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다 쓴 이야기들

작가의 서랍장에 차곡차곡 쌓인다.

by 햇살샘

어떤 이야기를 쓸까?



브런치 '작가의 서랍장'에는 못 다 쓴 이야기들이 쌓여있다. 그러나 브런치에 쓰는 글은 사적인 일기가 아니기에 그 글을 발행하지 못했다. 발행하지 못한 글들을 쭉 읽어본다. 유치한 이야기, 분노의 이야기, 슬픔의 이야기가 걸러지지 않은 채로 거칠게 써져 있다. 필체에서 나의 복잡한 감정선이 같이 읽힌다.


‘그래, 그때 난 그랬었지.’


글 중 많은 부분은 시험관 시술에 관한 이야기이다. 시험관 시술을 처음 시작했을 때 느꼈던 그 여러 복잡한 감정, 그 감정을 고스란히 안고 시험관 5차 시술을 위해 병원에 왔다.


병원에 오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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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 달만 더 자연임신을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

‘시험관 시술이 안 되었을 때의 좌절감을 감당할 수 있겠어?’

‘아직 하고 싶고 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그러나, 나의 가장 젊은 날에 가장 젊은 난자를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나의 감정이나 생각을 내려놓는다. ‘병원에 가자.’ 그러나 한 편으로는 쉬고 싶은 마음이 크다. 내 마음을 아는지, 이번 달 생리주기는 평소보다 3일이 늦어졌다. 시험관 시술하는 게 내 몸도 겁났던 것이다.


남편은 3교대 근무에 마치고 피곤을 못 이긴 채 잠에 들었다. 피곤한 남편을 깨워선 안된다. 혼자서 기도를 한다.


“아, 하나님.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성경 속에 인물들은 하나님께 응답을 받는데 아무리 귀를 쫑긋해도 잘 모르겠다. 성경을 열어본다. 글자가 눈에 잘 안 읽힌다. 시어머님께 전화를 한다.


“이왕 과학기술의 도움을 받기로 했으니 최선을 다 해 보자. 이번에 잘 되어도 하나님 은혜이고, 잘 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기다리라는 뜻이겠지. 가장 좋은 때에 주시려고.”


새벽마다 기도하시는 시어머님이시다. 분명 내 감정이 다치지 않게끔 신중히 생각하고 말씀하신 것일 테다. 곰곰이 생각해 본 후, 가방을 싼다. 잠든 남편을 깨울까 봐 조용히 집을 나온다. 3시간 운전 후, 저녁 늦게 친정에 도착했다. 엄마가 밥을 해 놓고 나가셨다. 엄마가 해 놓은 저녁밥을 혼자서 허겁지겁 먹는다. 아, 살 것 같다.


집에서 어린 시절 앨범을 꺼내본다. 참으로 예쁜 우리 엄마, 잘생긴 아빠, 참 선남선녀셨네. 아빠의 빈자리에 마음이 흠칫 아프다가도, 아빠가 그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내가 아기 때의 사진을 본다. 참으로 귀엽다. 이래서 엄마가 날 키우면서 행복하다고 하셨을까? 나도 내 아기를 낳으면 이렇게 예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집을 나와 산책을 갔다.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그때 어린 시절의 내가 그립기도 하다. 멜랑꼴리 한 기분이 든다. 다시 집에 와서 엄마와 반갑게 인사를 하고, 엄마 대학교 숙제를 도와드린 후 잠에 들었다.


다음 날, 비가 온다. 친정에서 병원까지는 약 1시간 거리이다. 늦지 않게 약속시간보다 1시간 20분 일찍 출발했지만, 빗길이라 고속도로 중간에서 정체가 되었다. 늦을 까 봐 조마조마하다. 병원에 드디어 도착해서 주차장이 꽉 차 주변에 겨우 주차자리를 찾은 후 허겁지겁 병원으로 달려온다. QR코드 체크인을 하고 온도를 잰 후, 접수 후 계단을 급하게 오른다. 휴.. 5분 지각, 병원 도착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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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의자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대부분 환자분들이 남편과 같이 왔지만, 난 혼자서 병원에 왔다. 병원이 멀기도 해서 나 혼자 오는 게 당연하지만, 늘 나 혼자 애쓰는 기분이다. 자녀가 있길 더 강하게 원하는 쪽은 남편인데 늘 애를 쓰는 쪽은 나지? 꼬인 마음이 들고일어난다. 그러나 그런 마음의 소리를 듣다 보면, 정작 힘들어지는 쪽은 나이다. 남편은 남편대로 3교대 근무하느라 얼마나 애쓰고 있는가?


‘임신하기 전에도 이렇게 섭섭함이 싸여서 어떻게 하지?’

‘내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 결국 인생은 외로운 거야. 내가 내 자신과 잘 지내며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을 잘 해내자.’


아.. 그렇다. 어쩌면 임신은 나의 바람이기에 앞서 ‘의무’에 가깝다. 서른 후반의 여성으로서 시간에 쫓겨 가임력이 떨어지기 전에 해 내야 하는 과제이다.


난,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여전히 많지만...

나의 재능, 나의 꿈,


이런 것 보다 앞서는 것은 결국


‘임신’


이 임신이라는 과제 앞에 모든 것이 멈춘다.


난 아직 엄마가 될 준비가 안 된 것일까?

그래서 이렇게 힘겨운 시술을 받아가며 내 몸을 괴롭히도 있는 것일까?

어영부영 몸만 힘들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어렸을 적, 엄마 세대의 희생을 통해 우리가 자랐지만... 무조건적 희생에 대한 반감이 무의식 중에 있었던 것 같다. 페미니즘은 아니지만 여성들의 희생에 대해 사회는 너무 당연시하는 건 아닌지? 마음속에 분노가 다시 인다.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든다.


그럼 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병원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 1-2시간 기다리는 건 기본이라고 한다. 이 시간 동안 난 내 마음을 브런치에 쏟아놓으며, 내 마음을 달래고, 어른이 되고자 발버둥 친다.


이번 시험관 회기에는 나의 이기심과 섭섭함이, 아기를 오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길 바라며, 마음을 토닥인다. 세상이 어디 다 마음대로 되는가? 한계를 지닌 인간으로서,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마음 관리, 난임 시술 과정에서 정말 중요하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 남의 요구와 사회의 요구에 따라 살아가는 난, 나에게 다시 묻는다. 병원 의자에 앉아서 진지하게 묻는다.


‘임신을 진정 원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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