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6부 이 세상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에 있다.
평정심
198. 같은 나무도 장소에 따라 제단 위 조각상이 될 수 있다.
장소를 옮길 줄 알라. 자기 가치를 높이거나 특히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옮겨야 하는 민족들이 있다. 이방인의 존경을 받는 이유는 그들이 멀리서 왔기 때문이다. 제단 위의 조각상을 정원에 있던 통나무로만 보는 사람은 절대 그것을 숭배하지 않는다.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나를 스치듯 지나가며 달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불과 일 년 전까지만 해도 걷는 것조차 힘들었던 나에게 달리기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었다. 정상인과 환자의 구분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눈앞에 놓인다. 어르신들조차 나보다 훨씬 잘 걷고, 잘 뛴다.
‘나도 조금 뛰어볼까?’
문득, 용기가 난다.
파란색 바닥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보폭을 좁게, 가볍게, 아주 천천히 내 기준에 맞춰 달려본다. 속도는 정상인이 빠르게 걷는 것보다도 느리다. 그런데 된다.
‘이게 되네.’
스스로도 놀란 채 숨을 고른다. 그때 머리 위로 비행기 한 대가 낮게 지나간다. 파란 바닥이 끝나는 지점에서 나만의 달리기를 멈춘다.
앞에 서 있는 큰 나무에 등을 기대고 선다. 등을 툭툭 부딪쳐 보고, 좌우로 몸을 움직여 본다. 백 번을 해보자 마음먹지만, 숫자를 세다 이내 잊어버린다. 괜찮다.
이름 모를 새의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가 멈추자, 까치가 다시 인사를 건넨다. 호수 근처의 갈대들이 바람에 맞춰 춤을 춘다. 나무에 기대어 발뒤꿈치를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한다. 그동안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나무 한 그루와 함께 운동을 한다. 눈을 감고 기대어 호흡에 집중해 본다. 차갑기만 했던 바람이 어느새 시원하게 느껴진다.
공원에 와서도 늘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들으며 걷곤 했다. 그 탓에 자연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 나무와 하늘과 새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는데, 나는 인식하지 못한 채 돌아서곤 했다. 공원에서는 공원에서만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들에 곧게 서 있는 나무를 바라본다. 봄을 준비하는 꽃나무들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다가올 계절을 어떻게 장식할지, 조용히 고민 중인 것처럼 보인다.
나는 지금 건강해질 준비를 하고 있다. 호수공원, 독서실, 작은 카페, 요가원, 학교 이곳들은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장소들이다. 다만 회사만은 가지 않는다. 유럽의 신대륙 탐험까지는 아니지만, 익숙했던 장소를 잠시 멀리하는 시간이다.
새로운 공간에서 집중하지 못한다면, 그곳에 머무를 이유도 없을 것이다. 오늘처럼 공원에서 걷고, 뛰고, 숨 쉬고, 자연을 제대로 바라본 날은 몸도 마음도 조금 더 건강해진 느낌으로 집에 돌아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