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을 내려놓은 날의 선택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6부 이 세상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에 있다.


평정심


199. 일저리 참견해서 자기 자리를 마련하지는 말라.


지혜로 자기 자리를 마련하라. 이리저리 참견해서 자기 자리를 마련해서는 안 된다. 명성을 얻는 참된 길은 공적을 쌓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노력으로 그것을 쌓았다면, 이는 명성을 얻는 지름길이다.


‘학술 세미나’에 가는 친구에게 출발 당일이다. 함께 갈 수 있다면, 차를 가지고 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처음 신청을 받을 때 나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주변 사람들을 설득했다. 이 나이에 언제 또 이런 세미나에 참석해 보겠는가. 몸은 아팠지만, 생각만으로도 기분 전환이 될 것 같았다. 그때는 병원 치료 과정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여겼다. 수술 후 항암 치료를 받지 않았던 터라, 스스로를 과하게 낙관했다.


그러나 학술 세미나 일정과 항암 치료 과정이 겹치면서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부작용이 있었고, 백혈구 주사도 맞아야 했기에 컨디션을 예측할 수 없었다. 친구는 바다 사진과 견학지 풍경, 하늘과 구름의 모습을 보내왔다. 동영상으로는 바다 소리와 공기까지 전해 주었다. 집에 앉아 그 장면들을 받아들이며, 이렇게라도 함께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경험하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겠지만, 나의 건강 상태를 생각하면 이것이 최선이었다. 아픈 몸으로 욕심을 냈다면 어떤 상황이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쳤을 것이 분명하다. 밝게 웃는 교수님들과 학우들의 얼굴을 보며, 나는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그들이 행복해 보이자 나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불면증이 심한 새벽, 오늘 써야 할 글을 정리하고 읽어야 할 책을 펼친다. 일정 중에는 면접도 있다. 회사에 입사할 때 한 번 경험했을 뿐, 기억도 흐릿하다. 그사이 시대는 많이 달라졌다. 중년의 나이에 맞이하는 새로운 경험이지만, 이제는 그것을 반갑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예상 질문을 체크하고 답변을 읽어 보지만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는 않는다. 면접관이 두세 명 앞에 앉아 있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긴장이 된다.


평범한 일상처럼 보이지만, 인생의 전환점은 언제든 다가올 수 있다. 내가 추구하고 싶은 일, 관계 맺고 싶은 사람들, 주어진 시간과 현재의 나의 상황을 고려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고자 한다. 단 10분의 시간 안에 나를 모두 보여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의 진정성만은 조금쯤 읽어주기를 바란다.


지혜로운 자리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쌓아 올린 자리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나 자신에게만큼은 그 명성을 쌓아 왔다고 말할 수 있는 하루. 오늘은 바로 그런 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같은 나무, 다른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