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체증이 내려간 날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5부 지혜는 내면의 절제에서 나온다.


내면


182. 자신감은 지혜로운 자에게 날개를 달아준다.

매사에 약간의 대담함을 보인다면 당신의 사리분별을 잘 드러낼 수 있다. 그 누구도 인간의 좁은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모든 사람에게는 단점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재능에서, 또 어떤 사람은 성품이 그렇다.

먼저 집에 도착한 큰아이는 삼촌과 함께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으로 향했다. 신장내과 진료부터 받았는데, 다행히 할머니의 신장은 아주 건강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문제가 있었던 이유는 많은 진통제 복용과 비만 때문이었다. 현재 복용 중인 약에 대해서도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며, 엄마는 병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차분히 풀어놓으신다.


나는 항암 치료를 마치고 천천히 대중교통을 이용해 집 근처에 도착해 전화를 걸었다. 엄마도 막 집에 도착했다고 했다. 오후 6시, 병원도 도로도 모두 붐비는 시간이었다. 환자도 유난히 많았던 날이다. 집에 들어서니 엄마는 소파에 앉아 계셨다. 검사 결과가 괜찮았는지,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계속 이야기하고 싶어 하셨다.

손주가 자기 엄마보다 할머니를 먼저 챙겨, 다시 먼 길을 돌아 병원에 함께 갔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신다. 가정의학과 진료실 안에서도 “우리 할머니 건강하신데, 비만과 약이 과해서 그런 거죠? 비만 치료만 하면 해결되는 거죠?”라며 관심을 보인 손주의 태도가 참 기특했다고 하신다. 오빠 역시 비가 와서 제시간에 병원에 함께 가지 못할까 봐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조카가 먼저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고 했다. 나는 혹시 가정의학과 진료를 거부하실까 걱정했는데, 엄마는 치료를 결정하고 주사약까지 받아 오셨다.

“언제 주사를 맞는 게 좋을까?”라는 오빠의 말에, 엄마는 오늘 맞는 게 좋겠다고 적극적으로 말씀하셨다. 아들이 냉장 보관해 두었던 주사액을 꺼내 설명서대로 할머니에게 주사를 놓아 주었다.

아프냐고 묻자, 엄마는 하나도 아프지 않다고 하셨다.


이 모든 상황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엄마는 덧붙여 말씀하신다. 손주까지 나서서 할머니의 건강을 걱정하며 치료를 권하는데, 나중에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 결정을 내렸다고. 의사 선생님도 가장 약한 약부터 시작하자고 했고, 운동은 꾸준히 해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고 한다.


가족 모두가 엄마의 선택에 마음이 놓였다. 엄마의 건강을 돕기 위한 치료를 함께 결정했다는 사실에 모두가 만족했다. 최종 결정은 엄마의 몫이었지만, 엄마 역시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서로를 위해 노력하는 일이니, 해보고 불편하면 그만두어도 된다고. 다들 그렇게 이야기했다.

평생에 한 번 시도한 비만 치료가, 무거웠던 엄마의 몸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할머니와 손자, 그리고 아들이 함께 병원을 찾은 이 조합은 흔치 않다. 그만큼 서로를 향한 사랑이 분명히 오가는 하루였다.


아무튼 오래된 체증이 내려간 듯, 기분 좋은 날이다.

우리 엄마, 파이팅.

잘할 수 있어요.

믿어요.

당신 곁에는 든든한 가족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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