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 거울 앞에 서서 한참 동안 내 얼굴을 바라본다. 거울 속에는 피곤해 보이는 눈빛과 예전보다 조금 어두워진 얼굴이 비쳐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을 것만 같아 고개를 힘차게 가로젓는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아직 나는 괜찮다고, 아직 나는 예쁘다고. 입술을 천천히 움직이며 작은 소리로 독백한다. “나는 언제나 예뻐.” 이 말은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한 말이 아니라, 내 몸속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세포들에게 보내는 응원 같은 말이다. 겉으로 보이는 몸의 모습은 예전과 다르지만, 나는 이제 “아프다”라는 말 대신 내 몸을 가만히 쓰다듬는다. 발을 만지고 손을 어루만지고, 얼굴과 머리, 배와 다리, 허리를 천천히 쓸어내린다. 그리고 조용히 말한다. “고맙다.” 아직도 버텨 주고 있는 몸에게 보내는 인사다.
잠시 그렇게 서 있다가 현실로 돌아온다. 오늘은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날이다. 일반쓰레기 봉투와 재활용 상자를 챙겨 들고 현관을 나선다. 엘리베이터 안 거울에 다시 내 모습이 비친다. 조금 더 검게 보이는 얼굴이다. 그래도 애써 입꼬리를 올려본다. 큼지막한 패딩에 고무줄 바지, 머리에는 비니를 눌러 쓴 모습이 거울에 그대로 담겨 있다. 9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초등학교 3학년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들고 탄다. 어린아이에게는 꽤 무거워 보이는 봉투였다. 그 모습을 보며 ‘가정교육을 잘 받았네’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순간 아이가 열림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한 남자가 급하게 들어오며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아니에요.”라고 답했다. 두 사람은 아들과 아버지였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두 사람은 각자의 휴대폰을 바라보며 조용히 1층까지 내려갔다. 나는 한 손에 일반쓰레기 봉투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상자를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내리려는 순간이었다. 그 남자가 내 손에 들려 있던 일반쓰레기 봉투를 보더니 말했다. “어머니, 이거 제가 가져다 버릴게요.” 순간 깜짝 놀랐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도움을 건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아들은 자기 집 쓰레기를 들고 있었고, 아버지는 아파 보이는 이웃의 쓰레기를 대신 버리려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어머니’라는 말을 들으며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나 스스로는 아직 괜찮다고 생각하고, 아직 예쁘다고 말하며 살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나는 이미 나이가 들어 보이거나 어딘가 아파 보이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 사실이 조금 낯설게 다가왔다.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는 누군가 힘들어 보이는 사람을 보면 선뜻 다가가 도와주었을까. 아마도 ‘누군가 도와주겠지’라고 생각하며 지나친 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 남자의 행동은 내 마음에 작은 질문을 남겼다.
동네 은행에 가면 고객은 대부분 노인이다. 번호표 순서가 되어 의자에 앉으면 직원이 나를 부른다. “어머니.” 처음에는 다른 사람을 부르는 줄 알고 주변을 둘러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 호칭이 바로 나를 향한 것이라는 사실을. 나만 여전히 괜찮다고 생각해도, 세상은 이미 다른 모습의 나를 보고 있다.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것이 꼭 슬픈 일만은 아니다. 이제는 더 아프지 않고,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인간의 삶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면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을 건네는 따뜻한 사람이 되며 살고 싶다는 마음도 함께 생긴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그 아버지처럼, 누군가의 하루를 잠시라도 가볍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며 오늘도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조용히 마음속으로 말한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예쁘게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