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감사하며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5부 지혜는 내면의 절제에서 나온다.

내면

190. 위안을 얻지 못할 고통은 없다.

매사에 위안을 찾아라. 무익한 사람들조차 오래 살 수 있다는 데서 위안을 얻는다. 위안을 얻지 못할 고통은 없다. 어리석은 사람은 행운으로 위로를 얻는다. 무익한 사람이 장수하고, 탁월한 사람들이 단명하는 걸 보면, 행운은 탁원한 사람들을 시기하는 것 같다.


어쩌면 인생에는 일부러 힘들어할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고통의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어떤 언어로 표현하느냐다.


2026년의 첫날, 휴대전화는 새해 인사로 분주하다.

“복으로 가득한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서로의 안녕을 빌며 하루가 시작된다.


누군가는 집 안에서 창밖의 새벽 일출을 바라보며 기도를 하고,

누군가는 새벽 네 시에 북한산으로 향한다.


아들은 첫해 첫일출 사진을 보내며

“할머니랑 같이 보세요”라고 덧붙인다.

잠시 후 전화가 온다.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굳이 산에 올라가 그 말을 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연령대도, 상황도, 인생의 무게도 다르지만

새해의 아침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닮아 있다.

잘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


지인들이 보내온 멋진 사진들을 보며

올해도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고슴도치 같은 사랑을 떠올린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서로 상처를 입을까

조심스러운 마음이 앞서는 관계들.


그럼에도 새해 아침밥은 먹어야 한다.

아픈 모녀는 식탁에 마주 앉는다.

서로의 통증을 알기에 말은 필요 없다.


아무 말 없이 음식을 입으로 옮긴다.

이렇게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천천히, 그러나 꾸역꾸역 삼킨다.


엄마는 아픈 몸으로 앓는 소리를 하면서도

끝까지 숟가락을 내려놓지 않는다.

그래, 이 정도면 된다.


더 강하게 요구하지도,

더 많은 것을 바라지도 말자.


잘 먹고, 소화시키고, 하루를 넘기면 된다.

아픔은 하루이틀의 이야기가 아니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러니 그때그때, 지금처럼

아픔마저 소화하며 살아가자.


잘 먹을 수 없을 때는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된다.

할 수 있는 무엇인가에 감사하며

삶은 그렇게 계속된다.


새해부터는

‘아프다’는 말보다

‘조금 더 건강해지고 있다’는 말을 더 많이 하고 싶다.


지난해 나는 너무 오랫동안

아프다는 말로 나를 설명해왔던 것 같다.


나는 아프지 않다.

아니, 회복 중이다.

당신도 그렇다.


그러니 기쁘지 아니한가.

이것으로 더 이상 바랄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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