는 항암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
엄마의 진료는 오후 3시 30분이었다. 오전 일찍 항암을 마치고 가정의학과에 도착해 의사 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싶었다. 엄마는 “이 나이에 치료가 무슨 소용이냐”고 계속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끝까지 치료하지 못했을 경우, 앞으로 어떤 건강 상태가 예상되는지 알고 싶었다. 여러 과의 의사들이 공통적으로 말한 것은 진통제의 부작용, 그리고 가장 큰 문제로 ‘비만’이었다.
부모를 돌보는 입장에서 무엇이 최선인지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앞으로 식단은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점점 줄어드는 신체 활동을 대신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약은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위험한 상황이 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주사가 불편하다면 먹는 약으로 대체할 수 있는지도 물어보고 싶었다.
이런 생각들을 간략히 오빠에게 전했다. 오빠 역시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 엄마에게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보호자로서 의사의 의견을 직접 듣고 싶다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큰아이가 운전을 해서 병원에 도착했다. 채혈을 먼저 하고 두 시간쯤 기다린 뒤 진료실로 향했다. 첫 번째 진료를 기다리던 중, 담당 간호사가 다가와 갑상선 검사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설문지를 작성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30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검사 결과가 나와야 진료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항암을 못 하게 되는 건 아닐지 불안한 마음이 스쳤다. 주중에 휴일이 끼어 환자가 유난히 많았다.
그 순간, 엄마의 진료 시간에 맞춰 병원에 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을 큰아이에게 설명하자, 아이는 집으로 먼저 가 외삼촌과 함께 병원에 가겠다고 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이었다. 비도 오고, 시간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조급해하기보다 운전하는 사람이 가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진료를 마치고 항암실로 서둘러 이동했다. 내 순번은 25번이었다. 앞으로 두 시간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 돌아왔다. 12시에 항암을 시작해도 세 시간은 걸릴 터였다. 결국 엄마의 진료 시간에 맞춰 갈 수는 없었다. 간단히 식사를 하고 큰아이를 먼저 보냈다. 의사 선생님 말씀을 잘 들으라고, 꼭 필요한 이야기들을 놓치지 말라고 당부했다. 아이를 보내면서도 혹시 엄마가 화가 나 진료를 거부하지는 않을지 마음 한편이 조마조마했다.
엄마를 존중하면서도, 엄마의 건강을 지켜 드리고 싶다. 그 두 마음 사이에서 오늘도 나는 조심스럽게 균형을 잡아 본다. 엄마를 존중하는 일과 엄마를 지키는 일 사이에서, 오늘도 나는 조심스럽게 엄마 편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