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지 냄새가 마음을 먹이던 저녁

by 또 다른세상

묵은지 등갈비찜을 만들어 볼까. 누군가에게는 달걀프라이만큼 쉬운 요리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작지 않은 결심이 필요했다. 집 떠난 큰아들과 군 복무 중인 작은아들이 공교롭게도 이번 주말에 함께 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오후 다섯 시, 엄마는 운동하러 가지 않느냐고 물으셨다. “가야지”라고 대답은 했지만, 눈과 손은 이미 요리 영상을 뒤지고 있었다. 빠르고 간단하면서도 실패 없을 영상을 골라 몇 번이나 되감아 보았다.


가방 하나에 장바구니를 챙겨 들고 시장으로 향했다. 동네에 음식물 쓰레기 봉투가 품절이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내게 더 급한 건 오늘 저녁 메뉴였다. 엄마가 평소 좋아하시는 오이와 우유, 사이다를 메모해 두고 먼저 단골 채소가게로 갔다. 현금만 받는 불편함에도 늘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 어제는 세 개에 삼천 원이던 오이가 오늘은 이천 원이다. 고무줄 같은 가격 속에서 오이 여섯 개와 마늘을 사서 가방에 쟁였다.


결국 운동 대신 시장을 택했다. 아이들은 내일 오지만, 등갈비찜은 오늘 만들어야 했다.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는 엄마가 늘 “배부르다”며 일찍 젓가락을 내려놓으시기 때문이다. 오늘만큼은 엄마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편하게, 마음 놓으시고 드시게 하고 싶었다.


정육점에서 등갈비 두 줄을 샀다. 생각보다 적은 양이었지만 가격은 묵직했다. 사장님은 뼈 사이에 칼집을 넣어야 잘 뜯어진다며 정성껏 손질해 주셨다. 그 숙련된 손길에 괜히 마음이 놓였다. 집에 들어서니 엄마가 놀란 눈으로 묻는다. “왜 벌써 와?” 저녁 준비를 하겠노라 선언하고 곧장 싱크대로 향했다.


양푼에 쏟아부은 고기는 아까보다 더 적어 보였다. 그래도 괜찮다. 맛있으면 다음에 또 하면 되니까. 후추와 된장, 소주, 생강, 월계수 잎을 넣고 고기를 한 번 삶아냈다. 영상에서 본 대로 쌀뜨물을 쓰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쌀을 씻어 밥을 안쳤다.


묵은지를 꺼냈다. 익숙한 신냄새 대신 칼칼한 매운 향이 먼저 코끝을 스쳤다. 신맛을 잡으려 설탕을 조금 넣고 간장, 고춧가루, 마늘, 양파에 들기름을 넉넉히 둘렀다. 쌀뜨물을 붓고 뭉근하게 끓이기 시작했다. 김치 양이 고기보다 훨씬 많아 보였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저녁 일곱 시, 엄마는 드라마 삼매경에 빠져 계셨다. 배고프지 않냐는 물음에 “무슨 일을 했다고 배 배고프겠냐”며 웃으셨다. 그 사이 밥을 짓고 반찬을 정리하며 냄비 속을 수시로 살폈다. 냄비는 쉼 없이 김을 내뿜었고, 집 안은 이내 묵은지 냄새로 가득 찼다. 한 시간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완성되었다. 빨갛고, 어딘지 모르게 비장한 빛깔의 묵은지 등갈비찜이었다.


식탁 위에는 갓 지은 밥과 갈비찜, 그리고 낮에 산 오이김치가 올랐다. 드라마 광고 시간이 되자 엄마를 불렀다. 생각보다 빠르게 식탁으로 오시는 모습에 슬며시 웃음이 났다. “김치는 매울 수 있으니 고기 위주로 드세요.” 하지만 엄마는 첫 젓가락으로 묵은지를 집으셨다. 매운 듯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국물을 자꾸 떠 드신다. “아이고, 고기 좀 드시라니까요.” 걱정 섞인 타박을 했지만, 엄마는 국물이 얼큰해서 참 좋다며 연신 숟가락을 움직이셨다.


냉장고에 있던 병아리콩도 꺼내 올렸다. 잊고 있던 찬들까지 더해지니 식탁이 제법 풍성해졌다. 그때 큰아들이 예정보다 일찍 도착했다. 밖에서 햄버거를 먹고 들어오려 했다는 아들을 서둘러 식탁으로 불렀다. 할머니의 오이김치, 내가 만든 생선찌개와 등갈비찜이 어우러진 식탁에 시원한 물과 우유도 곁들였다.


아이는 맵다는 기색 없이 묵묵히, 그리고 맛있게 먹어주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얼굴에는 오래도록 가시지 않는 미소가 번졌다. 쉰다섯 해 만에 처음 도전해 본 묵은지 등갈비찜. 첫 번째 손님도, 두 번째 손님도 만족스럽게 지나갔다. 그날 저녁,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음식은 혀끝의 맛으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안에 담긴 마음이 결국 사람을 살리고 먹인다. 참으로 따뜻한 봄날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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