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머리카락이 왜 그리 반짝이는지?

나이 듦에 관하여

by 햇살샘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봤다. 대충 하나로 묶은 뒷머리에 뭔가 반짝이는 게 보인다. 형광등 불빛에 반짝이는 실오라기는 다름 아닌 나의 새치였다. 반짝이는 그 빛깔은 내 마음에 호기심과, 신기함과, 서글픔을 동시에 가져다주었다. 새치를 뽑으면 원형탈모가 온다는 말을 들었기에, 가위를 가져와서 최대한 뿌리 가까이 새치를 잘랐다. 물론 나에게 새치 한가닥만 있는 건 아니다. 이미 전두엽 쪽에는 새치가 점령해버렸다. 그쪽은 검은 머리로 애써 숨겨두었다. 가끔씩 삐죽삐죽 흰머리가 보인다. 짧게 자른 새치가 안테나마냥 뻗어있다. 무슨 전파를 받으려는 건지?


새치가 왕성하게 나기 시작한 것은 내 나이 서른셋 즈음이었다. 주경야독(晝耕夜讀)에 대한 나름의 로망이 있었던 나는 주경야독을 넘어 주경야야독((晝耕夜夜讀)을 했다. 낮에는 직장에 가고, 저녁에는 대학원에 가서 공부하고 집에 와서는 새벽까지 졸린 눈을 비비며 과제를 했다. 직장일만으로도 쉽지 않은데 무리해서 공부를 하려니 늘 교감신경이 흥분해 있었다. 저녁 먹을 시간도 부족해서 끼니를 자주 거르곤 했다. 그랬더니, 박사과정 중반에 새하얀 새치들이 여기저기서 우후죽순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 새치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아직 다른 사람들은 내 나이에 흰머리가 안 나던데, 난 왜 이렇게 흰머리가 나오는 거지? 서글픔이 밀려왔다. 박사과정을 마치고 난 후, 나의 젊음을 학위와 맞바꾼 기분이 들었다.


명절에 친정에 가면, 내 여동생이 내 새치를 잘라준다. 왼쪽 이마 주변에 특히 많은 새치를 동생이 하나하나 자르며 불평한다.

[동생] "아, 허리 아파!"

[나] "아, 미안. 이제 그만할까?"

[동생] "아니, 이제 거의 다 해가."


동생이 새치를 잘라 준 덕분에 몇 살은 젊어졌다. 이번엔 내가 동생 새치를 잘라줄 차례. 동생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나 보다. 아직 20대인데 새치가 몇 가닥 발견된다. 안쓰러운 마음이 물씬 밀려온다. 그래도, 새치 잘라주는 건 내가 많이 이익이다. 난 몇 가닥만 자르면 되는데, 동생은 많이 잘라야 하니 말이다.


[동생] "언니, 우리 집은 유전적으로 새치가 잘 나는 스타일일까?"

[나]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동생과 대화를 나누는 걸 엄마가 옆에서 보고 계신다. 엄마는 흰머리가 날 때마다 염색을 하신다. 내 마음속 엄마는 30대의 젊고 아름다운 엄마인데, 현실에서 엄마는 나이를 먹고 계신다. 엄마는 미용실에 가서 염색을 하기도 하시고 집에서 염색약을 발라 염색을 하기도 하신다. 가끔씩 내가 염색약을 발라드리는데, 엄마는 동생이 염색약을 훨씬 꼼꼼하게 잘 바른다고 하신다. 염색을 하고 나면 우리 엄마는 확 젊어지신다. 이래서 사람들이 다들 염색을 하나보다. 난 엄마가 어떤 스타일을 하든 내 눈에는 다 예쁘다. 염색을 해도, 안 해도 엄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쁘고 소중하다.


누구나 나이를 먹고, 누구나 흰머리를 마주할 때가 온다. 세월의 흐름을 못 이겨, 나 또한 이제는 새치를 자르는 수준에서 벗어나 염색을 해야 할 때가 오겠지. 난 그럼 이 반짝이는 은빛의 실오라기를 검게 물들일 것인가? 아니면 은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나만의 패션을 찾아갈 것인가? 선생님이라는 직업 특성상, 아이들을 만나기 때문에 염색을 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ㅠㅠ 나만의 패션(?)을 추구하기보다는, 다수가 선호하는 쪽으로 검은 머리를 물들이며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찬란한 은빛은 지혜의 상징이라고 하던데, 인생의 지혜가 자라니 두 손 들고 환영할 것인가? 아니면 세월의 흐름을 안타까워하며 잡히지 않는 젊음을 움켜쥐려 할 것인가? 글쎄, 잘 모르겠다. 아직 내 맘 속에는 10대의 소녀가 살고 있고, 그 소녀가 나의 나이 듦을 어색해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고, 아니 더 나이 듦을 절감할 나는 세월을 따라 나이를 먹어가는 인간이다. 생명을 가졌기에, 노화를 비켜갈 수 없고 그래서 더 아름다운 것이다.


마치 잠깐 피었다 시드는 꽃이 조화에게는 없는 강인한 생명력과 찬란한 아름다움이 있는 것처럼. 어쩌면, 은빛 머리카락은 생명의 상징이요, 인생의 필연(必然) 일지도 모르겠다. 아... 머리카락 한 올조차도 내 머리에 붙어 있을 때, 생명의 상징이 된다. 그래, 세월의 흔적이 내게 남더라도 따뜻하게 맞아주자.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는 증거라는 듯 새치는 반짝이고 거기서 난 인간의 실존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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