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7부 인생의 진정한 공부를 마지막으로 미루지 말라
온전함
230. 너무 늦게 깨달음은 되려 고통이 된다
제때 눈을 떠야 한다. 보고 있어도 눈이 뜨이지 않을 수 있고, 눈을 뜨고 있어도 보지 못할 수 있다. 볼 수 없게 된 뒤에야 보기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 온전해지기도 전에 집을 허물고 재산을 소진한다. 무감각을 부추기는 말에 기대기도 한다. 무감각은 존재를 지운다.
돈은 무섭다. 한 주부가 오천만 원 카드대출을 받았다. 남편의 기계 장비 렌탈비, 결혼한 딸에게 정기적으로 보내던 홈쇼핑 음식값으로 사라졌다. 몇 해 동안 번 돈은 이자 상환에 쓰였다. 빠듯한 살림 속에서도 기도로 나아질 가정을 꿈꿨다. 교회에서는 존경받는 집사였다. 손수 만든 음식으로 교회와 이웃에 나눔을 이어갔다.
대출을 받아 이자를 갚으며 사는 삶도 견딜 만했다. 문제는 상황이 유지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경기는 나빠졌고 선택지는 줄어들었다. 다른 길은 떠올리지 않는다. 이 시기만 지나면 나아질 거라는 막연함에 기대 산다. 부모로서의 책임을 끝까지 짊어지려 한다. 자신은 굶어도 자식에게만은 맛있는 음식을 보낸다.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좋은 것만 가질 수는 없다. 스스로 번 돈으로도 버거운 삶이다. 남의 돈으로 인생을 이어갈 수는 없다.
결혼한 딸은 아이 셋을 키우며 생활비를 걱정한다. 부모는 다시 주변에 대출을 요청한다. 잠시 숨통이 트인 듯 보인다. 결국 친정에 손을 벌린다. 병든 어머니, 아픈 형제들. 형편이 어려워도 조금씩 보탠다. 기계 장비, 차량, 카드대출, 지인대출이 겹겹이 쌓인다. 이것이 두 부부가 살아온 방식이다. 가족에게 교회에 나오라 재촉하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분노를 드러낸다.
대출 인생이지만 사장님, 사모님으로 기억되길 원한다. 신앙생활에도 성실하며 구원을 바란다. 달콤한 카드대출과 인정 욕구의 끝은 결국 이혼이다. 이웃에게는 숨긴다. 거짓말 위에 거짓말을 얹어 살아간다. 자녀에게 상황을 알렸으나 위로는 돌아오지 않는다.
돈의 위력은 관계를 무너뜨린다. 욕망의 끝에서 마주하는 건 공허다. 돈은 무섭지만 정직하다. 지나친 욕심으로 가족과 떨어져 사는 선택은 견디기 어렵다. 그 선택이 스스로의 몫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남의 탓은 같은 길로 돌아갈 이유가 된다.
명절을 맞아 떡국이라도 끓이라며 돈을 보냈다.
“내 신세가 한심하다. 이런 걸 받고 있다니.”
돈이 적어서일까. 삶은 통제되지 않는다. 일부를 제외하고는. 지금은 거품을 덜어내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속살을 들여다볼 시간이 필요하다. 앞으로 눈과 귀를 가리는 유혹에 휘말리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