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지 못한 위로

by 또 다른세상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항암 주사를 맞는 날이었다. 휴약기임에도 몸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무기력했다. 침대에 누운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그래도 마음 한쪽에서는 친구를 떠올리고 있었다. 짧게라도 응원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겨우 휴대폰을 들었다. 항암 잘 맞았냐는 문자를 보냈다.


곧 답장이 왔다. 수술을 위해 입원 일정을 잡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문장을 보는 순간, 깊이 생각하지 못한 채 반사적으로 답을 보냈다. 정말 잘됐다고, 병원을 바꾼 선택이 옳았던 것 같다고 적었다. 그 말이 얼마나 가벼웠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한동안 답장이 없었다. 병원에서 바쁜가 보다 생각하며 다른 일을 하려 했지만, 마음은 자꾸 그 문장에 머물렀다. 이번에는 정말 좋아지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줄 알았다. 그래서 더 쉽게 ‘잘됐다’는 말을 꺼냈다.


처음부터 상황은 같지 않았다. 같은 삼중음성유방암이었지만, 흐름은 달랐다. 항암과 수술, 방사선 치료를 거쳐 다시 항암을 이어가는 과정을 지나올 동안 친구는 수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계속 항암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 시간이 얼마나 길고 지쳤을지, 헤아리기 어려웠다.


6개월 전, 몸이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기억이 선명하다. 검사 결과는 더 무거웠다. 뼈와 간으로 전이가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친구의 목소리는 조용히 가라앉아 있었다. 그럼에도 친구는 늘 먼저 손을 내밀었다. 수술 후 상처로 힘들어할 때마다 부작용을 찾아보고, 음식과 관리 방법을 하나씩 알려주었다. 자신의 일처럼, 아니 그보다 더 세심하게 챙겼다.


그리고 수술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기쁨보다 미안함이 먼저 올라오는 말이었다.


올해 초에는 머리가 계속 아프다고 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던 말이 검사를 통해 다른 의미가 되었다. 뇌수막에 작은 암세포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씩씩한 척하는 목소리가 더 크게 마음을 흔들었다. 뇌장애 진단이 하나 더 늘었다는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조용히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 더 믿고 싶었다. 수술이라는 단어를. 이제는 가능해졌다는 신호라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바라왔던 일이었고, 간절히 기도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소식이 드디어 온 줄 알았다.


늦은 저녁,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차분한 목소리로 뇌 방사선 시술 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아직은 유방암 수술을 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너무 서둘러 기뻐했고, 너무 쉽게 말을 건넸다는 것을.


친구의 몸속에 퍼져 있는 암세포들이 원망스러웠다. 왜 사라지지 않는지, 왜 계속 생겨나는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답답한 마음조차 견디기 힘든데, 그 시간을 온전히 버티고 있는 친구의 마음은 얼마나 무거울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다시 말을 건넨다. 괜찮을 거라고, 잘 견뎌낼 거라고, 미리 걱정하지 말자고. 그 말이 완전한 위로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한다.


오늘은 유난히 콧물이 멈추지 않는다. 닦을 틈도 없이 흐르고, 몸은 여전히 무겁다. 발끝은 시리고, 걸음은 자꾸 흔들린다. 손끝이 저리고 기력은 바닥에 가라앉는다.


그럼에도 한 가지 생각이 머문다. 이 아픔을 조금이라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것, 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어도 같은 방향에서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작은 위로가 된다.


미안한 마음을 품은 채, 오늘도 같은 자리에 서 있다. 친구와 함께 버티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겨우 중심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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