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에 찾아온 봄 엄마의 선물

by 또 다른세상

엄마는 가끔 습관처럼 말씀하시곤 했다. "마트 앞 화분 가게에 오늘도 예쁜 꽃이 없더라." 나는 아직 좋은 꽃이 나올 시기가 아니라며 엄마를 달랬다.


긴 겨울 동안 베란다의 화분들은 묵묵히 추위를 견뎌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장에 다녀오신 엄마의 손에 세상에서 가장 작고 예쁜 꽃 화분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외출 후 돌아와 한동안 베란다에 나갈 일이 없었던 나는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마주한 노란 꽃과 보라색 꽃 화분. "어머, 웬일이야 엄마? 너무 예쁘다!" 내 감탄에 엄마와 요양사님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이거 요양사님이 너 힘내라고 사주신 거야.”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었다. “요양사님 감사합니다. 정말 예뻐요. 우리 집에 벌써 봄기운이 느껴져요.” 두 분은 내가 화분을 발견하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내심 궁금하셨던 모양이다. “이제 화분이랑 ‘까꿍’ 한 거야?”라며 아이처럼 즐거워하셨다.


일주일 동안 정성을 다해 화분을 돌봤다. 생각보다 꽃이 빨리 피고 지는 게 아쉬워 마른 꽃잎을 가위로 갈무리하고 잎사귀도 매만져 주었다. 베란다 청소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나를 가만히 지켜보시던 엄마가 한마디 거드신다. “큰 화분은 왼쪽으로, 노란 꽃은 오른쪽으로 놓아야 예쁘지.”

그 말에 따라 화분을 옮겨 보니 훨씬 보기가 좋았다. 역시 나보다 엄마의 감각이 한 수 위다. 물을 듬뿍 주고 흙을 다독여 보지만, 한겨울을 보내느냐 기력이 다한 어떤 화분은 저물어가고, 또 다른 화분은 새 꽃을 피울 준비를 한다.

그 모습이 꼭 사람의 삶을 닮았다. 아쉬워도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야 하는 삶이 있다면, 다시 피어나는 삶도 있는 법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하니 내 마음에도 평온이 찾아왔다. 소파에서도 꽃이 잘 보이도록 배치를 새로 했다. 엄마가 밖을 내다보았을 때, 예쁜 꽃들이 반갑게 인사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요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두 분이 식사를 마치고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시장기가 돌았던 나는 호박죽과 파김치를 꺼내 식탁 한쪽에서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엄마, 파김치 정말 잘 담갔다. 진짜 맛있어!” 며칠 굶은 사람처럼 맛있게 먹고는, 정리할 물건을 들고 베란다로 향했다.

“와! 화분이 또 생겼네!”


순간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번엔 큰 화분에 분홍색 꽃이 만발해 있었다. 이게 다 어디서 났느냐고 묻자, 요양사님이 말씀하셨다. “엄마가 딸 꽃 보고 힘내라고 사 오신 거야.”


그 말을 듣고 흐뭇하게 웃고 계실 엄마의 표정이 보지 않아도 그려졌다. 두 분은 내가 새 화분을 언제 발견할지 깍듯하게 기다리고 계셨다. 딸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며칠을 오가며 꽃을 골랐을 엄마의 뒷모습이 눈에 선했다.


나는 엄마의 시야를 가리던 의자와 짐볼 같은 장애물들을 안쪽으로 치웠다. 이제 고개만 살짝 돌려도 베란다의 봄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요양사님과 엄마가 건넨 봄 선물은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아, 이런 게 사랑이구나.’ 나는 이 순간의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아 휴대폰 카메라에 정성껏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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