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함을 내려놓고, 살아내는 일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6부 이 세상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에 있다.


평정심

192.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진 셈이다.

나는 아프고 나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예전의 나는 너무 많은 것에 마음을 썼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하루의 기분이 흔들렸다. 견뎌야 할 일 앞에서도 괜히 사소한 감정에 에너지를 쓰느라, 정작 중요한 나 자신을 돌보지 못했다.


치료를 시작한 뒤 삶의 질서는 분명해졌다. 몸이 먼저였고, 그다음이 마음이었다. 컨디션이 무너진 날에는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침묵이 필요했다. 모두에게 친절할 여유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다. 그제야 알았다.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필요 없는 감정을 내려놓는 일이다.

화평한 사람은 오래 산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잘 참는 사람’이 아니라 ‘잘 살려주는 사람’으로 다시 읽는다. 아픈 나를 먼저 살리고, 나 때문에 지쳐갈 타인도 살게 하는 선택. 몸이 힘든 날에는 도움을 청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관계에서는 한 발 물러서는 일. 그것은 이기심이 아니라 생존의 방식이었다. 내가 살아야, 남도 살릴 수 있으니까.


삶을 다스린다는 건 더 이상 모든 역할을 완벽히 해내는 것이 아니었다. 아내, 딸, 엄마, 직장인, 보호자라는 이름을 잠시 내려놓고 ‘환자인 나’, ‘살아 있는 나’로 머무는 시간. 듣지 않아도 될 말은 흘려보내고, 보지 않아도 될 장면에서는 눈을 감았다. 침묵은 도망이 아니라 회복의 언어가 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대충 넘기지는 않는다. 몸의 작은 신호에는 누구보다 민감해졌고, 마음이 무너지는 지점에서는 더 솔직해졌다.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어리석음이라면, 중요한 일에 마음을 쓰지 않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위험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건강, 존엄, 관계의 경계, 그리고 글을 쓰는 시간. 이것들은 절대 사소하지 않다.


지금의 나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 선택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오늘을 버티는 데 필요 없는 감정은 내려놓고, 살아내는 데 꼭 필요한 것에는 마음을 다 쓴다. 그렇게 하루를 다스리며, 나를 살리고 누군가를 조금 덜 아프게 하며, 화평에 가까운 쪽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아픈 삶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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