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에 바쁜가?
요즘 인생이 뒤죽박죽인 것만 같다. 무언가에 몰입하기가 힘들고 불평만 쌓여간다. 해야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 내 맘 같지 않았다. 꼭두새벽에 배가 아파 응급실에 다녀온 이후, 친정에서 최대한 무리하지 않고 지내려고 애썼다. 엄마께서 엄지손가락을 다치시고 일을 쉬시는 중이라 친정에서 엄마와 같이 시간을 많이 보냈다.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은 너무나도 소중하고 귀하다. 엄마와 같이 가까운 곳에 산책을 갔는데 엄마께서 즐거워하셔서 나도 덩달아 기뻤다. 엄마 대학교 공부도 도와드릴 수 있어 좋았고, 엄마와 운동하는 시간도 좋았다. 하나하나 감사하지 않을 게 없는데, 자꾸만 난 내 커리어에 관한 걱정이 앞선다.
3시간 운전을 해서 친정에서 집에 오면, 남편 밥 차려주고 청소하느라 시간이 훌쩍 가 버린다. 밀려있는 재활용품과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고, 빨래를 하다 보면 하루가 훌쩍 가 버린다. 남편이 3교대 근무라 남편이 쉬는 날, 남편을 챙겨줄 수 있는 것이 너무나도 감사하면서도,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지 않은 듯한 마음에 불안하다.
내 시간 확보가 어려운 것 같아서 요즘은 새벽 기상을 실천 중이지만 꾸준히 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이다. 거의 격일로 새벽 기상이 이루어진다. 새벽에 일어나 성경을 읽고, 운동을 하고 책을 읽으면 시간이 훌쩍 가 버린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 시간에 글쓰기와 논문 쓰기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는 것이다.
궁금한 것은, "나의 24시간이 도대체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 것인가?"이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왜 이렇게 시간관리가 어려운 것인지. '책을 쓰겠다, 논문을 쓰겠다는 마음'은 다짐일 뿐,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가 버린다. 해도 잘 늘지 않는 영어공부는 해야겠고, 운동은 아주 중요하니 빼놓을 수 없고, 삼시 세 끼를 준비하는 것도 꽤 시간이 걸린다. 그러면 하루가 다 지났다. "이런, 책은? 논문은 언제 써?" 눈물이 나올 것 같다.
괜히 내가 여자임을 불평해 본다. '내가 여자라서 집안일하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쓰잖아!' 그러면 다른 한 편의 목소리는 '네가 시간관리를 더 잘해야지. 게을러서 그런 거야. 더 부지런히, 치열하게 살아!'
하고 말을 건넨다. 그러면 속에서 화가 난다. "나, 노는 거 아니거든!"
남편이 나보고 휴직이라 시간이 많다고 말했을 때 눈물이 나와버렸다. '시험관 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집안일을 하다 보면 시간이 다 가 버리는데...' 2년째 휴직이지만, 휴직을 제대로 보내고 있지 않은 것 같아서 속상하기만 하다. 허송세월 한 건 아닌지... 6번의 시험관 시술을 하면서, 살은 쪽 빠졌고 몸은 약해졌다. 목 디스크가 터졌고, 생전 처음 장염으로 꼭두새벽에 응급실을 두 번이나 방문했다(그전까지는 장염에 걸린 적이 없었다). 생전 처음, 불면증을 경험했고 알 수 없는 불안과 우울에 시달렸다. 우울하니 식욕이 떨어지고 다시 살이 빠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그러다 보니,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비관적이 되어갔다. '삶은 고통스러워.' '어렸을 때는, 꿈을 가지라고 그러더니, 지금은 꿈을 포기하라고 하네.' 난임 여성으로서의 삶도, 한 인간으로서의 삶도 가끔은 버겁기도 하다. 무엇보다 꿈이 좌절됨이 주는 슬픔이 컸던 것 같다. '아기를 가져야 한다는 압박감',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슬픔'이 뒤섞여 마음이 아팠다.
어디에서도 내 고민에 대한 시원한 답을 얻을 수 없었고, 답답한 마음을 어떻게 관리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던 중, 조던 피터슨이 쓴 '12가지 인생의 법칙'을 읽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한 대를 맞은 것 같았다. 내 마음의 태도에서 바뀌어야 할 부분이 절실하게 드러났다. 책의 저자 또한 '인생은 고통'임을 전제에 깔고 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인생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삶의 책임을 가지고 자신을 잘 관리하고 돌보면서 자신의 삶과, 이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바꿀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었다. 나는 인생이 고통스럽다는 것에 생각이 멈춰,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책을 읽으며 마음에 다가온 문장들을 노트에 적었다.
p. 130 나는 지금의 나 보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p. 131 당신에게 최고의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만 만나라.
p. 138 당신이 어떤 게임을 선택하든 그 게임만의 고유한 특성이 있다. 인생의 게임들은 사람마다 달라서 다른 사람과의 비교는 무의미하다.
p. 143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할 때는 늘 신중해야 한다. 우리는 성인이 된 순간부터 고유한 존재가 된다.
p. 149 작은 목표를 세워라.
p. 149 내일의 내가 어제의 나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진 면이 있다면, 그것으로 성공이다.
p. 156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고 활력을 되찾아 의미 있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지금보다 더 큰 노력과 정성을 쏟아야 한다.
p. 166 실존적 믿음은 삶의 비극적 불합리성은 그 와 똑같은 정도의 불합리함, 즉 본질적인 선을 향한 헌신으로 맞서야 한다는 깨달음이다.
p. 167 현재에 집중하라.
p. 169 내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려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할까?
p. 230 위대한 정신은 현실을 탓하지 않는다.
p. 233 당신을 나약하고 부끄럽게 만드는 것은 입에도 올리지 말라. 당신을 강인하게 만드는 생각만 하고, 당신에게 힘을 주는 말만 하라.
p. 291 쉬운 길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길을 선택하라.
- 12가지 인생의 법칙 중에서-
나는 참으로 불평하는 글을 많이 썼고, 징징대는 말을 많이 했지만, '강인하게 만드는 생각, ' '힘을 주는 말'에는 소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여나 건강을 망칠까 봐 몸을 사리는 행동이 날 건강하게 만들기보다는, 목표를 상실한 슬픔으로 마음을 병들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현실을 탓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물론 마음 같지 쉽지는 않겠지만) 현재에 집중하며 삶이 좀 더 나아지도록, 내가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며 의미 있는 길을 선택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책의 저자는 '책임'을 강조한다. 내 삶을 책임감 있게 소중하게 가꾸고, 날 절망 속에서 건져내려면 비전이 필요했고 난 다시 가능성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최근 한 교수님과 연락이 닿아, 교수님과 같이 작업하던 소논문을 쓰고 있다. “뭔가를 하려고 하면 안 돼."라는 조언을 많이 들어 왔는데, 교수님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야 마음도 즐겁지 않을까?"라고 말씀해 주셨다.
[나]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교수님] "얼마든지 잘할 수 있지. 충분히 잘할 수 있는데,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는 것 같아 늘 안타까웠네. 꾸준히 준비해 놓으면 어떤 방향이든 분명히 길이 열린다네."
나의 가능성을 믿어 주시고, 늘 격려해 주셔서 감사하다. 한편으로는, '내가 논문을 쓴다고 아기를 가져야 하는 우선순위를 놓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하지만, 마음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는 내 삶을 규모 있게 잘 가꾸며, 하고 싶은 일들을 도전하고 싶다.
교수님의 전공이 음운론이라, 영어교육과 관련 있지만 새롭게 공부해야 하는 부분도 많아서 걱정이기도 하다. 약간의 회피 심리로, 공부는 안 하고 유튜브 영상을 만들고 있는 모습은 조금 안타깝지만 이 또한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나름 합리화해본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해야겠다.
결론은 쓰고 싶은 책과 논문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시간관리를 잘해서, 내 삶을 잘 가꾸어나가고 싶다. 그래서 뻘겋게 토끼눈이 되어 한 문장이라도 꾸역꾸역 써 나간다. 내일 새벽 기상해야 되는데, 벌써 시간이 자정이 넘었다. 얼른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