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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샘 Dec 02. 2022

다시 읽고, 다시 쓰다

내가 못나 보일 때


  “여보, 왜 마음처럼 안 될까?”

  남편과 전화를 하면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2022년은 유독 마음이 고달픈 해였다. 2년간의 휴직 후 복직하면서 내가 살아온 길, 걸어온 길에 후회가 많이 되었다. ‘만약’이라는 단어가 잔인하게 가슴에 와서 박혔다.

  ‘만약 그때 대학원 공부를 하는 대신 아이를 가졌다면?’

  ‘만약 난임 휴직을 하지 않고 시험관 시술도 하지 않았다면?’

  여러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만약’이라는 단어가 너무 아팠다. 내가 걸어온 길이 잘못된 것 같았고, 내가 해 온 선택들이 모두 어리석어 보였다.


  모든 일에는 기회비용이 있다. 어떤 선택이든 장단점이 있는데, 나는 내가 선택한 쪽의 단점과 선택하지 않은 쪽의 장점을 비교했다. 그러고는 날 비난했다. “왜 그 선택을 한 거야?”라면서 말이다.

  “어떤 선택이든 다 장단점이 있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 안에 있어요. 아브라함을 생각해 봐요. 아브라함이 옳은 선택을 할 때도 있고, 실수를 할 때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결국은 선하게 인도해 주시잖아요.”

  휴대폰 너머 남편의 나지막한 이야기에 다시금 이성을 찾는다. ‘그래, 하나님께서 결국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지.’


  유독 그럴 때가 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은 엄청 사랑하시는 것 같은데, 나만 사랑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왜 다른 사람들에게 주시는 은혜를 나에게는 주시지 않는 걸까?’ 마치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린다. 불평이 입술 밖으로 나오려고 아우성친다. 애써 불평이 나오지 않도록 입을 막는다. 나에게 없는 것들이 유독 도드라져 보인다. 그런 내가 밉다.

  “뭔가를 자꾸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져봐요. 하나님 안에서 자존감을 가지면, 좀 더 마음이 편해질 거예요.” 남편은 평소에 장난이 심해서 어리게만 느껴지는데, 가끔씩 훌륭한 상담가가 되어 조언을 해준다. 남편의 말속에서 ‘자존’이라는 말에 내 생각이 머무른다.     



존재의 토대, 그분의 사랑


  2년간의 휴직 후 복직을 했더니, 학교는 많이 변해 있었다. 학교에서는 내가 근무할 때는 쓰지 않던 ‘하이클래스’란 것을 쓰고 있었고, 5, 6학년 교실에는 태블릿 PC가 있어 블렌디드 수업을 하고 있었다. 2년 동안 쉴 때에, 열심히 지내시면서 많은 성장을 이뤄낸 선생님들도 눈에 들어왔다. ‘난 도대체 2년 동안 무엇을 한 거지?’


  휴직의 공백을 채우는 것이 힘이 들었다. 다시 힘을 내어 블렌디드 수업 기술도 익혀야겠고, 업무도 잘 해내고 싶었다. 오랜만에 맡게 되는 6학년이라 긴장도 많이 되었다. 학교에서 새로운 선생님들과 관계를 맺는 것도 힘들게 느껴졌다. 내향적인 성격인 데다 휴직기간 동안 사람들과의 소통이 많지 않아 새롭게 사회생활을 하려니 많이 위축되었다.


  그래도 학교에서 사람 구실 하며 살려고 잔뜩 긴장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수업에도, 업무에도 조금씩 적응을 해가기 시작했다.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대화를 주도하지는 못하지만, 경청하려고 나름 애를 썼다.


  복직한 후, 제일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급식을 먹는 것이었다. 휴직 기간 동안 밥을 규칙적으로 먹지 않은 데다가, 시험관 시술의 부작용으로 추정되는 췌장염이 왔기 때문이다. 소화가 잘 되지 않아, 밥을 꾸역꾸역 입 속으로 밀어 넣었다. 하루는 밥을 먹는데 괜스레 눈물이 나왔다. 다른 사람들이 볼까 봐 얼른 눈물을 닦고 ‘감사하자, 감사하자’를 되뇌며 밥을 먹었다.


  그렇게 밥을 먹는데,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을 하시는 것 같았다. 내가 시험관 시술대에서 시술 후 깨어 배가 너무 아파 눈물이 흐를 때에도,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느껴졌다. 급성 췌장염으로 먹은 것을 다 토하며 새벽에 응급실에 가서 통증으로 죽을 것 같이 괴로울 때에도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왜 하나님은 내가 이렇게 고통스러울 때, ‘사랑한다’고 하시는 거지?


하나님은 내가 고통스러울 때에도, 내가 스스로를 밉게 볼 때에도, 날 사랑하신다. 결국 나의 자존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찾아야 함에도, 난 세상의 인정에 목말랐었나 보다. 세상에서 좋아 보이는 것이 갖고 싶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인정에, 세상의 소유에 내 존재의 토대로 두려니, 이리저리 흔들렸던 것이다. ‘사람들이 날 좀 인정해 주지 않으면 어때? 결핍된 게 많으면 좀 어때? 그래도 난 존귀한 존재인걸.’ 먼지같이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존재의 가벼움이, 그분의 사랑 가운데 다시 의미를 찾는다.     



내가 지나온 삶을 다시 읽는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세기 50:20)” 요셉은 노예로 팔려가, 감옥에 갇힌 힘겨웠던 시간에도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지하여 재해석하였다.


  내가 인생을 재해석했던 때는 언제인지 떠올려본다. 보통은 글을 쓰다 내 삶을 돌아보고 생각을 하게 되는 듯하다. 평소에는 일상에 쫓겨 정신없이 살아가고, 평소 생각의 패턴대로 쉽게 불평하고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곤 한다. 그러나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쓸 때면, 그 시간이 안갯속 흐릿한 마음을 더듬어 알게 한다. 지나온 삶을 다시 해석하게 한다.


  2022년 한 해를 다시 돌아본다. 내 인생을 다시 읽어낸다. 아팠던 순간,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기쁘고 행복했던 순간도 있었다. 부족한 내 글을 읽어주며 글을 계속 쓸 수 있도록 조언해 주시고 격려해 준 분들이 계셨다. 아픔 가득한 글에 같이 울어주고, 위로해 준 선생님들이 계셨다. 고통스러운 마음을 어찌하지 못해 글을 썼는데, 그 글이 나를 치유해 주고 있었다. 글로 연결된 벗들의 따듯한 마음속에서 내가 힘을 얻고 있었다.


다시 시간을 더듬어 과거로, 과거로 흘러간다. 시험관 시술을 하며 애썼던 나를 다시 안아준다. “그래,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한 결정이었잖아. 많이 애썼어.” 대학원 공부를 하느라 밤잠을 설치며 애쓴 나를 찾아가 토닥여준다. “고생하며 애쓴 너에게,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비난해서 미안해.”     



일어나 함께 가자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할 때면, 후회가 남을 때가 있다. ‘좀 더 잘할걸,’ ‘좀 더 열심히 해야 했던 것 아니야?’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어야지?’‘ 등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다고 날 재촉한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 자리에서 나는 인생을 살아내느라 애쓰고 있었다. 생명(生命), ’ 살아있으라 ‘는 그분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 힘쓰고 있었다.


  수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때로는 반항적인 아이 때문에 마음이 상하고, 때로는 나의 무력감에 속상해할 때도 있었다. 능력 많은 선생님들을 보며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다가도, 초라한 나 자신을 보며 눈물지을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수업을 해나가고 있었다. 살아있으라는 명령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처럼, 학교 현장에서도 교사로 부르신 소명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분이 지으신 내 모습으로 말이다. 그것이 내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하나님의 가장 선하신 뜻이 있으심은 분명하다. ’ 내 모습 그대로 사용하시며 하나님께서는 아름다운 일을 이루실 거야.‘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 나는 여전히 부족하겠지만, 그분의 사랑 속에서 여전히 충만할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가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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