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살샘 Aug 15. 2021

미운 아기오리, 다름은 특별함이다

다문화 소녀, 학교생활 이야기

"야! 너 진짜!"

태훈이가 민이를 놀리자 민이는 참다못해 화를 낸다. 태훈이는 실실 웃으며 말한다.

"얼굴에 흙 묻었냐? 얼굴이 까맣대요!"

태훈이가 짓궂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오늘은 민이 마음에 상처가 되어 버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가방을 메고 집에 오지만, 눈에서 또르르 눈물방울이 떨어진다.


"엄마, 나 왔어요."

"어. 민이 왔써? 오눌 학꾜는 어뙜어?"

"응, 괜찮았어."

"얼른 밥 먹자. 카이나(KAINA)."


민이 엄마는 필리핀에서 왔다. 엄마가 큰 쌍꺼풀이 있는 눈으로 민이를 바라볼 때면, 민이는 엄마 눈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민이는 엄마의 도톰한 입술, 귀여운 코를 꼭 빼닮았다. 민이는 엄마가 참 좋다. 그런데 단 한 가지,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다. 그건 바로 피부색이다. '왜 엄마와 나는 피부색이 거무잡잡할까?'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서 민이는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외모에 대한 관심도 많아지면서, 거울을 보며 자신을 요리조리 뜯어본다. 나름 마음에 드는 구석도 있지만, 참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자신의 피부 색깔이다. 학교에서 친구들과는 다른 피부색에 괜히 위축된다. 같은 반 친구들이 은근히 "넌 우리와 달라!"라고 말하는 듯하다. 실제로 그렇지 않더라도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피부 색깔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도덕 시간, 선생님께서 다양한 가정을 설명한다. 그러던 중 교과서에 다문화가정이 나온다.

"민이는 다문화가정이잖아!"

한 친구가 말한다. 다문화가정. 참 불편한 말이다. 다양한 가정이 있다지만, '다문화 가정'이란 용어가 나와 우리 가족을 평범하지 않은 가족으로 몰아가는 듯하다.

'난 너희들과 전혀 다르지 않아. 우리 가족도 그렇고.' 마음속에 맴도는 말을 밖으로 내뱉지는 않는다. 그저 못 들은 척하며 수업에 집중하는 척한다.


학교에서 마치고 민이는 엄마에게 화장품 파우더를 사 달라고 조른다.

"엄마, 나 파우더 사줘. 화장해 보고 싶어."

"아찍 어려. 피부 나빠져써 안돼."

"다른 친구들도 화장하는 친구들 있어. 제발!"

엄마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역시, 엄마가 그럴 줄 알았어.'


다음 날, 민이는 세영이와 화장품 가게에 갔다. 거기에는 샘플 화장품이 있어 테스트를 할 수 있다. 새하얀 분가루를 볼에 톡톡 쳐 본다. 뭔가 얼굴이 더 화사해지는 것 같다. 세영이가 "언니가 그랬는데, 파우더 하기 전에 BB크림 바르라고 했어, " 세영이는 언니가 있어서 좀 더 아는 것이 많은 것 같다. 민이는 자기가 모아둔 용돈으로 파우더와 BB크림을 산다. '히히, 이것만 있으면 피부 때문에 스트레스 덜 받겠지?'


학교 가기 전, 민이는 엄마 몰래 BB크림을 바르고 그 위에 파우더를 발랐다. 최대한 표시 안 나게 하려고 했지만, 왜 이렇게 허옇게 뜨는 것 같지? 그래도 무시한 채 학교에 갔다. 이제는 피부가 더 밝아 보인다는 생각에 조금 자신감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데 아뿔싸, 짓궂은 태훈이가 수업시간에 폭탄발언을 한다.

"선생님, 민이 얼굴에 화장한 것 같아요!"

"뭐? 민이, 아직 학생은 화장하면 안 돼. 민이 쉬는 시간에 선생님이랑 이야기 좀 하자."


쉬는 시간, 민이는 불편한 마음으로 학년 연구실 문을 두드린다. ‘학년 연구실에는 태훈이

같이 말썽쟁이들만 불려 가는 줄 알았는데, 내가 가게 될 줄이야.'

"어, 민이, 들어와라."

"네."

"민이야, 민이가 화장하고 싶었구나."

"네."

"민이는 화장 안 해도 충분히 예뻐. 화장하고 싶은 이유가 있었을까?"

"...."

"불편하면 말 안 해줘도 괜찮아."

"실은... 제가 피부 색깔이 친구들이랑 달라서... 너무 스트레스였어요.

다문화라고 괜히 뒤에서 수군거리는 애들도 있고요."

민이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린다. 눈물에 서툰 화장이 더 얼룩덜룩해진다.

"피부 색깔이 많이 스트레스였구나. 민이는 충분히 예쁘고, 소중한 한국 사람이야."

선생님은 어떻게 민이 마음을 달래줄지 난감하다. 민이 눈물을 손수건을 꺼내 닦아준다.

"민이야, 쉬는 시간 다 끝나가니까 수업 끝나고 선생님이랑 잠깐 이야기 좀 할까?"


수업이 끝나고 모두가 나간 텅 빈 교실, 민이와 선생님은 책상을 하나 두고 마주 앉았다.

"우리 민이, 선생님이 민이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선생님도 실은 민이랑 비슷한 경험이 있단다. 선생님이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이 미국에 갈 일이 있어서 미국에 간 적이 있어. 거기에서 초등학교에 다녔는데, 친구들과 선생님이 피부 색깔이 달라서 선생님도 너무 스트레스였어. 하루는 엄마가 카레를 싸 주셨는데, 친구들이 그걸 보고 똥이라고 놀렸어. 한 애는 도시락에 침을 뱉었단다. 너무 속상했는데, 엄마한테 말하기는 어려워 혼자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단다."

"진짜 나쁘네요. 선생님도 마음이 아팠겠어요."

"응. 그랬지. 그렇지만 그 시절, 담임 선생님께서 해 주신 한 마디가 어려운 시기를 버텨낼 수 있는 힘이 되었단다. '다른 게 아니라 특별한 거라고.' 나도 민이에게 힘이 되고 싶구나. 힘들 땐, 나에게 말해. 우리 민이, 미운 아기오리 이야기 알지?"

"네."

"어떤 내용이지?"

"미운 아기오리가 다른 형제들이 자신들과 다르다고 못생겼다고 놀리고 부모님도 안 좋아하고, 여러 괴롭힘을 받으며 힘들어했어요. 그런데 알고 봤더니 백조였어요. 그래서 나중에는 아름다운 백조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예요."

"그래. 때로는 우리는 미운 아기오리 같이 느껴질 때가 있어. 민이뿐만 아니라,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세계에서 미운 아기오리가 될 때가 많아. "난 왜 이렇게 눈이 작지?" 하면서 괴로워하는 친구도 있고, "다른 애들은 다 늘씬한데 왜 난 뚱뚱하지?" 하면서 힘들어하는 친구들도 있단다. 선생님도 그랬어."

"선생님도요?"

"그럼.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다 미운 걸까? 아니야. 각자 빛나는 부분이 있어. 민이는 자기 피부 색깔이 마음에 안 들지 모르지만, 넌 너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함이 있어. 우리 민이는 따뜻한 마음씨를 지녔어. 아름다운 마음은 너의 피부색을 뛰어넘어 찬란하게 빛나고 있단다. 민이는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야. 넌 너만의 방식으로 날개를 펴고 아름답게 날아오르게 될 거란다. 그러니,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우리 민이 속에 숨겨진 빛나는 보물들을 같이 찾아가자."

"네.'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민이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이겨낼 특별함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자신을 소중히 여겨주는 선생님의 마음에 서러웠던 마음이 눈 녹듯 녹았다.


집에  가는 길, 태훈이와 마주쳤다.

"민이야, 미안해."

"응? 뭐가?"

"내가 너한테 너무 짓궂게 행동했어. 난 장난으로 말했는데, 네가 울어서 많이 미안했어."

"..."

"실은... 나... 너, 좋아해."

"뭐????"

"좋아해서 자꾸 장난친 건데, 내가 나빴던 것 같아."

"난, 아직 마음이 안 풀렸어. 다음에는 그런 것으로는 안 놀리면 좋겠어. 많이 상처되거든. 네가 착해지면 좋은 친구로 지낼 수 있을지 생각해볼게."


민이는 시큰둥하게 웃어 보이고 집에 갔다. 집에 가다 보니, 조금씩 마음이 풀린다.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집에 도착해서 엄마를 기쁘게 부른다.

"엄마! 나 집에 왔어요."

"민이 왔써? 밥 먹짜."

정말 폭풍 같은 하루였다. 사춘기라 감정도 상황도 파도친다. 그래도 집에 가면 엄마가 따뜻하게 맞아 주신다. 선생님도 날 사랑해 주신다. 시리게만 느껴지던 세상에 따스함이 싹튼다. 민이는 가족과 저녁을 먹고 일기장을 꺼낸다. "다름은 특별함이다. - 미운 아기오리" 문장을 써 나간다.


.


* 이 글은 실제 사례가 아닌 가상의 이야기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교사, 나로 살아가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