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6부 이 세상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에 있다.
평정심
203. 당대의 탁월한 자들에게서 배우라
당대의 탁월한 사람들을 알라. 탁월한 사람은 많지 않다. 탁월한 사람들은 모든 곳에서 매우 드물다. 카이사르와 알렉산더라는 칭호는 행동이 따르지 않는면, 그저 한 줌의 공기에 불과하다.
말은 언제든 앞설 수 있지만, 행동은 반드시 시간을 통과해야 한다. 삶이 흔들리지 않을 때는 그 차이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나 관계가 정리되고, 몸이 예전처럼 움직이지 않게 되었을 때, 사람은 자연스럽게 말보다 행동을 보게 된다.
치열하게, 그러나 생각 없이 살아온 시간을 지나 “너의 몸을 챙겨보거라”라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치료의 시간을 건너오며, 많은 사람을 다시 보게 되었다. 큰 말을 하지 않는 사람들, 자신을 설명하지 않는 사람들. 그러나 고통 앞에서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 아픈 몸을 이끌고 하루를 넘기고,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도 오늘 해야 할 일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눈에 띄지 않았지만, 조용한 반복 속에서 삶을 견디고 있었다.
예전의 나는 탁월함을 위쪽에서 찾았다. 얼마나 올라갔는지, 무엇을 이루었는지,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지를 기준 삼아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병의 시간은 그런 기준을 무너뜨렸다. 남은 질문은 단순했다. 오늘을 감당했는가, 자기 삶에 책임을 지고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는 누구도 포장될 수 없었다.
약을 먹는 시간, 몸이 먼저 보내는 신호를 받아들이는 밤, 스스로에게 “여기까지”라고 말할 수 있는 절제. 그런 사소해 보이는 행동들이야말로 내가 목격한 탁월함이었다. 그것은 특별한 재능이나 위대한 업적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에 가까웠다.
인간이 병으로 인해 육체뿐 아니라 정신까지 이렇게 깊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그 안에서 나약함을 보았다. 마음만은 내 뜻대로 할 수 있다고 믿어왔지만, 그것마저 욕심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더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손을 모으는 나를 바라보며, 그동안 강한 척해온 시간이 부끄러워졌다.
타인의 아픔을 보며 ‘정말 그렇게까지 힘들까’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아픔을 통과하며 사람과 세상을 조금씩 이해하는 시간을 살고 있다. 가족을 포함한 주변의 반응을 바라보며, 감사함과 동시에 그동안 아픈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했는지를 정확히 알게 되었다. 아픔은 고통을 주지만, 동시에 인생의 방향을 다시 묻게 한다.
아픈 시간 동안 바깥세상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동안 중요하다고 여겼던 가치들은 낮아지고, 소통하는 사람들도 줄어들었다. 대신 거품과 상상 속에서 살아온 나를 바로 돌려놓는 시간이 주어졌다. 처음부터 다시 인생이 설정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옳고 그름은 결국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결정된다. 적어도 나는 이제, 아픈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과 고통이 내게 주어졌다는 사실에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나는 위대한 이름을 쉽게 부르지 않는다. 대신 사라지지 않는 행동을 믿는다. 말은 흩어질 수 있지만, 행동은 남는다. 사람은 그 행동의 무게로 기억된다. 한 줌의 공기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내 자리에 선다. 탁월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