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6부 이 세상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에 있다.
평정심
202. 행동은 삶의 본질이요 말은 삶의 장식이다.
말과 행동이 완전한 사람을 만든다. 따라서 훌륭한 말을 하고, 명예로운 행동을 해야 한다. 전자는 완벽한 머리를 나타내고, 후자는 완벽한 마음을 나타낸다. 탁월한 행동은 지속되지만, 탁원할 말은 쉽게 사라진다. 행동은 생각의 열매다. 따라서 생각이 지혜로우면 행동도 훌륭하다.
나는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 무언가를 해 왔다고 믿었다.
운동을 하고, 공부를 하고, 자격증에 도전하며
성장하고 있다고, 제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하고 싶은 분야의 지식을 쌓고 있다면서도
집중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때마다 ‘아직 어떤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존감은 급격히 낮아졌다.
국가자격증 시험을 보고, 평생교육원에 다니며 공부도 해 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머릿속에 남는 것은 거의 없었다.
이유를 돌아보니, 처음 출발점부터 흔들려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의 만족이 절반,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절반.
그 균형이 문제였다.
자식들에게
“그래도 엄마는 열심히 살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던 마음이
내 안에서 고개를 들고 있었다.
졸업과 동시에 그 감정은 분명해졌다.
나는 또 다른 공부를 선택했고, 지원서를 내고 면접을 보았다.
내 생애 꼭 해 보고 싶은 공부라는 명분을 붙였지만
아픈 몸은 정직했다.
열이 오르고, 발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으며
중요한 이론을 여러 번 읽어도 머릿속은 비어 있었다.
몰입하고 싶다는 마음과 몸의 상태는 끝내 일치하지 않았다.
어느 날, 방에 들어온 아들은
내가 계속 컴퓨터 앞에 앉아 있자
내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보며 기다렸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너를 끝까지 움직이게 했던 생각의 근본은 뭐였니?”
아들은 수능을 준비하고, 군대에 있으면서
선택의 순간마다 찾아온 허무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열심히 해도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카뮈의 『이방인』과 『시지프의 신화』를 읽으며
죽기 전, 후회하지 않을 삶에 대해 생각했다고 했다.
세상에 혼자 남았을 때
타인의 의견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것이라면
결과가 어떻든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그래서 수능을 선택했고
결과에 아쉬움은 남았지만
선택 자체에 대한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나 자신에게 질문하게 되었다.
그동안 나의 말과 행동은
정말 나로부터 나온 것이었을까.
아니면 보여주기 위한 가식이었을까.
앞으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무언가를 하는 척,
배우고 싶은 척,
자상한 가족 구성원인 척이 아니라
먼저 나 자신을 단단히 만들어 가기로 했다.
그 시간은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는
이루었다고 믿었다가
허무해지는 경험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
그것이 말이든, 행동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