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을 써야 할까?
신문 기사에서 한 여기자의 '명절 증후군'에 관한 글을 봤다. 공감하며 읽었고, 댓글을 보다가 충격을 받았다. 여러 부정적인 댓글이 많았지만, 그중에서 내 마음을 후벼 판 익명의 댓글은 이것이었다.
'이런 글은 일기에나 써라.'
이런 글은 일기에나 써라... 내가 그 글을 쓴 장본인은 아니지만, 어찌나 얼굴이 붉어지던지. 그 순간 스치는 생각은, '내가 쓴 일기와 같은 글을 브런치에서 사람들이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였다.
일기와 에세이의 경계는 무엇일까? 나 자신을 어느 정도 드러내 보여야 하며, 그것이 읽는 이들에게 유익이 되고 공감이 될까? 일기와 에세이의 정의를 찾아보았다.
일기(日記)
1. 날마다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 따위를 적는 개인의 기록.
2.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 따위를 적는 장부.
3. 폐위된 임금의 치세를 적은 역사. 폐주이므로 실록에 끼이지 못하고 달리 취급되었다.
수필(隨筆) (또는 에세이)
문학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글. 보통 경수필과 중수필로 나뉘는데, 작가의 개성이나 인간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유머, 위트, 기지가 들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
일기와 수필의 공통점은 삶에서 느낀 점을 쓴 기록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두 장르는 글의 목적이 다르다. 일기는 내 경험을 기억하기 위한 글이고, 수필은 경험과 생각을 나누기 위한 글이다. 일기는 내가 혼자서 보는 글이고, 생각과 느낌을 날 것 그대로 토해낸 글이라면, 수필은 내 생각과 느낌을 곱씹으며 깊이 있는 사유 속에서 메시지를 찾아낸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일기는 나의 마음을 토닥이는 작업이고 수필은 경험의 의미를 찾고 메시지를 남기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글을 써 내려가는 장소, 브런치에서의 글쓰기는 수필적인 성향이 짙다. 신변잡기(身邊雜記)적인 글이 일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수필이 되려면, 사골국물을 우려내듯 깊이 있고 진득한 사유(思惟)의 과정이 필요하다. 또한 글이 재미있고 감동적일수록 좋다. 그래서 통찰력 있는 아이디어와, 마음을 쑥 끌어당기는 필력이 필요한 듯싶다.
그럼 난 "통찰력과 필력을 갖추었는가?" 란 질문 앞에 자신이 없다. 내가 브런치에 써 내려간 글들을 보면 일기의 성격이 강하다. 특별한 통찰력이나 탁월한 필력은 없지만, 아픈 마음을 위로받고 싶어 줄기차게 적어 내려 간 글이 많다. 지나가버리는 시간이 안타까워 시간의 흔적을 남기고자 몸부림치며 끄적인 문장이 모여있다. 사무치게 그리운 아빠와 함께 했던 시간이 흐릿해지지 않도록 아빠와의 추억을 새겼다.
그렇게 써내려 간 글들을 보며, "이런 글은 일기에나 써라"라고 말할 수 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비록 인생을 사유해 낸 강력한 통찰력이 없다손 치더라도, 인생이 담겨 있다. 투박한 그 인생의 모습이 어쩌면 더 잔잔한 감동을 주지 않을까?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가 겪어내는 희로애락이 담겨있기에 화려한 글솜씨로 독자를 울고 웃게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서투른 글 속에 담긴 인생의 알맹이는 충분히 공명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이 세상에 나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거친 부분을 다듬어야 하고, 예쁜 옷도 입혀줄 필요가 있다.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기에 타인이 볼 수 있는 글을 쓰는 일은 참으로 위험하기도 하다. 그러나 한 자 한 자 글을 꾹꾹 써 내려가는 것은, 나와 당신이 글을 통해 마음이 연결되길 바라는 한 줄기 희망이 담겨 있는 것이고, 거친 인생을 함께 손잡고 가자는 환대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