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오면, 생리통

잠깐의 통증이라 얼마나 감사한가

by 햇살샘

바람이 세게 부는 추운 날이다. 남편과 같이 운동을 갔다 돌아오는데 바람이 너무 세게 불었다. 바람을 뚫으며 집으로 향했다. 3교대 하는 남편이 감기 걸릴까 봐 걱정이 되었다. TV 속 커플은 추운 날, 남자가 자신의 옷을 벗어 여자 친구에게 입혀준다. 그런데, 현실 속에서는 마치 아들 같은 남편이 추울 까 봐 내가 가디건을 남편에게 목도리처럼 걸쳐준다. 하기 싫다고 도망가는 남편을 잡아서 추우면 안 된다며 옷을 둘러주면, 남편은 다른 사람 볼까 봐 부끄럽다며 안 하려고 한다. 그래도 추우면 안 된다고 꿋꿋하게 난 남편을 구슬린다.


[나] "저기 신호등까지만 이거 하고 가요. 신호등 옆에는 마트가 있으니 바람이 덜 불거야."


결국 남편은 내 의견에 동의하고 마트까지 옷을 두르고 간다.


[나] "그거 하니까 덜 춥죠?"

[남편] "덜 춥긴 하네요."


그렇게 남편을 구슬리고 마트에 도착해서 내 가디건을 받아 입고 장을 보았다. 우리는 점심때 먹을 것을 이것저것 사서 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니 내가 많이 추웠던 모양이다. 게다가 뭔가 쎄한 느낌이 생리 전 증후군 같다. 왼쪽 발이 약간 시리고,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다. 점심을 챙겨 먹고 진통제도 같이 먹은 후, 오후에 몸이 힘들어 잠깐 쉼을 가졌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홍양이 찾아왔다. 홍양이 기미를 보이면 미리 진통제를 먹는다. 진통제를 먹지 않고 통증을 견디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다. 조금이라도 빨리 진통제를 먹어 통증을 예방하고자 한다. 아침에 진통제를 먹었더니 약발 덕분인지 점심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 나니, 배가 심하게 아프다. 화장실을 들락날락하고, 앉아있기도 힘들어 침대에 누워 쉬었다.


휴직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일터에서 이렇게 홍양이 찾아오면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 그러나 표시를 내지 않으려고 애써야 하기에 더 힘들었던 것 같다. 하루는 교실에서 화장실 가는 길에 주저앉았다. 그


"선생님, 어디 아파요?"

"아니, 괜찮아."


조퇴를 내고 교무실에 가는 길에 다시 또다시 주저앉았다. 너무나도 아파서...


이런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그래, 휴직이라 얼마나 다행이야.' 하며 스스로를 토닥인다. 요즘 관심 있는 '싱어게인'의 30호 가수 노래를 듣는다. 왠지 가수의 인터뷰를 보면 묘하게 닮은 점을 발견한다. 그렇지만 그 사람은 그 사람, 나는 나일뿐이다. 그럼에도 그 가수에 나를 대입하고, 가수가 칭찬받을 때, 그 칭찬을 반복해서 들으며 대리만족을 한다. 대리만족을 하며 누워있으니, 생리통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시간을 이렇게 낭비하면 어떻게 해?' 하는 초자아가 등장해서 날 나무란다. 시간을 너무 낭비한 것 같다. 그렇지만 생산적인 일을 하기에는 배가 너. 무. 아. 프. 다.ㅠㅠ 저녁을 먹으려고 했지만, 배가 아파 몇 숟가락 뜨지 못하고 마무리했다. 집은 엉망이다. 설거지는 설거지대로, 음식물 쓰레기에 빨래까지.


결국 진통제를 다시 먹었다. 진통제를 먹고 1시간 정도 지나니 조금 정신이 돌아온다. 밀린 설거지와 빨래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집에 들어왔다. 내가 아플 것을 예감한 남편이 어제 재활용품을 버려주어, 집안일이 더 수월하다. 고마운 남편이다. 남편이 가끔은 아들 같지만 나에겐 좋은 친구이고 힘이 되는 동반자이다. 남편이 더 예뻐 보인다.


오늘 하루 종일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더니 힘들어,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고 운동을 나갔다. 저녁 9:30분경, 늦은 저녁이었지만 가로등 불빛이 참 예쁘다. 하늘에는 몇 개의 별이 빛나고 있다. 한 연인이 지나간다. 여자 친구가 남자 친구의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가고 있다. 왠지 부럽고, 왠지 로맨틱하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싶다가도, 장바구니 들고 걸어가는 내 모습을 보니 현타가 온다. 아줌마가 되어 있는 모습이다.


그렇게, 장바구니를 들고 운동한 다음 마트에 가서 이것저것 샀다. 나 자신을 위해 마스크팩도 샀다. 집에 도착해서 통증을 견디느라 고생한 나를 위해 선물을 해 준다. 마스크팩을 붙이고, 배에는 따듯한 '핫팩'을 올리고 브런치 글을 쓴다.


여자로 태어나 매달 이런 통증을 겪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지만, 참 감사한 것은 이 통증이 영구적인 것이 아니란 것이다. 하루 정도 참으면 지나가는 게 얼마나 감사한가? 늘 홍양이 오는 게 두렵고, 아플 것이 걱정되지만, 결국 이 아픔도 지나간다. 지금은 아픔에서 놓여나 이렇게 글도 쓰고 있지 않는가?


인생도 마찬가지겠지. 가끔씩은 생리통처럼 참기 힘든 때도 있지만, 그 또한 지나가는 것이다. 난임의 시기를 겪고 있는 요즘, 괜스레 외로울 때도 있고, 무기력할 때도 있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홍양은 내가 아직 임신할 수 있다는 신호이다. 이 신호를 반기며, 통증도 반기며, 내 삶을 안아본다.


그림출처: https://pixabay.com/ko/photos/%EC%9D%80-%ED%95%98-%EC%88%98-%EB%B0%A4%ED%95%98%EB%8A%98-%EB%B0%A4-%ED%95%98%EB%8A%98%EC%97%90-3874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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