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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샘 Sep 10. 2021

완벽하게 불완전한 존재

존재를 아름답게 하는 사랑

새벽 1시 30분경, 배가 너무 아파서 잠에서 깨었다. 화장실을 들락거렸지만 복통을 이겨내기 힘들었다.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친정엄마가 방에서 나오셨다. 결국 친정엄마가 운전을 해서 병원 응급실에 갔다. 차에 내려 병원에 가는데 배가 너무 아파 폴더폰처럼 몸을 굽힌 채로 응급실로 향했다. 코로나 때문인지 응급실 문도 닫혀있어 당황스러웠는데, 다행히 간호사님께서 병원문을 열어주셨다. 체온 측정 후 병원에 들어가서 간호사님 안내에 따라 병실에 누웠다.


가만히 누워있기 힘들어 쪼그리고 누웠는데 몸이 덜덜 떨렸다. 엄마가 손발을 주물러 주셨다. 곧 의사 선생님이 오셨고, 증상을 물어보셨다. "배가 타는 것 같이 아파요. 아랫배, 윗배가 다 아파요.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는데, 수액이랑 진통제를 맞으니 나아졌어요." 의사 선생님께서는 알겠다고 하시며 피검사를 해서 한번 살펴보자고 하셨다.


엄마는 최근에 엄지손가락을 다친 적이 있으신데도, 딸이 아픈 게 안쓰러웠는지 어깨랑 등을 쓸어내려 주셨다. 나는 엄마 손가락이 걱정되어 '괜찮아요'라고 거듭 말씀드렸다. 조금 있으니, 간호사님께서 근육주사로 진통제를 놓아주시고, 수액도 놓아주셨다. 진통제가 말을 듣기 전까지는, 자꾸만 입에서 신음이 나왔고 손이 덜덜 떨렸다. 내 목소리 톤이 높은 편인데, 아프면 목소리 톤이 한 옥타브쯤 더 올라가 모기소리가 나는 것 같다. 모기소리를 내며 낑낑거렸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조금씩 통증이 멎어갔지만 여전히 아팠다.


통증 중에 누워있자니 기도가 절로 나왔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는 아플 때면 절로 이 말씀이 떠오른다. 예전에 시험관 시술을 할 때, 난자 채취를 하고 난 후에도, 아픈 배를 부여잡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를 중얼거렸다. 눈물이 자꾸 흘렀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하나님을 붙잡고 이야기했다. "하나님,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길 원하시나요?" 하나님은 고통의 때에 매번 동일한 대답을 하시는 것 같다. "딸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이다. 그리고 옆에 있는 엄마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천사처럼 느껴졌다. 힘겨운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내 옆에 힘이 되어주는 천사 말이다.


그렇게 눈물이 찔끔찔끔 나는데, 조금씩 통증이 가라앉았다.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몸 컨디션이 조금 좋아지자, 엄마와 대화할 정신도 차려졌다.


"엄마, 피곤한데 나 때문에 고생하네요. 나 이제 괜찮아요."

"괜찮아졌다니, 정말 다행이다. 엄마도 배가 아파서 이렇게 병원에 온 적이 있었어. 명절 때, 시댁에서 식사하다가 배탈이 나서 오기도 했고."


엄마도 배가 아파서 병원에 왔을 장면을 생각하니 뭔가 마음 한편이 찡했다. 수액을 다 맞고 나올 때 엄마가 말씀하셨다.


"너 어렸을 때에도 배탈이 나면 울고불고해서 너무 불안했는데, 병원 나올 때에는 네가 노래 부르면서 나왔어.”

"무슨 노래요?"

"여러 노래 다 불렀지."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나, 다 컸을 때나 딸 데리고 이렇게 병원 다녀오시며 고생하신다는 생각에 고맙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혼자 계실 엄마 걱정에 친정에 왔는데, 괜히 엄마 고생만 시켜드리는 것 같다. 그래도 엄마와 같이 웃으며 집에 돌아오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집에 돌아오니 새벽 4시경이 되었다. 나는 전기포트에 물을 끓여 돼지감자차를 우려냈다.  엄마와 같이 따스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니 긴장이 사르르, 풀렸다. 우리는 다시 불을 끄고 잠에 들었다.


새벽에 있었던 일을 회상해 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배가 너무 아프니 '만약 내가 지금 죽는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이렇게 힘든 인생을 마무리하니 감사하다'는 생각이었고, 다음으로 드는 생각은 '그런데 이 땅에 내가 존재하는 사명을 잘 완수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요즘 내가 많이 하는 생각은 내가 참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대학원 졸업 후 공부도 더 많이 하고 싶은데 마음만큼 잘 안되어 속상했다. '그럼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해 볼까?'하고 음악을 취미로 배우며 이것저것 해 보지만, 사람들의 반응이 시원찮다. '글을 써 볼까?' 했지만 꾸준함이 부족하다. '유튜브를 하며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어볼까?' 했지만,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 자존감이 급격히 하락한 상태인데, '내가 죽는다면?'이란 질문 앞에 이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미 세상에는 굉장한 능력자들이 많고, 내가 꼭 그 일을 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이미 그 일들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 내가 죽는다면 가장 안타까운 대상은 엄마였다. 엄마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사랑으로 날 키워주셨다. 목숨처럼 날 사랑해 주신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날 엄마처럼 사랑해줄 수 있을까?'라고 늘 생각한다. 그렇게 날 사랑해 준 엄마가 늙고 힘이 약해지면 내가 엄마를 돌보아드려야 할 텐데, 내가 먼저 죽으면 엄마를 누가 돌보아 줄까? 내가 아직은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엄마가 날 돌보아 주신 것처럼, 나도 엄마와 사랑으로 함께해 드리고 싶다.


모든 사람은 완벽하게 불완전하다고 하는데, 나야말로 참으로 완벽하게 불완전한 사람이다. 늘 뭔가를 잘하려고 애쓰고, 열심히 살려고 몸부림치지만 불완전함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인격적으로도 아직 미성숙한 부분이 많고, 능력적으로도 부족한 점이 많다. 여성으로서도 난 참 불완전하다. "자녀를 가지지 못하는 여성이 뭐가 행복하겠느냐?"는 지인의 말이 상처로 다가오기도 하고, "입양을 해 보는 건 어때?"하고 가볍게 던지는 조언이 칼날처럼 마음을 쓰라리게 한다. 그럼에도 난 엄마에게 소중한 딸이다. 엄마는 "네가 건강한 게 먼저야. 네가 있어야 애기도 있지. 요즘은 애기 없는 사람들도 많더라."며 내 편이 되어 주신다.


나의 불완전함이 엄마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엄마에게 난 그 자체로 소중한 딸인 것이다. 엄마의 사랑을 받으며 이 거친 세상을 이렇게 살아온 것 같다. 불완전한 존재를 아름답게 하는 것은 사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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