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5부 지혜는 내면의 절제에서 나온다.
내면
189. 남이 나를 의존하도록 욕구를 북돋우라
다른 사람의 결핍을 이용하라. 그런 결핍이 욕구로 이어질 때, 이것은 가장 효율적인 고문 도구가 된다. 사람들은 이미 소유한 것에는 미온적이지만, 결핍을 채우는 일에는 열심이다. 저항이 클수록 욕구도 불타오르기 때문이다. 목적을 달성하는 뛰어난 비결은 남들이 항상 자기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것이다.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큰 위로다.
마음의 위로 역시 다르지 않다.
한 해 동안 오래 알고 지낸 지인들,
그리고 브런치에 글을 올리며 새롭게 다가와 준 존경스러운 작가님들은
내게 그런 존재였다.
아프다고 해서 위기의 상황들이 내 앞에서 사라지지는 않았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야 할까’라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독성 항암의 과정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부작용과 마주했을 때,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고통이 온몸을 파고들었다.
그 통증을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누구를 탓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2월부터 시작한 항암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감정과 이성 사이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나는 이미 수없이 경험해 보았다.
그 과정 속에서도 내가 해야 할 일은 분명히 있었다.
계획해 둔 일정들을 모두 포기하기에는
삶이 너무 허무해질 것 같았다.
꾸준한 글쓰기, 학생으로서의 역할,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까지
이 모든 것이 여전히 나의 삶이었다.
그 와중에 나는 가족의 버팀목이어야 했다.
착한 딸로, 지혜로운 엄마로,
그리고 내 몸을 스스로 지켜야 하는 사람으로.
어쩌면 그 인내가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음과 생각만 놓고 보면
내 몸은 잘 회복되고 있다고 믿고 싶다.
아니, 그것은 솔직히 말해 희망사항에 가깝다.
검사를 받아보면 치료를 이어가기 어려운 몸 상태로
병원을 돌아서 나오는 날도 잦다.
처음에는 그것조차 큰 스트레스였다.
정해진 일정에 맞춰 치료를 받지 못하면
모든 것이 어긋날 것 같은 불안이 따라붙었다.
이제는 안다.
내 몸의 결핍은 ‘먹고 싶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먹어야 하는 것’을 선택하게 만든다.
지금 누군가와 소통하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어쩌면 서로의 결핍을 잠시나마 채워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의지할 수 있다는 것,
기댈 수 있다는 것,
그런 사람이 곁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소중한 시간이고 관계다.
2024년 12월 31일,
삶은 예상했던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변수는 언제나 존재했고,
그 변수들은 나를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멀리 돌아가게 했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중요한 것은 ‘지금’에 집중하는 일이라는 것을.
작은 우주의 먼지 하나에도,
사람의 미세한 표정 하나에도
다 이유가 있다.
2026년에는
그 작은 것들을 더 잘 살피며
조금은 덜 흔들리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