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물결에 함몰되지 않도록

마음의 온기에 슬픔이 녹다

by 햇살샘

시험관 5차 시술 중이다. 시험관을 처음 시작할 때, 그 과정이 너무 힘들어 난 제발 고차수가 되지 않길 바랬는데, 어느덧 재수도 아닌, 삼수도 아닌, 오수를 하고 있다. 아... 시험관 시술을 처음 할 때도 참 힘들었지만, 이번 회기는 왜 이리도 마음 관리가 힘든지 모르겠다.


2021년 2월, 네 번째 시험관 시술을 하면서 병원을 대구로 옮겼다. 원장님께서도 참 좋으시고 난자도 예전보다 많이 채취되어 기대가 컸는데, 생각보다 분열이 느려 배아 3개 4일 동결로 마무리되었다. 처음으로 나온 동결배아라 기뻤지만, 다음 회기에 ‘배아 이식'이 아니라 또 '난자 채취'를 해야 한다는 원장님의 말씀에 마음이 쿵... 가라앉았다.


'난자 채취를 또?'


난자 채취를 할 때의 알싸한 마취제가 아직도 콧속을 맴도는 것 같은데, 다시 수면마취를 하고 시술대에 앉아야 한다니. 내 손이 묶이고, 발이 묶이고 의식도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난자 채취가 싫었다. 그렇다고 국소마취를 하는 것도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국소마취를 하면 의식이 있지만, 그 과정이 고통스러워 울게 된다. 몸이 아파서 울고, 마음이 아파서 운다.


[원장님] 다음 달에 바로 난자 채취할까요?

[나] 원장님, 한 달 쉬고 하면 안 될까요?


그렇게 해서 받아낸 3월, 그 공백기가 참 좋았다. 남편과 산책도 하고, 배우고 싶던 피아노도 배우고 글도 썼다. 4월이 점점 다가오자 막연히 두려웠고, 제발 3월에는 자연임신이 되길 간절히 바랬다. 어, 그런데 정말 생리가 예정일에 찾아오지 않았다.


'혹시 임신?'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이라 혹시나 하고 임신 테스트기를 꺼냈다. 유통기한이 조금 지났지만, 아직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임신 테스트기를 했더니 냉정하게도 한 줄이 나왔다. 한 줄이면 임신이 아니란 것을 받아들이면 될 텐데, 이 무슨 집착일까. '임신 테스트기가 유통기한이 지나서 그럴지도 몰라.' 결국 남편과 약국에 가서 임신테스트기를 새로 샀다.


다음날 아침, 임신 테스트기 결과는 역시나 한 줄이었다. '그럼 그렇지... 괜한 기대였어.' 속상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는데 점심때 생리가 터졌다. 생리는 신호탄이다. '내가 아직 임신을 할 수 있다는 신호'인 동시에 '시험관 시술을 하러 가라'는 냉정한 신호탄이다. 내 몸이 이번 달에 시험관 시술을 하기 싫어 꾀병을 부렸는지 3일이나 늦어졌지만, 고맙게도, 아니 서럽게도 생리는 조금 늦게 평소처럼 찾아와 줬다. 괴로운 생리통과 함께.


병원을 갈까 vs 말까?

시험관 시술을 할까 vs. 말까?

시험관 시술을 하기엔 너무 몸이 힘들어 vs. 한 달이라도 젊었을 때 시술을 해야지. 내년에는 휴직도 못 써.


마음의 갈등에 너무 괴로웠다. 남편과 의논하고 싶지만, 3교대 근무를 마치고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잠든 남편을 깨워 의논을 하기가 미안했다. "힘들면 이번 달에 시험관 안 해도 돼요."하고 잠든 남편의 말이 고맙지만, 내 마음의 고뇌를 이길 길이 없다. '난임 휴직을 할까 vs. 말까?'도 고민이 심했는데, 시험관 시술 역시 고민하느라 머리가 아프다.


두려웠나 보다. 몸이 아플까 봐. 몸이 상할까 봐. 혹시나 실패했을 때 감당해야 하는 몸과 마음의 충격을 또 이겨내야 할까 봐. 시험관 시술을 하며 문득문득 찾아오는 우울감이 날 삼켜버릴까 봐.


결국, 시험관을 하기로 마음먹고 3시간 거리를 운전해서 친정에 왔다. 다음날 병원에 갈 때, "다음 달에 할까요?'라고 원장님이 말씀해 주시길 조금은 바라는 마음이 있었으나, 원장님께서는 "잘 쉬고 오셨죠? 오른쪽 난포 2개, 왼쪽에 난포 2개가 있네요. 시작합니다."라고 하셨다.


흑... 나 잘 쉬고 온 거 같지는 않은데...

나 더 쉬고 싶은데...


그러나 쉬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병원에서 약과 주사를 처방받아 왔다. 그렇게 첫날, 둘째 날은 무사히 넘겼다. 그러나 셋째 날, 감정의 봇물이 터져버렸다. 슬픔의 반란군이 내 마음을 점령해 버렸다. 그토록 경계하고 멀리하던 슬픔이 눈물로 쉴 새 없이 나오더니, 분노가 되고, 비난이 되어 나를 찌르고 상대방을 찌르기 시작했다.


'자녀는 상급이라던데... 그럼 난 상을 받지 못하는 건가?'

'가정에 자녀가 있어야 생명력이 있다던데 난 그럼 생명력이 없는 건가?'

'남편은 날 사랑하는가?'

...

'신은 날 사랑하는가?


결국 꼬리에 꼬리를 이는 질문들로 눈물이 나왔다. 버림받은 것 같았고, 무력했고, 비참했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남편과 통화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남편에게 섭섭한 것을 말하게 되고 날 사랑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해버렸다. 그렇게 막 말을 쏟아내고는 미안한 마음에, 남편에게 거듭 사과를 했다. 남편도 많이 힘들 텐데, 내 생각만 한 것 같아서.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일로 주의를 환기시켰다. 이런 패턴이 날 일중독으로 이끌어오지는 않았나 싶다. 그런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출발해서 친정으로 가고 있다고, 밤 12시 30분 정도 도착할 것 같다고 한다. 아, 고마운 마음, 반가운 마음과 걱정되는 마음에 마음이 복잡하다.


이 늦은 저녁에 오면 어떻게 하지? 밤샘 근무로 피곤할 텐데.


3시간 가까이 되는 거리를 운전해서 새벽 1시, 남편이 도착했다. 남편이 왔는데 너무 반갑고 고맙고 미안해서 눈물이 났다. 남편이 날 꼭 안아주었다.


"남편은 날 사랑하는구나.

남편이 날 사랑하듯, 신도 날 사랑하시겠구나.

다시는 전화로는 투정 안 부려야겠다.

시험관 시술, 힘들지만 잘 해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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