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살샘 Aug 20. 2021

아등바등 살 필요가 없을까?

어른들의 지혜

[시어머니] "너 하고 싶은 게 뭐니?"

[나] "네?"

[시어머니] "네가 말했었지. 책도 쓰고 싶고..."

[나] "네..."


시댁에 가서 점심을 먹고 난 후, 시댁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어머니께서는 조심스럽게 내가 하고 싶은걸 물어보신다. 실은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책도 쓰고 싶고, 피아노도 더 배우고 싶고, 미디 음악 편집하는 것도 배우고 싶고, 작곡도 해 보고 싶다. 해야 할 것도 많다. 소논문도 써야 하고, 영어 실력도 더 키워야 한다. 머릿속에 많은 것들이 지나간다.


[시어머니] "나이 들어 보니까 아등바등 살 필요가 없더라."

[나] "어머니께서도 젊으실 때, 열심히 사셨죠?"

[시어머니] "응, 그런데 지나고 나니까 꼭 그러지 않아도 되었다 싶더라. 너무 애쓰지 않아도 돼. 편하게 살렴. 이때까지 주말부부로 계속 살았잖아. 남편이랑 같이 지내면서 이제는 즐겁게 지내. 책 같은 거 쓰려고 애쓰지 말고. 너 바쁘게 이것저것 하는 게 안 봐도 보인다"


책 쓰지 않아도 될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좀 내려놓고 편하게 살아도 될까?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내 마음속에 하고 싶은 것이 한 보따리 들어 있어, 새로운 생명이 들어올 여유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한 선생님께서 내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선생님, CEO 같네요. 이것저것 하는 게 너무 많아요. 선생님은 이미 지금의 생활을 누리고 있어요. 엄마가 되면 많은 부분을 희생해야 하는데, 지금 하는 것들을 멈춰야 하지 않을까요?"


정말 멈춰야 할까? 잘 모르겠다. 난 늘 바빴다. 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나에게 관건은 '시간관리'였다. 어떻게 하면 시간을 아껴 쓸지 늘 고민이다. 대학원 과정을 하면서 잠을 줄이는 것을 해 봤더니, 건강에 치명타였다. 그래서 잠을 줄이지 않으려고 애쓰고 1분 1초를 아껴서 뭐라도 하려고 하는데 내 욕심만큼 내가 부지런하지 않다. 아직도 갈 길이 먼 것 같은데, 멈추라고 한다. 멈출 용기가 나질 않는다.


시어머님처럼 엄마도 똑같은 말을 하셨다.


[나] "이때 이런 선택을 했더라면 하고 후회가 들 때가 있어요. 더 열심히 살걸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해요."

[엄마] "넌 충분히 열심히 살아왔어. 이제는 편하게 살아도 돼. 유명한 작가 박완서, 박경리 봐봐. 죽고 나면 다 똑같아. 무덤이 뭐 별다른 게 있던? 다 부질없다. 매일 감사하면서, 다른 사람들한테 상처 주지 않고 사는 게 중요한 거야."


어른들은 나에게 쉬라고 한다. 멈추라고 하신다. 쉬어도 된다고 하신다. 그런데 내 마음은 쉬면 안 될 것 같다. 달려야 할 것 같다. 아직도 부족한 게 많은 것 같다.


7~8월 동안 일을 무리해서 했다. 소논문을 밤늦게까지 쓰고, 대학생 논술 지도를 하고, 국어 부진아 자료를 보완하면서 영어 스터디까지 하려니 몸이 지쳤다. 장염으로 삼일 동안 밥을 못 먹었고, 눈에 실핏줄이 터졌다. 몸과 마음에 쉼이 필요한 신호인가보다.


일부러 쉬어보았다. 미라클 모닝을 한다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아침운동을 하며 분주하게 움직였는데, 대신 늦잠을 잤다. 책 볼 시간에 유튜브에 관심 있는 영상을 찾아보며 뒹굴거렸다. 시간이 아까웠다. 이래도 되나 싶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그렇게 낭비하는 것 같은 시간에 몸이 회복되었다. 마음에 힘이 생겼다. 내가 휴식을 너무 무시했던 것 같다. 쉬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조금은 들었다. 물론 마음 한편에는 '이렇게 쉬면 안 돼. 게으르다! 얼른 부지런히 살자'라고 날 꾸짖는 정체 모를 목소리가 늘 들리긴 한다.


쉼의 목적은 다음 달 시험관 시술이다. 내 꿈, 나의 자아실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쩌면 자녀를 낳아 대를 잇는 것일지도 모른다. '기후변화에, 코로나에 지구 환경이 살기가 점점 어려워지는데 아기를 낳아도 될까?'라는 생각에 두려운 마음이 있다. 이렇게 거친 세상에 아이를 낳아도 될지 망설이는 건 나만의 고민이 아닐지 모른다. 그렇지만 아직도 세상은 살 만하다고 말해본다. 소중한 생명을 기르는 것은 어떤 것보다 귀하다고 나 자신을 설득해 본다. 소중한 남편과 가족이 자녀를 간절히 원하기에, 내 자아실현이나 자기 계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족이라고 결론지어 본다.


난 정말 아기를 낳고 싶은 것일까? 아기를 안 낳는 것이 이기적인 것일까? 글쎄, 잘 모르겠다. 자연스럽게 생기면 하늘의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낳겠는데, 생기지 않는 아기를 가지려 애쓰는 과정이 힘든 것 같다. 배에 멍이 들어가며 주사를 맞고 호르몬의 영향으로 감정의 파도를 타며 시술대에 앉아 마취를 하고 난자를 채취하고 임신이 되었는지 피검사를 하는 과정까지 얼마나 피 말리고, 몸이 말라 가는 과정인지 모른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일까? 난 무엇을 위해 이 땅에 태어났을까? 난 내가 태어난 목적대로 살고 있을까? 아니면 내 욕심에 눈이 멀어 인생의 헛바퀴를 도느라 바쁜 것일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인간은 인생의 답을 모르기에 사이(間)에서 고민하는 존재인가 보다. 내 인생의 목적을 좀 더 분명히 알면 방향을 잘 세울 수 있을 텐데, 방황한다. 마음도, 삶도 방황한다.


내년까지 아기가 생기지 않는다면 복직을 해야 한다. 복직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 아기를 가질 수 있을 지에 대한 불안, 예측할 수 없는 거친 인생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이 마음속에 요동친다. 아기를 가지려고 아등바등하며 불안해한다. 그러다가도 무언가를 이루려고 몸부림 친다. 이 사이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 이리저리 헤맨다.


무엇을 하지 않아도, 내 존재 자체로 소중한데 난 그것을 잊어버리고 무엇인가를 자꾸 하려고 애쓴다. 사랑받고 싶은 어린아이가 아직도 세상 사람들의 요구와 바람을 이뤄주려고 애써 달리려고 하고 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무엇을 하지 않아도.

무엇이 되지 않아도.

무엇을 가지지 않아도.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괜찮다고 오늘 다시 나에게 말해준다.

작가의 이전글 미운 아기오리, 다름은 특별함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