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7부 인생의 진정한 공부를 마지막으로 미루지 말라
온전함
244. 내가 호의를 받은 후 상대방의 명예도 높이는 법을 발견하라
호의를 배풀 줄 알라. 어떤 사람들은 자기 호의를 남의 호의로 바꾸기 때문에, 받은 호의라 할지라도 배푼 호의로 보이게 한다. 어떤 사람들은 아주 노련한데, 자신들이 은혜를 구해 이익을 얻으면서 주는 상대가 명예로운 일을 한 것처럼 만든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노인이 되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많은 노인들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나이가 들수록 기억은 희미해지고, 주변 사람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닐까. 지금 친정엄마의 나이는 여든여섯이다. 집에 있으면 엄마의 시선은 늘 딸의 움직임을 따라온다. 밥을 차리는 모습, 설거지를 하는 모습, 청소와 빨래를 정리하는 모습까지 조용히 바라본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궁금하지만 묻지 않는다. 점점 할 수 있는 일은 줄어들고 생각과 행동도 수동적으로 변해 간다. 그것이 안타깝다. 그래서 요즘은 엄마와 함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려 한다.
엄마가 가장 자신 있어 했던 것은 요리였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우선 두 가지를 발견했다. 식사를 하다가 반찬이 맛있다고 하면 그 재료를 사 온다. 직접 만들어 먹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친정엄마는 말로 알려 주고, 실제로 움직이는 일은 딸의 몫이다. 얼마 전 엄마가 말했다. 파김치를 먹으면 속이 시원하다고. 나는 쪽파와 대파를 한 보따리 사 왔다. 엄마는 휠체어에 파 꾸러미를 싣고 오다가 비닐이 바닥에 닿아 파뿌리가 갈리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요양사님과 엄마는 한참 웃었다고 한다.
파김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엄마는 찹쌀풀을 만들어야 맛이 난다고 했다. 냄비에 찹쌀을 씻어 물을 넉넉히 넣고 가스레인지에 올렸다. 양념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마늘, 생강, 액젓, 물엿, 고춧가루, 참깨, 배를 갈아 넣으라고 했다. 나중에는 새우젓도 꺼내 오라고 했다. 찹쌀풀이 끓기 시작하자 불을 약하게 줄였다. 식히려면 시간이 걸린다고 했더니 엄마가 바로 말했다. “찬물에 냄비를 올려 놓으면 금방 식어.” 찹쌀풀에서는 밥알을 쓰지 않았다. 국물만 사용했다. 나는 다 넣자고 했고, 엄마는 물만 쓰는 거라고 했다. 결국 엄마가 이겼다.
양념이 완성되었다. 큰 양푼에 파를 가지런히 놓고 그 위에 양념을 국자로 떠 올렸다. 손으로 쓱쓱 문지르자 양념이 파 사이로 깊이 스며들었다. 다시 파를 올리고 또 양념을 바르는 일을 반복했다. 어느새 파김치가 완성되었다. 김치통에 차곡차곡 담았다. “냉장고에 넣을까?”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일단 상온에 두어.” 나는 베란다에 김치통을 옮겨 놓았다. 내일 요양사님이 오면 반찬 그릇에 담아 맛보게 하라고 한다. 나보다 더 생각이 깊은 친정엄마다.
파김치를 조금 만들었을 뿐인데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엄마는 레시피를 알려 주었고, 나는 다음에도 다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식사 때마다 속을 풀어 주는 반찬이 생겼고, 이웃과 나눌 수도 있다. 이 정도면 분명 큰 부자다. 파김치 만들기가 끝나고 티타임을 가졌다. 귀리차를 타 드렸더니 물이 많아 별로라고 하신다. 대신 놀이터 이야기를 꺼내셨다.
놀이터를 청소하는 할아버지가 엄마를 관심 있게 본다고 했다. 휠체어를 타고 나오는 모습이 안쓰러운지 매번 가까이 와서 힘들어도 운동 열심히 하라고 말해 준다고 한다. 그러면서 과자 하나를 건네주었다. 엄마는 요양사님에게 미안하다며 과자가 하나뿐이라고 했다. 그 청소 할아버지는 여러 놀이터를 다니며 일을 한다. 예전보다 엄마 얼굴이 좋아 보인다고, 살도 빠지고 혈색도 좋아졌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또다시 운동 열심히 하라고 격려했다. 엄마는 그 이야기를 웃으며 들려주었다.
나는 그동안 엄마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며 놀이터에서 오간 대화를 끝까지 들었다. 어르신들의 대화가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모르는 사이지만 서로를 응원해 주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마음과 간식을 나누는 풍경 속에서 배울 것이 있었다.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늙지 않는 방법이다. 엄마가 계속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딸이 되고 싶다. 엄마와 함께 음식을 만들고, 배우며 살아가고 싶다. 나는 엄마에게 호의를 베풀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아보니 내가 더 큰 호의를 받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