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예의 대신, 소금빵 하나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6부 이 세상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에 있다.


평정심


191. 어리석은 자들을 위한 함정인 가짜 예의를 분별하라


과도한 예의에 현혹되지 말라. 그것은 일종의 속임수다. 어떤 사람은 마법을 부릴 때 테살리아 약초가 따로 필요 없다. 쓸모없는 예의는 속임수일 뿐이다. 인정할 만한 탁월한 자질이 아니라 원하는 이익을 얻기 위해 아첨한다.


작년의 새해와 올해의 새해를 떠올려 본다.


새해 인사를 건네는 일은 마치 의무처럼 여겨졌다. 회사 동료와 상사, 협력업체의 대표와 담당자, 친구와 친척, 학교 동창들까지. 새해 인사를 하지 않으면 예의 없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난 한 해, 나는 거의 병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회사 소식도, 친구와 친척의 안부도 자연스레 멀어졌다. 누군가가 연락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가 그럴 여건이 아니었다.


그것이 모두 가짜 예의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진심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 사실을 인정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는 동네의 익숙한 작은 카페로 들어갔다. 테이블이 네 개뿐인 곳이다. 이곳에 오면 늘 누룽지 소금빵을 먹는다. 오전 10시에 갓 구운 빵이 나오고, 운동을 마치고 천천히 걸어오면 늘 11시 반쯤이 된다. 그 시간에는 진열대가 거의 채워져 있다. 눈으로 먼저 맛보고, 밀가루를 조절해야 하기에 딱 하나만 고른다. 음료와 함께.


연초라서인지 카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테이블 주문뿐 아니라 포장 손님도 많았지만, 다행히 잠시 앉아 쉴 자리는 있었다. 젊은 청년 사장과 몹시 수줍은 알바생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여섯 명의 중년 여성들이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빵과 음료를 넉넉히 주문하고, 그만큼 큰 소리의 수다가 이어졌다. 두바이 여행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 이 카페를 얼마나 자주 오는지 자랑하는 사람, 빵을 종류별로 주문해 칼로 잘라 나눠 먹자는 사람도 있었다.


내 뒤쪽 테이블에는 혼자 온 여성 손님이 글을 쓰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옆에는 멀리서 온 듯한 두 명의 여성이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또 다른 테이블에는 혼자 앉은 남자 손님이 있었다.


짐을 가득 들고 들어온 또 다른 남자를 보고 사장이 반갑게 인사했다. 그는 누룽지 소금빵을 있는 대로 담아 계산했다.

“손님, 4일 연속 오셨어요. 사 가신 건 다 드셨어요?”

그는 멋쩍은 듯 고개만 끄덕이며 계산을 마치고 나갔다.


나는 소금빵을 반으로 잘랐다. 안쪽에는 버터가 적당히 녹아 있었다. 조심스레 한입 베어 물자 바사삭 소리가 귀에 닿는다. 짭짤함과 고소함이 어울려 담백하다. 반쪽을 천천히 씹어 먹고, 남은 반도 마저 먹는다.

딸기라떼를 살살 저어 한 모금 마신다. 상큼한 단맛이 입을 지나 목으로 흘러간다. 소금빵과 잘 어울린다. 몇 모금 마시지 않았는데 컵에는 얼음만 남았다. 먹고 나니 몸이 조금 춥게 느껴진다.


주변 사람들은 대화를 나누면서도 손에서는 모두 휴대폰을 놓지 않는다. 내 휴대폰은 가방 속 어딘가에서 잠들어 있다. 굳이 꺼낼 일이 없다. 이 공간도, 이 시간도 조용히 나를 놓아주기 때문이다.


외투를 다시 걸치고 카페를 나섰다.


입맛 없다는 친정엄마를 위해 양평해장국 포장 봉투를 들었다. 이 음식이 엄마의 입맛을 조금이라도 살려 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맛있는 빵 한 개와 음료를 마시고, 엄마에게 줄 음식을 들고 집으로 향한다. 오늘은 유난히 춥다. 몸은 추운데 마음은 이상하게 따뜻하다. 편안한 공간에서 쉬었고, 엄마를 향해 가는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음식 타박을 하셔도 감사하게 받아들여야겠다.


과도한 예의에 스스로를 가두고 살았던 그해보다, 오늘의 하루가 훨씬 소소한 행복을 건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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