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7부 인생의 진정한 공부를 마지막으로 미루지 말라
온전함
231. 불완전한 모습은 함부로 공개하지 말라
일 중간에는 남에게 보여주지 말라. 일의 중간은 남에게 보일 때가 아니다. 모든 일은 완성되었을 때 비로소 즐길 수 있다. 시작 단계는 언제나 형태가 흐릿하다. 완성 전에는 아직 아무 의미도 없다. 자연은 준비가 끝나기 전까지 작품을 드러내지 않는다.
글쓰기 수업에서 “초고는 쓰레기다”라는 말을 들었다. 공저 몇 권을 출간했다. 일정에 맞춰 꼭지 네 개만 쓰면 되어 부담이 크지 않았다. 주제와 핵심 메시지는 작가가 정해 주었다. 큰 어려움 없이 초고를 쓰고, 세 번의 퇴고를 거쳐 기획 방향 그대로 출판이 이루어졌다.
그 경험 이후, 몇몇 작가가 개인 초고 완성을 권했다. 제안에 적극 동참해 25년 11월 초고를 마쳤다. 그때부터 머리가 굳었다.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투고 방법조차 AI에게 물어보았다.
혼자 1차 퇴고를 시도했다. 수업에서 배운 방식을 적용해 보았으나 목차부터 막혔다. 꾸역꾸역 진행했지만 지구력은 끝까지 버텨주지 않았다. 결국 AI 도움을 받았다. 직접 쓴 문장은 투박했고, 도움을 받은 문장은 지나치게 매끄러웠다. 글이 낯설게 느껴졌다. 서둘러 퇴고한 뒤 투고했다. 출판사에서는 다음 기회를 이야기했다. 예상한 결과였다.
함께한 작가가 관심을 보였다. 도움을 청했다. 글쓰기 작가에게 부탁해 다시 퇴고를 시작했다. 전반 피드백을 받자 방향이 보였다. 수정하면 살아날 글이라는 말에 힘이 났다. 마감보다 조금 이르게 원고를 제출했다. 바쁜 와중에도 원고를 읽고 피드백이 돌아왔다. 부족한 부분 보완이 필요하다는 조언이었다.
여기서 다시 생각했다. 누가 초고를 쓰레기라 했을까. 초고야말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라는 사실이 보였다. 퇴고는 버겁다.
피드백 이후 2차 퇴고를 진행 중이다. 두 꼭지를 마치자 다시 현타가 왔다. 조급함 때문인지, 문장과 표현의 한계 때문인지 스스로 묻게 된다. 결국 총체적 문제라는 결론에 닿는다. 자신의 책 퇴고는 대신해 줄 수 없다. 바로 그 지점이 성장의 시간이다.
엉망인 초고였지만 잘 해냈다. 초고가 없었다면 성장도 없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힘든 건 당연하다. 경험자는 옆에서 하나씩 알려주지 않는다. 끝내 자신과의 싸움이다. 퇴고가 끝나는 날, 웃고 있을 순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