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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샘 Sep 06. 2021

마음에 우울이 칭얼댈 때

요 녀석, 괜찮아

어느덧 가을이다. 나뭇잎에 연두빛깔의 여리디 여린 새잎이 나던 게 어제 같은데, 벌써 가을이다. 한 잎, 두 잎 자신만의 가을의 색깔을 지닌 채 떨어진다. 낙하(落下)하는 잎사귀를 바라보며, 붙들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멜랑꼴리 한 기분에 빠진다.


낙하1 (落下)  

[명사] 높은 데서 낮은 데로 떨어짐.


떨어지는 낙엽처럼, 가끔은 내 마음이 낙하한다. 어린 시절, 모든 것이 밝고 아름다워 보이던 시절이 있었다. 핑크빛 색안경을 쓰고 꿈에 부풀어 노력만 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 같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세월의 흐름 속에서, 알게 모르게 어려운 일들을 만나고 그 가운데 인내하는 법을 배우면서 세상살이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바라보면 좋으련만 내 마음에는 두려움의 안경이 생겼다.


"언제 어려운 일이 생길지 몰라. 단단히 준비해 두어야 해."


휴직이라 마음 편히 지내도 좋으련만, 마음은 늘 긴장이다. 꿈속에 몇 년 전 학생이 나왔다. 그 학생이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학부모와 상담하며 애를 쓰고 있었다. 내가 잘못한 건 없나 자책하고 있었다. 허구의 이야기가 엉키고 설켜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꿈속에서 상영되었다. 나의 무의식 속 두려움이 이야기로 포장되어 돌아가고 있었다.


난 꿈을 꾸는 것이 두려울 때가 많다. 꿈속 많은 이야기의 배경은 학교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반항하는 장면을 꿈을 꾼다. 때로는 입시를 준비하던 고3 즈음으로 돌아간다. 실제로는 하지 않았던 재수를 꿈에서는 하고 있다. 다시 수능을 준비하는데, 공부가 내 맘만큼 열심히 되지 않아 괴로워하다 잠이 깬다. '반항하는 학생, '입시'는 내가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과제이기 때문에 꿈에 자주 등장하는 것일까?  


한 번은 임신했을 때 무서운 꿈을 꾼 적이 있다. 왠지 찜찜했는데, 결국 아기가 유산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꿈을 꾸는 것이 싫다. 꿈속에서는 행복한 일보다는 두려움과 슬픔이 얽혀 날 괴롭히기 때문이다. 꿈이 현실로 일어날까 봐 전전긍긍한다. 최대한 꿈을 꾸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보통 꿈은 새벽에 자주 꾸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려고 한다. 내 무의식에 어떤 생각들이 가득 차 있길래, 이렇게 꿈 내용이 엉망진창일까?


성경 속에는 꿈을 많이 꾸었던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요셉이다. 나와 달리 요셉은 길몽(?)을 꾸었다. 요셉은 형제들의 곡식의 단이 자신에게 절하고,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을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말하고, 그의 형들은 요셉을 시기한다. 결국 형들은 요셉을 구덩이에 던지고, 미디안 상인에게 팔아버린다.


꿈은 길몽이었으나, 현실은 비참했다. 구덩이에 던져지는 것, 낙하이다. 믿었던 혈육인 형들이 자신을 구덩이로 밀어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는 것. 요셉의 마음까지 한없이 아래로 떨어질 수 있는 일이다. '형들이 나를...' 결국 요셉은 노예로 팔려가고,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종으로 일하게 된다. 그러던 중,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다 누명을 얻어 또 한 번 낙하한다.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다.


한없이 낙하하는 인생, 어쩌면 요셉의 인생이 그러했다. 수많은 인생의 어려움과 트라우마가 요셉의 영혼을 파괴하고도 남았을 텐데, 요셉은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억울함과 슬픔, 어쩌면 죽고 싶을 수도 있을 그 고통 가운데에서 요셉은 어떻게 마음을 지켜냈을까? 인생은 비록 끝없이 낙하할 지라도, 마음을 지켜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요셉이 추후 이집트의 총리가 된 것보다 더 대단한 것 같다.


결국, 요셉은 파라오의 꿈을 해석해주고 이집트의 총리가 된다. 7년의 풍년 후, 7년의 기근이 닥쳤을 때 요셉의 형들이 곡식을 구하러 이집트에 와 요셉에게 절을 하고, 요셉은 형들의 마음을 시험한 후 결국 자신이 요셉임을 밝힌다. 그때의 요셉의 말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서 큰 구원으로 형님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형님들의 자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먼저 보내셨습니다. 나를 이리로 보낸 분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리로 보내셔서, 이집트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형들이 자신을 버린 일에 대한 해석이 어떻게 이렇게 신앙적일 수 있을까? 요셉을 하나님을 믿었기에 그 어렵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믿음으로 해석하고 살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의 생각이 온통 슬픔으로 가득 차 꿈에서도 두려움과 원망으로 시달릴 수 있었을 요셉인데,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냈다. 과거를 믿음으로 해석해 내는 데 성공했다.


난 어떠한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때로는 솔직히 어렵다. 내 인생을 하나님의 은혜로 해석하고, 감사하려고 해도 가끔씩 해석되지 않는 일들로 인해 불평한다. 내 주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인들을 위해서 기도하다가도, 인생은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결론지어 버린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인생을 내 자녀가 또 살아가야 하는가?'란 질문 앞에 늘 막다른 골목에 처한 것 같다.


인생의 비전, 인생의 목적이 있다면 이 생을 믿음으로 살아낼 수 있을 텐데, 요즘은 나의 비전, 나의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흐릿하기만 하다. 과거에 대한 믿음의 해석의 부재, 미래에 대한 불안이 날 괴롭히는 요즘, 난 과연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는지 의문이다.


인생의 어려운 순간순간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견디고 지나왔다. 그럼에도 아직도 내 마음에 불신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 불신이 어쩌면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우울의 원인일 것이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날 믿지 못하고, 세상을 믿지 못하기에 세상이 너무나도 두렵고 슬프게만 느껴지는 것 같다.


'믿음'이 과연 무엇인가?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신뢰信賴 

[명사] 굳게 믿고 의지함.


믿고(信) 의뢰하고 힘입는 것(賴)이 신뢰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지만, 믿고 의뢰하고 힘을 입는 것이다. 나의 시선을 어디에 맞추는지가 중요하다. 눈에 보이는 현실, 나의 한계, 과거의 아픔에 시선을 두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 구원자 하나님, 좋으신 아버지되어 주시는 하나님께 나의 시선을 맞추는 것이다. 내 약한 힘에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데, '굳게 믿는 것'이다. 그를 의지하는 것이다. 요셉은 하나님을 굳게 믿었기에, 그 영혼을 우울과 절망으로부터 지켜냈던 것 같다.


조금씩 추워지면서 마음에도 바람이 불어, 때로는 영혼이 벌써부터 시리다. 그렇지만 마음속에 우울이 칭얼거릴 때, 비록 상황이 어렵더라도 내 영혼이 낙하하지 않도록 기도로 마음을 지키려고 한다.





가을의 기도

                    -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는 인생길에서, 기도한다.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도록.       

불평하지 않고 감사할 수 있도록.

나의 영혼이 하나님으로 인해 아름다워질 수 있도록.


인생에 감사할 일들을 다시 떠올려본다. 실은 감사할 일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작은 가시에 아파하고 인생 전체를 힘든 것으로 지나치게 일반화하고 있지 않았을까? 우울한 마음이 기도가 되어, 그 기도로 마음이 사랑으로 충만해져서, 힘들어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나의 작은 사랑의 마음을 전하는 가을이 되길 바라본다. '세상은 그래도 살만 하다고, 인생은 귀한 선물이라고' 나지막이 말해본다.


https://youtu.be/O-K-dHDgU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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