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돌리기

넷플릭스 D.P.2

by 이리


시즌1은 6부작이었다. 시즌2는 시즌1과 이어진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시즌2의 첫 화를 7화라고 정했다고 한다. 괴롭힘을 당하던 석봉이 탈영 후 결국 자살 시도를 하고 6화가 끝났고, 7화는 석봉이의 사건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로 시작한다. 그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는가. 정신병이었다면 개인의 잘못이 된다. 박범구 중사는 석봉이를 정신병이었다고 말할 수 없다.


“석봉이가 정신질환? 진술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내가 군생활을 103사단에서 병사로 시작했거든요. 그때는 아침부터 밤까지 매일 두드려 맞고도 수사관 치약 뚜껑에 원산폭격, 점심 먹다가 식판이 휠 정도로 얻어맞았어요. 내가 왜 부사관이 됐을까요? 부사관이 되면 안 맞을 줄 알았거든. 근데 선배 하사는 조인트 까고, 상사는 BOQ에서 싸대기 날리고,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가 않더라고요. 예, 맞아요. 나도 정신병 걸릴 것 같았거든. 아니, 걸렸는데 모르는 건가? 그럼 그건 전부 다 내 책임인 겁니까?”


자신 또한 석봉과 다르지 않았으므로. 석봉이 정신질환이라면, 그래서 이 모든 것이 석봉 개인의 잘못이 된다면 지금까지의 괴롭힘들이 전부 자신의 탓이기도 하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걸 버티든 못 버텼든 간에 괴롭힘을 당한 사람이 왜 전부 책임을 져야 하는지 그는 받아들일 수 없다.



1. 감각

준호는 사건 이후 가끔 석봉의 환각을 본다. 선배에게 다른 동료를 괴롭히는 것에 대해 항의한다. 석봉을 본 준호는 더 이상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상사에게 덤빈 준호는 영창에 가는 것을 각오하지만 김루리 일병의 총기 난사 탈영 사건이 터져 사건이 일단락된다. 얼굴에 모기약을 뿌리는 등 모진 괴롭힘을 당해 생활관에서 총기 난사 후 무장탈영한 김루리는 석봉과 아는 사이였고, 준호와 호열과도 만난 적이 있다. 막을 수도 있었던 것 같은 일에 죄책감은 더욱 커진다.


“누가, 어떻게 그런 일이 생깁니까?”

“너는 뭐, 그래. 밖에만 돌아다니고 그래서 잘 모르겠지만. 언제든, 누구도 그럴 수 있어. 나도”


드라마 내내 인물들의 혼란스러운 상태가 고스란히 표현된다. 준호는 환각을 보고, 루리는 정신이 나간 상태로 총기를 난사하고, 사람을 죽인 뒤에는 더더욱 제정신이 아니다. 그렇게 밝아 보였던 호열은 실어증에 걸렸다. 루리를 돕기 위해 사건 현장에 나가지만 여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다. 총기 난사는 남의 일이 아닌 것 같다.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땀과 통제되지 않는 호흡. 호흡으로 인해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마치 호흡이 나를 죽일 것만 같은 벅찬 공기량. 초점 없는 눈. 상황과 달리 이성적으로 변해가는 머리는 살고자 하는 생물학적인 본능이다. 이를 정상이라고 할 순 없고. 아무것도 감당하지 못할 상태에서 눈 뜨고 버텨야 하는, 살아있어 전부 감각되는 그런 생생한 지옥.

이것이 이 드라마의 주된 감각이다.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도 괴롭힘을 본 사람도 그걸 방치한 사람도. 괴롭힘의 주체자는 그 책임에서 벗어나서는 안 되지만 나머지도 이 감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현실은 이런 것이니까.


2. 준호, 호열

석봉 사건 이후 의무대에 있던 호열. 검사상으로 아무 문제가 없지만 말을 못 하는 호열은 아이패드로 대답하는데 대답은 미리 적어놓았다. 루리를 데리러 가서 만난 준호에게도 미리 대답을 적어놓은 화면을 보여준다. 여러 가지 답변이 적혀있던 패드의 마지막 장은 뭘 할 수 있냐는 무기력함이다.


그럼에도 이 장면은 호열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표현하는 장면이다. 재치 있으면서도 깊은, 몇 수 앞을 내다보는, 똑똑한 준호 위에는 나는 호열. 이들의 관계성은 루리 제압 장면에서도 잘 드러난다. 준호는 이성적으로 루리를 설득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차 안에서 그를 지켜보던 호열은 같은 상황이 반복될까 두려워하면서도 범구의 전화를 받고 결국 밖으로 나간다. “이번엔 살려야” 한다. “뭐라도 해야” 한다. 루리를 살리기 위해 호열은 다시 입을 연다. 아이패드로 상황을 찍어 생중계한다. 준호의 것과는 다른 방법으로.


호열의 돌발행동에 잠시 당황하던 준호는 호열이 아무 설명도 없이 이름만 불렀음에도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한 뒤 호열을 엄호한다. 호열이 부르는 아들이라는 호칭에 유독 울컥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김루리 사건이 마무리된 후 호열과 준호는 장성민 탈영병을 쫓기 시작하는데, 여기서도 장성민의 행방을 쫓다 위험한 무리를 만나 상황이 위험해지자 준호는 곧바로 자신의 뒤로 호열을 숨긴다. 군대에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보호해야 하는 규칙이 있지만 망설임 없이 준호가 호열을 자신의 뒤로 숨기는 데에는 이 규칙만이 작용하지는 않았을 테다.


이후 준호는 준호의 방식인 ‘정석으로 끈기로’ 비밀을 파헤치고 호열은 호열대로 자신의 방법을 사용해 장성민을 찾는다. 준호는 타고난 판단 능력과 추리력, 끈기를 가지고 있지만 호열을 이길 수 없다. 호열은 언제나 힘을 덜 들이면서도 더 빠르고 나은 길을 찾는다. 둘은 그런 서로를 잘 알고 있다.



2. 희생

탈영병 장성민은 이 드라마에 반드시 등장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다. 드라마가 설명하는 군대 구조에 섞일 수 없는 사람. 디피가 다시 데려온다 한들, 이후는 그들이 책임질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혼란에 빠진다. 이 일이 맞는 것인지.


“마음이 이상하다. 장성민이, 밉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마음이 이상해”

“장성민. 안 잡는 건 어떻습니까”

“그게 성민이한테 도움이 될까”


동정금지, 잡생각 금지라는 말과 함께 하던 일을 계속 하지만 그들은 계속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내부는 바뀐 게 없기 때문이다. 결국 성민은 체포되기 전 영양실조와 과로로 생을 마감한다. 작가는 무한하고 아름다운 꿈을 향해 달리던 한 청년을 아직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는 군대 안으로 데려올 수 없었기 때문일까.


시즌2의 네 번째 화. 10화부터는 드라마의 구조가 바뀐다. 마지막화를 향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향해 달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디피가 탈영병을 쫓고 잡던 그동안의 회차들과는 다르게 10화부터는 판을 키운다. 근본적인 원인을 바꾸지 못하면 더 이상 탈영병들을 군대로 데려오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게 성민이한테 도움이 될까'라는 질문에 감독은 데려오지 않는 것도, 데려온 것도 아닌 애매한 태도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제는 그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해야 한다. 준호와 호열을, 디피를 군대의 구조적 문제와 분리시켜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다른 죽음들을 위해. 디피가 드라마의 제목이자 주인공임을 잊으면 안 된다. 그저 DP가 탈영병을 데려오는 역할에 그쳤다면 그들은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이야기는 도장 깨기로 전락한다. 작품과 주인공은 보호받는다.


준호는 결국 진실 앞에 마주한다.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증거를 목격한 순간, 그걸 알아버린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과는 달라졌다. 이는 '무언가를 바꿀 수 없는 무언가'를 버티는 것과는 다르니 말이다. 이때부터 시작되는 준호의 행동은 무모하다. 그의 행동을 보고 현실성이 떨어진다, 군대에서는 저러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준호가 그걸 몰랐을까. 준호라는 캐릭터는 자신의 행동이 어디까지 미칠지, 어떤 상황을 만들지 모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준호의 행동은 주인공이 되고 싶어 드라마 속 캐릭터의 힘을 입은 영웅 놀이가 아니라, 자살이다. 나를 버리는 행위. 나를 버려서라도 해야만 하는 행위.


살아있는 지옥이 되겠지. 아직 제대는 한참 남았고, 내부고발이라며 모든 이들에게 미움을 받을 테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괴롭힘은 여전히 지속되겠지. 젊은 청년은 그렇게 생이 망가질 터였다. 군대라는, 한 나라와 직결된 조직은 개인에 비해 너무 크고, 문득 자신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 두려워 심장이 벌렁거리고 눈앞이 아찔해지겠지. 억지로 자다 일어나 마주한 현실은 여전히 끔찍하겠지. 다른 사람들은 잘만 살아가는데, 나는 왜 이런 일에 이 생을 써야 하나. 수많은 사람 중 왜 내가 희생양이 되어야 하나. 세상은 왜 이래서. 이 싸움은 나를 승리로 데려다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눈앞에서 누군가가 자신에게 총을 쏘고 죽는 걸 본 사람이라서. 해도 지옥이고 안 해도 지옥인 준호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뿐이다.



3. 누가

“어쩔 수 없는 거면, 그러면 누가 감당해야 하는 겁니까?”

“그걸 왜 네가 감당하는데. 준호야 내가 너 잡을 거야. 아니, 잡아야 돼”

“알고 있습니다”


누가 감당해야 하는 겁니까. 준호는 모르겠다. 아무리 해도, 아무리 돌아봐도 아무도 감당하려는 사람이 없다. 이제 자신이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 USB는 영웅의 바톤이 아니라 폭탄이다. 이건 폭탄 돌리기다. 엄한 곳에서 터져 다른 이들이 죽는 걸 이제 볼 수가 없다. 자신이 끌어안고 터져야 할 곳으로 간다. 폭탄을 안은 준호는 이제 두려움이 없다. 이건 알고 있으니 말이다. 이 폭탄이 터지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알고 있으니. 끔찍한 고통이 몸에 고스란히 남을지라도 터지고 나면 터질까 두려워 불안해하며 살지 않아도 된다.


누가 감당해야 하는지. 준호는 호열과 범구에게만 묻고 있는가. 그의 질문에 우리는 호열과 똑같이 대답하면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닐까. 준호에게 '비현실적'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순간. 이 드라마의 가치는 사라진다. 시즌을 두 개나 보고서도 작품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흡수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잊는다. 준호가 '비현실적'이라고 믿으면 현실의 폭탄은 여전히 떠돈다. 준호가 되지 못하는 우리는 준호의 행동을 미련하게 보아야 할 게 아니라 염치없더라도 준호라는 인물이 세상에 있기를 간절하게 바라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적어도 그의 행동을 비약하지는 말아야 하는 게 아닌가. 젊은 청년들의 죽음을 우리는 감당해야 하므로.



4. 박범구

결국 책임은 담당관이 진다. 나는 이 드라마에서 이 인물이 가장 딜레마적이라고 생각한다. 위에서 까이고 아래에서 흔들어대고,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상황 속에서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구조와 공동체의 두려움을 너무 잘 알고 있던 사람.


시즌2 마지막 화의 제목은 ‘내일’이다. tomorrow라는 뜻이겠지만. 내일을 띄어 쓰면 내 일. 나의 일이 된다. ‘그럼 누가 감당해야 하냐’는 질문에 범구는 유일하게 대답한다. 내일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오지 않는다. 오늘과 다를 바가 없을 테니까. 내일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게 뭐예요? 그런 건 다 말장난이잖아요”

“그럴 수도 있겠죠. 여기는 어쩔 수 없이 그런 데니까”

“저는요. 그 어쩔 수 없다는 말이. 너무 싫어요. 그 답이 안 나오는 질문에, 저는, 우리 가족은.”


입에 발린 말일지 모르겠지만 모든 문제가 작용하는 곳에 있는 사람들 전부가 하는 말을 그도 할 수밖에 없다. 두려우니까. 하지만 피해자의 가족들, 준호, 호열보다 실은 이 모든 것들을 더 잘 알고 있으며 상황의 한복판에 있는 사람. 맞기 싫어 부사관이 된 사람. 이 모든 상황에서 그보다 더 정확히 상황을 파악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그가 하는 말은 입에 발린 말이 될 수 없다. 겪지 않은 우리는 겪은 그의 말에 대한 신빙성을 따질 자격이 없다. 그러나 이제 그는 자신이 버텨온 게 무엇인지 이제 모르겠다. 그 버팀의 결과가 이건가. 내 자식을 이런 곳에 보낼 수 있나.


“야 이 눈치 없는 놈아, 범구 형이 우리 둘 다 속인 거야. 너 그렇게 쉽게 아무 일도 없는 게 되겠냐?” 준호를 데리러 간 호열은 준호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말한다. USB는 범구가 재판장에 들고 들어갔다. 쉬운 해피앤딩은 이 드라마에 없다. 무거운 책임은 전부 조금이라도 어른인 그가 진다.


작품은 끝없이 묻는다. 지금 우리가 굳건하다고 믿는 공동체는 정말 굳건한가. 그 굳건함을 유지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아닌가. 정말 이상하지만 바뀌지 않을 것 같아 바뀔 거라고 생각조차 못 하게 하는 것들 앞에서 회의를 느끼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가. 정말 어쩔 수 없는가. 제작자는 그 메시지를 전달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기 위해 작품 속 인물들을 만든다. 인물들은 그를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몸을 내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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