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와 상처 사이에서 버틴 하루

by 또 다른세상

아침에 몸을 돌릴 때마다 잠이 깬다. 잠에서 깬다기보다, 통증이 나를 끌어올린다. 오른쪽으로 누우면 케모포트가 눌려 숨이 막히듯 불편하고, 반대로 돌아누우면 전절제한 왼쪽 가슴과 어깨에서 통증이 밀려온다. 어느 쪽도 편하지 않다. 다리를 쭉 펴는 순간 발가락이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아 잠시 멈춘다. 몸이 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직도 낯설다. 예전 같았으면 생각도 하지 않았을 움직임 앞에서, 이제는 매번 조심스럽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시 움직여 본다. 급하게 하면 안 된다는 걸, 이 몸이 먼저 가르쳐 주었다.


낮에는 교회에 간다. 아픈 얼굴을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다른 성도들과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고, 웃는다. 나도 여전히 평범한 일상 속에 있는 사람이라는 표정을 짓기 위해 더 애쓴다. 이 시간만큼은 아픔을 잊고 싶어서,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잊은 척이라도 하고 싶어서 사람들 사이에 더 깊이 섞인다. 웃음이 나오는 순간에도 마음 한편에서는 ‘지금 이 얼굴이 진짜 나일까’라는 질문이 떠오르지만, 굳이 답을 찾지는 않는다.


오늘 가장 또렷하게 남은 장면은 새가족 교육장이었다. 처음으로 교회에 등록하기 위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구역장과 자원봉사자, 요양사님, 교육을 담당하는 목사님, 그리고 담임목사님까지. 처음 만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찍고, 기도를 받는 순서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런데 기도를 시작하기 전, 구역장님이 담임목사님 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 짧은 동작 하나가 이상하게 크게 보였다. 잠시 후 들려온 말은 이랬다.


“암 환자에게 딱 맞는 기도를 해주세요.”

순간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당황스러웠다. 내 병이 이렇게 전달되어도 되는 이야기였나 싶었다. 기도는 분명 따뜻했고, 말은 선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도를 받는 나는 갑자기 조심스러워졌다.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한꺼번에 느껴졌다. 설명하지 않아도 될 내 몸의 사정이 이미 공유되어 있다는 느낌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 순간 나는 환자가 되었고, 동시에 설명된 사람이 되었다.

그때 가장 두려웠던 생각은, 내가 이미 ‘이야기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유방암 3기라는 사실이 누군가의 말 속에서 흘러다니고, 사람들의 눈빛 속에서 하나의 이미지로 굳어질 것 같았다. 위로보다 규정에 가까운 시선, 이해보다는 정의된 상태로 바라보는 눈길이 느껴졌다. 그 시선 앞에서 나는 말수가 줄어들었고, 마음은 안으로 더 깊이 숨어들었다.


그럼에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던 이유는, 인간이 왜 신을 믿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에도 기댈 곳이 필요하다는 마음. 믿음이 단단해서라기보다, 흔들리기에 붙잡고 싶은 무엇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 마음 하나로 그 시간을 버텼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예전의 내가 떠올랐다. 암 진단을 받기 전, 나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어떻게 말해왔을까.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공감이라는 명목으로, 혹시 가볍게 화제처럼 꺼내지는 않았을까. 누군가의 병을 이야기하며 ‘그래도 밝다’거나 ‘생각보다 괜찮아 보인다’고 말하진 않았을까. 오늘 누군가의 귓속말이 불편했던 이유는, 이제 내가 그 자리에 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픈 사람의 마음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픈 것은 약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아픔을 조심해 달라고 말하는 것도 유난이 아니다. 아픔은 드러내지 않아도 존재하고, 말하지 않아도 무겁다. 앞으로 누군가가 또 다른 아픈 사람에게 무심하게 상처를 건넨다면, 나는 조용히 말할 것이다. 그건 조심해야 할 이야기라고. 선의라도, 그 말은 상대의 몫이 되어야 한다고.


저녁에 엄마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엄마는 잠시 듣고 나서 말했다.

“그래도 용서는 해야지.”


쉽지 않은 말이었지만, 그 말 속에는 늘 그렇듯 나를 붙잡아 주는 힘이 있었다. 엄마는 여전히, 내가 가장 흔들릴 때 기대는 사람이다. 해결책을 주기보다, 버틸 수 있게 곁에 서 있는 사람이다.

밤이 되자 손발이 시려왔다.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해 결국 밖으로 나왔다. 잠깐의 가출처럼 공원으로 걸어간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나는 나에게 말한다. 사소한 감정에 감정을 다 쓰지 말자고. 이 몸으로 살아가야 할 시간이 아직 남아 있으니까. 오늘의 상처가 내일의 전부가 되게 두지 말자고.


신을 믿으러 갔지만, 오늘도 인간에게 상처를 받았다. 그래도 이 하루가 전부는 아니다.


당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을 위로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 문장을 오늘의 마음으로 남긴다. 치료 중인 나에게, 그리고 언젠가 이 글을 읽게 될 누군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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